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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May 27. 2024

가우디여! 오! 파밀리아성당이여

카미노 스토리

카미노 여정을 마치고 파리에서 비행기를 탈 때까지 엿새 남짓의 여유시간이 있었다. 콤포스텔라에서 스페인 지도를 펴놓고 마드리드로 갈까, 바르셀로나로 갈까, 요리조리 탐색 끝에 일단 마드리드로 향했다. 수도라 볼거리도 숱할 거고 주변에 있는 세고비아나 톨레도 어느 한 곳을 형편 따라 살짝 둘러볼 심산이었다. 그러나 크고 작은 세상사 대부분이 내 생각대로 내 계산대로 내가 원한 바대로 착착 진행되지 않는 경우 허다하다.



드넓은 마드리드 수도원에서 지나치게 진을 빼 피로가 가중, 더 이상 쏘다닐 기운이 없었다. 여타 욕심일랑 접어야겠다 싶어 눈에 삼삼한 중세 고도 풍경 싹 지워버리고 기차칸에 실려서라도 휴식을 취하고자 바르셀로나로 직행했다. 주위 풍광에 시선 뺏기지 않은 채 푹 쉰 터라 피곤이 씻겨 새 힘 빵빵하게 충전되었다. 바르셀로나에 도착하자마자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Templo Expiatorio de la Sagrada Familia)을 향해 일로 돌진했다.

돌진이란 표현 그대로 한 치 주저함 없이 바르셀로나의 랜드마크이자 세계문화유산인 파밀리아 성당으로 곧장 달려갔다. 안토니오 가우디가 설계한 필생의 야심작인 이 성당은 1882년 착공에 들어간 이래 13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공사가 계속 진행 중이다. '그라나다'는 스페인어로 신성하다는 의미이며 '파밀리아'는 가족을 뜻하듯 성가족성당이라고 불린다.




지하철에서 빠져나와 성당 쪽으로 올라가니 바로 눈앞까지 길게 이어진 줄이 있기에 얼른 끄트머리에 가서 섰다. 파밀리아 성당은 보이지 않고 북적거리는 인파 사이로 대테러 작전을 수행하는 특수부대원들 모습이 눈에 띄었다. 조를 이뤄 기관단총을 겨눈 채 삼엄하게 인근을 경비하는 검은 베레들. 영화에서나 보았던 기관단총 실물을 난생처음으로 목도했다. 이는 바로 얼마 전에 일어난 파리 노트르담 성당 화재를 테러로 규정한 여파인듯했다.

차도에는 연신 시티투어버스가 오가고 관광객들은 계속 더 늘어났다. 줄이 차츰 줄어들며 입장 차례가 되어갈 즈음 파밀리아 성당 윗부분이 보였다. 여전히 공사 중이라 뾰족 지붕 목 부분에 둘러쳐진 안전망이 마치 아가들 턱받이처럼 보여 살푼 미소가 스몄다. 1882년 기공식을 가진 성당을 가우디가 고딕 건축 양식과 아르누보(Art Nouveau:신예술) 양식을 결합한 새로운 스타일로 설계한 성당 건축에 들어갔다. 가우디는 성당 공사에 생애 전부를 걸고 40년에 걸쳐 신이 머물, 신을 모실 성전 짓기에 몰두했다.



1926년 불의의 사고로 눈을 감았을 때는 애초 계획의 1/4만이 이루어진 미완의 건축물이 되었다. 그토록 공사기간이 길게 늘어진 이유는 가우디 당시는 신자들의 기부로만 성전을 지었기 때문이라 한다. 이후에는 관람료로 공사를 진행하는데 연간 3백만 명의 관광객이 몰려온다니 기금 염려할 필요는 없겠다. 다만 그가 남긴 불완전한 설계도를 해석하는 작업도 쉽지 않은 데다 원래 가우디의 정신대로 꼼꼼하게 공사를 하다 보니 일 진척이 더딜 수밖에 없다고 다.

