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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May 29. 2024

오뉴월 감기타령

오월 중순부터 시작, 여태껏 곱다시 감기에 점령당했다.

개도 안 한다는 오뉴월 감기다.

고로 개만도 못하다는 등식인가.

아무튼,

천국 같다는 생각이 들만치 스위트피에 금은화에 찔레꽃에 장미에 모란에 이리도 향기롭고 눈부신 신록의 계절.

감기의 내습으로 된통 수난을 겪었다.

으싸! 초전박살을 외치고는 따끈한 월남 국수로 복국을 대신했다.

아쉽게도 뉴저지엔 복국집이 없으므로.

그래도 오슬거리며 몸살 기운이 들자 즉각 쌍화탕을 뎁혀 먹었다.

슬그머니 몸살 기운이 퇴각하는가 싶었다.

아암, 여부가 있겠나,

당연히  밀쳐둔 일을 열나게 해치웠다.

다음날, 이번엔 목에 편도가 부어오르며 침 삼키기가 고약스러운 목감기가 닥쳤다.

소금을 진하게 물에 타 목 안을 헹구는 한편

민간요법대로 흰 파뿌리에 대추 생강에 배를 넣고 푹 달였다.

수시로 들큰시큼한 그 액즙을 뜨겁게 덥혀  마셨다.

드디어 목감기 퇴진!

그럼 그렇지 여부가 있나, 승전고를 울리려는 찰라.

눈에서 화기가 치솟고 코에서 단내가 나면서 열이 올랐다.

민간요법에 한방 처방전을 보태 결명자까지 첨가시켜 달여먹고는 열을 내리니

꼬리를 물듯이 그다음엔 맑은 콧물이 주르르.

완전 감기 만물상이다.

풀고 풀고 또 풀며 가까스로 코감기를 다스리고 나니

이번에야말로 진짜라는 듯 기침이 심하게 났다.

가슴까지 아파오는 기침은 피할 재간이 없다.

더구나 사람들과 하루 종일 대면해야 하는데 심한 기침은 상대방을 불편하게 한다.

도저히 숨기거나 감출 수 없는 것이 연애 감정과 기침이라는 말도 있잖은가.

참을 수 없이 수시로 거의 발작처럼 터지는 기침이다.

빼빼 마르고 해쓱한, 그것도 나이 든 여자의 기침소리는 기분 나쁜 병명을 떠올리게 할 테니 얼른 대처하는 게 상수다.

약은 약일 뿐, 무식한 고집으로 웬만한 병에는 약보다 민간요법이나 자생력에 기댔다.

비타민조차 복용을 꺼리는, 약 이용은 거의 구석기시대 수준인데 도리 없다, 효과가 빠른 양약에 무조건 의지하기로 한다.

결국 기침 날 때마다 하는 수없이 체리 향이 나는 물약을 한 스푼씩이나(미국애들 표준은 두 스푼)...

그리곤 정신없이 잤다.

아마도 완전한 휴식에 들도록 진정제 내지는 수면제가 좀 첨가된 모양.

그 밤 낙뢰를 포함한 천둥번개가 무섭도록 쳐댔다는데 덕분에 아무것도 몰랐으니까.

여기 천둥번개는 정말이지 엄청나다.

대륙적이랄까, 무한대의 허공을 배경으로 드넓은 스크린 가득 불기운이 뻗친다.

섬광 좍좍 그어대며 지축을 흔드는 무시무시한 굉음 우르릉 쾅! 터진다.

정확히는 천둥소리의 뒤를 이어 시퍼런 불칼이 세상을 장악하며 번쩍하는 순간 하늘 푸르게 변한다.

규모의 대단함, 그야말로 천지창조의 신화를 연출하듯한 스펙터클한 장관은 가히 압권이다.

첫해는 그것도 구경거리라고 큰 창가에 나앉아 어머나!를 연발하며 내다보았을 만치 굉장하다.

내일은 주말.

비 온 다음이라 날씨도 흐리니 하루 종일 덮어쓰고 누워 푸욱 쉬고 나면 감기여 안녕일까.

하긴 감기 저도 활개치며 놀 만큼 놀았으니 갈 때도 됐겠지.

양력이긴 하지만 오뉴월 감기는 정말 고역스럽다.

요즘 따라 날씨는 후덥지근, 화씨 90도를 넘어 올랐는데도

에어컨을 켤 수가 있나, 아이스크림을 푹 떠서 먹을 수가 있나.

일요일은 꼭 감기와 작별하는 날이고 싶다. -2003 일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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