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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May 27. 2024

긴긴 기다림, 구엘 공원 1

카미노 스토리

촌스러운 구세대의 전형이라 예매 문화에 익숙지 않아 현장 구매를 하다 보니 한 시간 남짓 줄 서서 기다렸다.(예약 필수!) 긴 기다림 끝에 안으로 들어가서도 입장 인원수 제한으로 구엘공원의 심장부인 자연(Natura) 광장 안으로 들어가려면 장시간을 대기해야 했다. 그동안 공원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숲 사이로 난 여러 갈래의 산책길은 자연을 훼손시키지 않고 지형에 무리를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편안한 휴식 공간으로 꾸며놓았다. 주변의 지형지물을 그대로 이용한 자연 친화적 건축을 지향했던 가우디의 정신이 곳곳에서 읽혔다. 그만큼 가우디는 자연을 아끼고 사랑했고 존중했다.


知音知己(지음지기)라던가. 춘추시대 거문고 명인(名人)인 백아(伯牙)와 그의 거문고 소리를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이었던 종자기(鍾子期). 그처럼 상대방의 진정한 가치를 알아보고 재능을 인정하여 적극 지지해 주는 사람과의 만남이란 그리 흔한 일이 아니라는 걸 우리는 잘 안다.



긴 기다림 끝에 찾은 구엘공원에서 대뜸 두 기인의 세기적 만남과 신기한 의기투합이 하도 놀라워 어벙하니 입이 벌어지고 말았다. 고집스러운 천재 가우디도 가우디지만 보편 상식이나 일반개념을 훨씬 뛰어넘은 기상천외한 건축물이 들어서는 걸 14년간이나 지켜보며 가우디의 창조성을 끝까지 존중해 준 후원자 구엘. 아기가 태어나 청소년이 되는 긴 세월토록 재원이 완전 거덜 날 때까지 구엘은 가우디를 밀어주었다.

 

가우디와 구엘. 어느 정도로 신뢰하면 건축가와 의뢰인의 관계를 넘어 이토록 전폭적인 후원을 해줄 수가 있을까. 건축가로서 가우디가 꿈꾸며 그려온 건물을 마음껏 짓도록 아낌없이 재정적 지원을 해준 구엘. 괴이쩍은 환상의 세계를 자유로이 펼칠 수 있게 배려해 준 구엘이 있었기에 가우디는 자신의 독특한 예술관을 최대치로 확장시킬 수 있었다. 가우디의 천재성을 알아본 높은 안목의 후원자 구엘은 또한 가우디로 하여 그 이름 영예로이 세상에 남게 되었다.

구엘공원(Park  Guell)에서 하루를 보내는 동안, 여타 어느 성전에서보다 오히려 더 진솔하게 하느님께로 다가갔다. 어떤 방식으로? 가우디와 구엘의 만남을 예비해 두신 신의 섭리에 깊이 고개 숙여 경배드리고 싶었으니까. 그랬다. 가우디와 구엘의 인연은 결코 예사 인연이 아니다. 전지전능하신 신의 뜻이 임하지 않았다면 구엘공원 존재 자체가 과연 가능했을는지. 그 시대에 이리 황당하고 기괴한 형태의 건축물을 지을 수 있다는 게 도무지 가당키나 한 일이었겠는가 말이다.




1888년 바르셀로나 세계 엑스포를 통해 스페인은 전 세계에 새로운 위상을 부각해 나가던 시기. 이와 같은 시대적 배경 아래 가우디는 풍요로운 토양에서 자연으로부터 받은 영감을 접목시킨 예술혼을 키워나갔다. 그즈음 카탈루냐의 부호 구엘(Eusebi Guell)은 도시와 지중해가 내려다보이는 페라다(Montana Pelada) 산자락에 자신의 집과 분양을 목적으로 한 영국식 콘도를 지으려 택지를 구입한다. 전망 좋은, 한눈으로 봐도 딱 배산임수 지형이다.



가우디의 독창성에 주목했던 그는 가우디에게 건축설계를 의뢰하고 1900년부터 본격적으로 공사에 들어간다. 그러나 작업환경이 나쁜 비탈진 산지인 데다 시당국의 간섭으로 건설을 시작한 지 14년 만에 재정난까지 겹쳐 중도 하차한다. 그렇게 도심 외곽지 자갈투성이 황량한 언덕의 개발 계획은 실패로 끝났다. 훗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구엘공원(Park Guell)을 빼고는. 공사가 중단된 이곳을 1922년 바르셀로나 시가 매입해 시민공원으로 전환시켜 오늘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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