컴퓨터와 건축 신기술의 개발로 예상보다는 빠르게 나머지 공사가 진행돼 2015년 가을에 공사는 70% 완료되었다. 기본 타워와 나머지 교회 건축물은 가우디 서거 100주년인 2026년에 완공될 예정이다. 애초에 설계된 첨탑의 높이가 170m, 완성된다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성전이 된다는 파밀리아 성당. 첨탑은 왜 굳이 170m일까? 바르셀로나의 언덕 높이가 171m라 하느님께서 만드신 창조물을 능가해선 안된다는 생각에서라고 한다.



여덟 개의 원통형 첨탑은 코바늘 뜨개질 작품 같기도 한데 마치 거대한 옥수수를 세워놓은 듯 특이한 건물. 파밀리아 성당은 바라보는 방향에 따라 각각 다른 모습, 동쪽 전면의 건축 주제는 나시미엔토(예수탄생)이고 서쪽은 파시온(예수수난)이며 남측 정면은 글로리아(영광)로 2002년부터 공사가 시작됐으며 이 성당 건축의 정점인 170m 높이의 예수그리스도 첨탑은 그 뒤에 세워질 계획이다.



보통 건축물 외형은 직각 면을 기본으로 하는데 반해 파밀리아 성당을 구성하는 외벽 선은 거의가 곡선 형태다. 건물의 안전성을 높이기 위해 곡선 형상에 적합한 구조 역학까지 배려해 설계했다는 천재 건축가 가우디. 유네스코는 성당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면서 "인간의 창조적 천재성이 과연 어디까지 뻗칠 수 있는가를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며 난해한 이 성당을 극찬해 마지않았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은 돌로 형상화된 영적인 건물이라고 누군가 표현한 바 있다. 그래서인지 하얀 외벽에 아침해가 비칠 때나 석양 무렵 붉은 노을이 질 때 비경을 보여준다는 파밀리아 성당이다.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성당 내벽에 어룽지는 신비스러운 빛의 조화 역시 황홀경을 자아낸다고 알려졌다. 밋밋한 한낮에 마주했어도 파밀리아 성당은 가슴 울렁거릴 정도로 격한 흥분에 빠지게 했다.

고조된 감정은 마침내 눈물로 흐르고...

그보다도 성당 안에 들어서자 여태껏 지나왔던 여타 대성당에서 느낀 불편한 감정 -저처럼 으리으리 거창한 성전을 과연 하느님께서 바라실까?-라는 의문과는 전혀 다른 숭고한 느낌에 저절로 두 손이 모아졌다. 높기로 친다면 파밀리아 성당도 만만찮은데 어째서 거부감이 들지 않는 걸까. 생억지로 동원되어 어쩔 수 없이 작업에 임하는 농노나 소작의 강제노동이 아니라 가우디 스스로가 자발적으로 선택해 기꺼이 헌신했던 이유에서 일까.



그럴 수 없이 정교하고 섬세하면서도 아름다운, 하느님의 집을 정성껏 짓고 있다는 가우디의 마음자세가 곳곳에서 느껴지는 파밀리아 성당. 그 어느 성당에서도 느껴본 적 없는 성심 어린 천심이 고스란히 전해진 까닭은 그래서이리라. 어린아이 같이 천진스러운 영혼으로 순백의 찬미가를 하느님께 바친 가우디. 맥놀이처럼 번지는 이 감동은 아마도 가우디의 하느님을 향한 지고지선한 사랑이, 창틀 하나 문고리 한 짝 조각 한점마다 정성스레 구석구석 녹아있음이 읽혔기 때문이리라.



가우디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독신의 생을 사제보다 더 거룩하게 지냈다. 설계 작업 중에도 수도원에 은둔해 기도생활을 한다거나 40일간 금식을 하기도 했다는 일화가 남아있다. 그랬다. 진정으로 사모하는 님께 바치는 연서로 쓴 기도문이기도 한 파밀리아 성당이었다. 정오 미사에 참례하는 내내 감사 기도가 흘러나왔고 눈물 또한 한정 없이 흘러내렸다. 켜켜 쌓인 속진 하느님 자비의 손길로 정화되어 감을 느꼈다. 돌바닥에 무릎 꿇은 채 며칠이고 머물러 있고 싶었던 하느님의 거소. 오, 저희를 가엾이 여기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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