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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May 28. 2024

대빵 큰 공룡화석 에피소드

엄마아~. 새벽 잠결에 낮게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잦은 동부의 폭설 소식에 필라행 비행기가 결항될까 신경 쓰느라 잠을 설치다 막 풋잠이 들었던가보다. 기상상태가 괜찮대. 진작에 일어나 항공편을 이미 체크해 본 모양이다. 뻑뻑한 눈을 뜨고 전날밤에 미리 싸둔 가방을 집어 들었다. 57도를 가리키는 새벽공기는 쾌적했고 금세 공항에 도착했다. LAX에서는 딸이 통로며 게이트 넘버까지 모든 걸 꼼꼼히 챙겨서 주지 시켜 주었으므로 아무 생각 없이도 그냥 비행기에 탑승할 수 있었다. 문제는 환승이다. 밸런타인데이를 갓 지난 다음날이라서인지 논스톱 비행기표가 없기에 중간 경유지에서 필라와 연결되는 비행기로 갈아타야 했다. 


그렇게 닿은 시카고, 물론 초행길이다. 시간 반을 대기한 후 필라행 비행기로 바꿔 타야 하는 곳이다. 환승으로 대륙횡단하기도 첨인 데다 시카고 국제공항은 엄청 큰 곳으로 소문났다. 세련되긴 영 그른 어리버리 촌사람 약간 긴장된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엉뚱한 만용을 곧잘 부리는 대책 없는 엄마의 객기를 잘 아는 딸내미. 시간 충분하다며 딴전 부리지 말고 괜히 잘난 척, 혼자 알아서 하려 말라고 딸이 단디 일렀으렷다.


안내판을 보고 게이트를 확인했지만 그래도 만사불여튼튼이랬다. 환승을 하기 위해 용감무쌍하게 직접 게이트를 찾아 나서기 전 딸이 누누이 단도리시킨대로 출구 직원에게 도움을 청하기로 했다. 티켓을 보여주며 게이트 위치를 물었다. 미국인 당연히 도르르 굴러가는 유창한 영어가 흘러나온다. 헌데 한 단어에 딱 걸리고 만다, 도무지 뭔 뜻인지 하~허~어~대관절 뭔 소리람.


오른쪽으로 쭉 가다가 다이너스호올에서 층계를 내려가 지하도를 건너라는데 다이너스홀이 유명식당 이름이야 뭐야? 내 귀엔 꼭 그렇게만 들리는데 아무래도 무슨 말인지 몰라 재차 확인하려 어름어름 반문한다. 이번엔 다이너솔이란다. 다시 굴러가는 발음으로 그가 내 눈을 빤히 보며 대답했다. 내 고개가 자꾸만 갸웃거려진다. 분명 이해불가의 난감한 내 표정이었을 것이다. 친절한 그가 손짓까지 해주며 설명하다 말고 펜을 꺼낸다. 들고 있던 내 비행기표를 받아 그 한구석에 조그맣게 그림을 그린다. 바로 꼭대기에 올린 저 펜화다. 마치 무슨 부호인 듯도 싶고 원시인이 남긴 암각화와도 닮았다. 유치원생 그림 같지만 노골적으로 웃을 계제가 아니라서 땡큐~~ 하고 물러났다. 그러나 속으론 여전히 #@?#&% 이다. 


아무튼 왼손으로(미국인들은 왼손잡이가 참 흔하다) 동물 모형의 선화를 하나 그린 다음 그 아래에다 계단을 착착 그리더니 피아노 연주하듯 조르륵 내려가라고 한다. 뜬금없이 공항에 웬 동물? 마침 게이트에서 꾸역꾸역 승객들이 쏟아져 나오니 계속 붙잡고 늘어져선 안될 상황이다.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닌, 회색의 어정쩡함을 못 참는 나일지라도 더 이상 이게 뭐유? 하고 되물을 수가 없었다.


비행기표를 야무치게 쥐고는 일단 오른쪽으로 곧장 직진ㅡ> 한참을 걸어도 B 구역은 쉬 끝나지 않는 데다 정작 C란 알파벳은 눈에 띄질 않는다. 약간 초조해진다. 스쳐 지나는 수많은 사람들은 어물거리며 물어볼 여유를 주지 않고 제각기 바쁘게 걸어간다. 그때 저만치에서 내가 찾던 알파벳이 보이고 뒤로는 우뚝 선 큼지막한 공룡화석이 나타난다. 그제야 아하~~ 소리가 절로 터진다. 그림 속의 동물이 바로 너, 이 동물 골격이었구나!!! 공룡 맞은편 층계로 내려가 지하도를 아주아주 한참 지나 건너편 건물에 올라서니 드디어 필라행 탑승구인 C-25 앞에 이르게 되었다. 비로소  안도의 깊은 호흡, 휴우~


딸에게 전화를 건다. 시카고 공항의 승 게이트에 정확히 닿았다는 보고에 이어 다짜고짜 공룡이 영어로 뭐니? 묻자 다이너소어(dinosaur)... 근데 왜? 자초지종을 듣고는 한참을 같이 파안대소.

ㅍㅎㅎㅎㅎㅎ! 이럴 줄 알았으면 애진작에 영어판 <아기 공룡 둘리> 만화라도 봐둘 것을~. 아니 영어 단어공부라도 좀 미리미리 해둘 것을~. 일반 생활영어가 아닌 낯선 상황에서의 생경한 영역 어는 날 당황하게도 만들지만 이렇듯 뜻밖에도 나를 즐겁게 해 주었으니 신기하고도 귀여운 영어. 공룡=다이너소어~내 귀에 들리기론 그러나 다이너스홀.ㅋㅋㅋ

오후 햇살이 비껴드는 비행기 안에서 문득 중생대 백악기에 그리도 번성했던 대형 파충류가 어느 순간 깜쪽같이 사라져 버렸는데 왜지? 수많은 마디관절로 이뤄진 공룡이니(공룡화석은 처음 봄) 어쩌면 지독스러운 관절염이 쫙 퍼져 전멸한 건 아닌가도 싶었다. 공룡의 멸종 원인으로 기후변동과 운석충돌의 가설이 우세하나 아직은 확실한 게 없기에 이런저런 공상의 나래를 펴며 시간 가는 줄 모르다 어느덧 뉴저지에 닿으니 초여름이던 캘리와 달리 겨울 한복판. 공룡 멸종 가설의 하나인 빙하기가 바로 여기에 펼쳐져 있었다. 두터이 쌓인 눈, 길게 늘어진 고드름, 쌩한 냉기.... 시골영감 상경기 못잖은 에피소드에 피식 웃음 지으라는 감사의 선물로 안겨진 시카고 공항의 대빵 큰 공룡 생각하면 지금도 ㅎㅎㅎ 소리 나게 웃는다.  

창밖 체리나무 가지와 추녀에 달린 고드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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