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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May 28. 2024

오름 아래 메밀꽃, 소금 뿌린 듯


제주에서는 모밀, 모멀이라 부르는 메밀.

봉평에 메밀밭이 많다지만 전국 최대 메밀 주산지로 알려진 제주다.

메밀은 화산석 투성이인 척박한 토양에서도 잘 자라는 식물이다.

성질이 차고 소화가 잘되지 않는 메밀이나 주성분인 루틴은 혈관계통 질환과 당뇨병을 예방하는 효능이 있다.

이렇듯 피를 맑게 해주는 메밀로 알려져 미역과 함께 산모들을 위한 식품으로 자리 잡았다.

끓는 미역국에 메밀가루로 수제비를 떠서 먹거나 삶은 메밀국수를 넣어서 먹었다.

또한 제주 지역의 전통식인 '빙떡'은 제사상에도 오른다는데 메밀가루 반죽을 프라이팬에 얇게 부쳐서 그 안에 무채 소를 넣어 돌돌 말아 지져낸다.





감자와 마찬가지로 제주에서는 메밀도 한 해에 두 번 수확을 하는 이모작 작물이다.

여름 메밀이 요즘 한창 꽃 흐드러지게  피었다.

신록의 들판에 서설(瑞雪) 사뿐 내린 듯 새하얗다.

장돌뱅이 허생원과 동행하는 나귀 방울소리처럼 맑은 미풍이 메밀꽃을 스친다.


푸르른 창천 아래  자태 한층 또렷한 한라산.

어딘가 나서보라고 창천이 유혹하나 두 시에 어반스케치 수업이 있으므로 시간이 애매하다.

어중간하지만 그 막간을 이용할 수 있는 장소를 찾다 보니 효돈과 머잖은 신례리라면 괜찮지 싶다.


신례리 공동목장 메밀밭은 이승악 가는 길에 펼쳐져 있다.


메밀꽃을 만나기도 전인데  벌써 숨이 막히며 '소금을 뿌린 듯 흐뭇한'  풍광 떠올리자 감흥으로 벅차오른다.

달빛 흥건한 산길이라는 정감 어린 배경 아닌 들 어떠랴.

딸랑거리는 나귀의 방울소리 흘러내리지 않은들 어떠랴.

단지 하얀 메밀꽃이 주는 서정적인  분위기만으로도 흔감할 뿐.


감성 연하게 풀어주는 서정적인 분위기야말로 정서의 현을 부드러이 터치해  누구라도 아티스트 되게 하지 싶다.


잔바람결에도 호르르 나부끼며 여린 대궁 떨려오는, 그 섬세한 고갯짓이 우릴 손짓해 부르고 있다.




고향인 충청도 외갓집에서도 작으나마 콩밭 귀퉁이에다 메밀 농사도 지었다.

잔치 때 청포묵을  쑤기도 하였지만 메밀 자체가 차고 서늘해서 베갯속으로 최고인  메밀껍질을 쓰기 위함이다.

메밀은 성질이 찬 식품이라 어쩌다 여름철 별미로 메밀 소바를 먹긴 하나 즐기진 않는 편이다.

소음인에 깡마른 체질과는 궁합이 맞지 않아서다.




그와는 별개로 소설 영향인지 메밀꽃은 일부러 때맞춰 찾아다닌다.

몇 년 전 봉평에서 본 메밀꽃은 새하얀 데다 실제 대궁은 붉고 키가 컸다.

그와 달리 바람 거친 제주 메밀은 기후와 토질 달라서일까, 작은 키에 연두 대궁이다.

이모작 농사라는 것도 큰 차이점이다.

이승악 오르는 길목 신례리 공동목장에 한창인 메밀꽃.

흐드러졌다고 표현하긴 뭣하지만 한라산이 배경으로 받쳐줘 흠! 감탄사 터져 나왔다.




온갖 방법을 동원해 가며 살과의 전쟁을 벌이는 사람에겐 최적의 다이어트 식품으로 등극한 메밀이다.

오래 전인 고려 충렬왕 때 제주도에 몽골인이 들어와서 한라산 중산간에 메밀 씨앗을 뿌리며 역사는 시작됐다.

몽골인들 계산에, 찬 성질이 강한 메밀을 먹고 사람들 기가 허해져 몸이 약해지기를 바라서였다는데.

그러나 제주 사람들은 지혜롭게 메밀의 찬 성질을 중화시키는 무를 곁들이므로 식품 사이의 균형을 잡게 했다고 한다.

환경 척박한 제주라 다른 곡물보다 생명력이 강하고 생육 기간이 짧은 메밀을 심어 진작에 구황식품 역할을 한 메밀.

그래서인지 메밀로 만드는 음식 가짓수가 많아 메밀밥, 메밀범벅, 메밀수제비, 메밀묵, 빙떡 등 다양하다.

요즘엔 메밀빵, 메밀차, 메밀와플, 메밀호떡, 메밀쿠키, 메밀커피, 미숫가루까지 활용 범위가 한층 넓혀졌다.




제주에서는 메밀을 봄가을로 두 번 심기에 육지보다 메밀밭 만나기가 쉬운 편이다.


오름이 많은 동광육거리 벌판이나 산방산 아래 조붓한 빈터에서도 살랑대는 메밀꽃.


카페나 호텔에서 포토존을 만들기 위해 조경용으로 유채가 진 다음에 가꾸는 메밀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좋았던 포인트는 하도리 별방진 성벽 아래, 중문 신라호텔 쉬리의 언덕, 소노캄 제주 후원,  금호리조트 옆 제주메밀이야기 카페 등등.


차를 타고 지나다가 연두나 초록 밭자락이 달빛 내린 듯 새하얗다면 갓길로 들어 운전 멈춰보길.


제주에서는 근자 같은 밭에서 메밀을 윤작하고 있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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