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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May 28. 2024

어서들 수국꽃 마중하시길

수국철이 성큼 다가왔다.

초여름이 가까웠다는 신호다.


바야흐로 물빛 수국의 계절이다.

꽃잎 하나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어여쁘고, 소담한 송이째로 바라보면 풍성하고, 신부가 든 부케처럼 우아한 꽃 수국.

개인적으로는 푸른 산수국 꽃이 좋지만 어릴 적 뜨락에 푸짐하게 피었던 수국꽃도 좋아한다.

무엇보다 수국은 키우기도 까다롭지 않을뿐더러 손쉽게 삽목으로 번식시키는 꽃나무라서 진딧물만 조심하면 누구나 키울 수 있다.  

모래판에 실한 줄기 잘라 묻어두었다가 뿌리내리면 친구들에게 나눠줄 수 있어서 기꺼웠던 기억.




수국이 피면 뒤따라 장마가 온다는, 물과 친한 수국이 제철을 맞았다.

동쪽 해안을 따라가면서 종달리 스쳐 하도리를 지나는데 도로변에 무더기 무더기 수국꽃이 보였다.

돌아오는 길에 하도 초등학교 앞에서 차를 버리고 두서너 정거장을 걸어가면서 사진에 담았다.

공원만큼 풍성하고 맵시 있게 가꿔지진 않았지만 올해 첫 인연이 닿은 수국꽃인지라 반가움에 덥석 안아주고 싶었다.

색상 다채롭지 않아 좋아하는 푸른 산수국도 피었고 색색이 소담스러운 꽃송이에 취해 하무뭇해진 기분.

허림의 시에 곡을 얹은 '마중' 가곡 부르면서 수국꽃들과 눈 맞추며 사진 찍느라 시간 가는 줄도 몰랐던가.

어느새 노을 내려앉아 귀갓길 서둘러야 했다는.

인공적으로 피워낸 속성 수국꽃 말고, 때 되어 자연적으로 피어난 수국철 되었으니 일단 꽃 마중 가시라는 소식 전하고 싶다.

제주의 수국 명소는 한둘이 아니라서 휴애리, 사려니숲, 카멜리아힐, 마노르블랑, 한림공원 등에서는 수국 축제도 연다.

그 외에도 제주는 꼭 짚어 어디랄 것도 없이 마을마다 큰길가와 고샅길에 수국을 심어 여름 한철 눈을 호사시킨다.


그만큼 물리도록 흔한 게 수국꽃이다.

굳이 입장료 내고 축제가 열리는 공원이나 유명 카페를 찾을 필요조차 없다.

널리 이름난 곳이 아니라도 집 근처 수국이 심어진 곳 어디라도 수국꽃 마중하러 달려가 보시길.


맨 처음 수국에 반했던 곳은  부산 태종대 태종사.


신문 기사에 따라 수국꽃을 보러 갔는데 절 주변과 언덕배기에 수천 그루의 꽃이 송이송이 피어있었다. 장관이었다.

꽃 하나하나는 작지만 여러 개가 모여서 피기 때문에 탐스러운 꽃다발을 이루며 중심에 진주알 하나씩 물고 있는 수국.

수국꽃은 흰색으로 피기 시작하지만 차츰 청색이 되고 다시 붉은색에서 나중에는 보라색으로 변한다.

그래서인지 이 꽃의 꽃말은 색깔에 따라 하얀 수국은 변심, 보라는 진심이라니 서로 상반된 의미다.

꽃 색깔은 토양의 성분에 의해 달라진다고 하는데 품종에 따라서는 처음부터 꽃의 색상이 고정돼 있기도 하다.

무성화이며 향기는 없다.

사실 수국꽃은 꽃받침이 변형된 것으로 엄밀히 따지자면 꽃이 아니라서 헛꽃 또는 가짜꽃으로 불린다.

진짜꽃(有性花)은 퇴화해 볼품이 없고 대신 곱고 화사하게 변한 꽃받침이 벌어 나비를 유인해 참꽃의 꽃가루받이를 돕는다.

이제 막 개화를 시작했으니 유월이 무르녹을수록 수국꽃 한창일 터.


누구라도 "그대여 내가 먼저 달려가 꽃으로 서있어" 보길.


# 하무뭇하다::마음에 흡족하여 매우 만족스럽다는 순우리말로 하림의 시에 나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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