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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May 29. 2024

고흐의 해바라기

파리를 떠나 디죵. 리옹으로 이어지는 창밖 풍경은 퍽이나 목가적이었다오.

가이 없이 펼쳐진 평원에 밀밭. 옥수수밭이 화폭을 가득 채웠소.

그리고 눈부신 황금빛 해바라기 밭이 끝 모르게 이어지고는 했다오.

만개한 해바라기는 차라리 유황불 이글거리는 현요함이더이다.



 황홀한 순색의 진노랑이 멀미 나게 했소.


 그야말로 우주가 사뭇 흔들리는 것 같았다오.

꽃에 어지럼증을 느끼기도 처음이었소.

마치 아지랑이 앞에 선 것 같이 어릿어릿 출렁출렁. 현란스러운 빛의 소용돌이가 아롱대고 있었소.

빙빙 도는 해바라기 밭에서 잠시 현기증을 일으키게 되더이다.   


감각점 모두가 곧추 일어나 금빛 함성에 귀 기울이고자 고개를 치켜들었소.


가슴이 뛰었소.

눈물이 왈칵 쏟아질 듯한 감동의 격한 파도가 일었소. '

그것은 기막힌 충격이었소.


경이었소.


마침내 혼곤한 도취, 그리고 절정감의 아득한 침몰이 따랐소.

스무날의 유럽여행은 단지 해바라기와의 만남으로도 충분할 만큼 해바라기 밭은 아주 장관이었다오.



노랑, 얼마나 아름다운 빛깔인가. 이렇게 그대는 찬탄했지요.

불꽃같은 열정을 캔버스에 사르고 간 서른일곱 짧은 생애의 그대 빈센트 반 고흐.

그대 그리도 동경했고 사랑했던 남불의 아를르에서는 그대 기리는 축제가 요즘 한창이라는 소식이오.


그럴 법도 한 일이오.

해바라기 꽃만이 아니라 추수기 가까운 밀밭은 밀밭대로 황금물결이 술렁대던 참이었다오.

풍요로운 들판에 하늘은 코발트블루로 청명하고 햇살은 눈부시더이다.

자연의 축복이 넘치는 남불은 역시 그대를 유혹할 만했소이다.



비로소 네덜란드에 닿아 그대의 마음을 읽어냈더랬소.

그대 그토록 태양을 사모하고 빛을 갈구한 까닭을 알 수 있었던 거라오.

바다보다 낮은 땅 네덜란드, 운하와 습지 그리고 축축이 물기 머금은 공기가 북방인 다운 고독을 키워주었겠지요.

그것이 초기의 그대 회화 속에 어두운 색채로 나타났더랬소.

이후 밝고 힘찬 아를르 시대로 옮겨지며 그대는 유감없이 그대의 진면목을 보여주었지요.


억제할 길 없는 에네르기로 생의 심지를 그렇게 활활 불태웠던가,

화폭마다에 데일 듯한 열기가 끓어오르고 격렬한 생명력이 꿈틀거리며 용암이 마구 용솟음쳐댔소.

그것은 아낌없는 몰입이었고 완벽한 연소였으며 그리하여 마침내는 그대가 바랬듯이 행복해지기 위해서가 아닌,
숭고한 예술의 높은 경지에 도달할 수 있었던 걸까요.


본격적으로 그림 공부를 한 바도 아니면서 습작기의 한때, 감히 나는 그대를 틀로 삼고자 한 적이 있었소.

유화를 시작해 첫 번째로 완성해 낸 그림이 <별과 달이 있는 밤>의 서툰 모사품이었더랬소.

나이프만 사용해 거친 붓 자국을 흉내 낸 것에 불과하나 지금도 그 그림을 대하노라면 이십 년도 더 전의 젊은 감성이 밀물 져 온다오.

동시에 약간의 가능성들이며 무모한 도전조차 아쉬워지오.



팔레트 없이 큰 붓에 직접 물감을 짜내 짓이겨 바른듯한 순색의 선명함은 얼마나 강하게 나를 사로잡았던지요.

그대의 강렬하면서도 질서 있는 필법, 그 힘찬 터치와 대담한 색채 대비는 예나 이제나 여전히 매혹적이라오.

<별과 달이 있는 밤>의 화면은 낮게 엎딘 농가는 물론 첨탑 교회까지 깊이 잠들어 있더이다.

전면에 두드러진 사이프러스 나무는 그대의 의지였던가.

감벽의 하늘에 빛나는 밤송이 닮은 별은 그대의 이상이었던가.

궁핍과 정신 발작과의 처절한 싸움 속에서 독신의 한 생을 고통과 동행한 그대.


반 고흐, 그대의 해바라기 밭들을 지나서 그대가 남긴 그림 앞에 섰소이다.

암스테르담의 글립 거리에 있는 현대식 건물인 반 고흐 미술관.

불행한 천재를 올려다보며 나는 또 해바라기를 생각했소.


숭배라는 꽃말을 가진 해바라기 꽃.

태양을 경모하며 온종일 해를 따라 돈다는 정념의 꽃 해바라기가 예서제서 함박웃음을 터트리는 듯했소.

황금빛 미소를 받치는 진초록 싱싱한 잎새들이 두 팔 흔들며 환호를 보내는 듯도 하였소.


환영을 떨치고 천천히 해바라기 그림을 찾았소.

화병에 꽂힌 열네 송이의 화판 탐스러운 해바라기 꽃이 나를 영접해 주더이다.

노란 벽을 배경으로 그보다 좀 더 짙은 빛깔을 한 해바라기 꽃잎들 낱낱이 살아서
화폭을 벗어날 듯 압도해 왔소.

경쾌하고 생동감 넘치는 고운 색 중의 하나가 노랑임을 거듭 확인하는 순간이었다오.

그대가 즐겨 쓴 노란색은 태양을, 희망을 상징한다고 들었더랬소.

어쩌면 해바라기에 대한 그대 연정은 밝음을 지향함에서 비롯된 본능적 갈구가 아닌가도 싶소.


옛적, 아를르 역 부근 라마르틴 광장에 있는 노란 건물의 아뜨리에.

거기에서 환희에 싸여 고갱을 맞은 그대는 새로운 출발을 꿈꿨지요.

그리고 폭발하듯 분출하는 열정으로 수많은 작품을 그려냈더랬소.

고향을 떠올리며 운하에 걸린 <도개교>를 여러 점 남기기도 하였더라오.

역광 속에 서있는 음영 깃든 표정의 <팔레트를 든 자화상>은 그대로 우울한 자아의 표현.

또 하나, 지친 듯 불안스러운 <자화상>에서는 귀를 잘라버린 광기가 예비돼 있음이 읽혔소.

그대의 고뇌 그대의 절망은 권총 자살로 마감됐지만 죽지 않고 영원히 살아있는 그대 이름 빈센트 반 고흐.

부끄러워 마오.


그리고 어깨를 활짝 펴시오. 얼굴도 밝게 펴시오.

어차피 예술 작업은 일종의 광기가 작용함이 아니던가요.


그대 마지막 작품인 <까마귀 나는 보리밭> 그림이 특히 오래 내 발길을 묶어놓았다오.

황금빛 출렁거리는 보리밭 사잇길,


두 줄로 길게 난 아슴한 길을 따라 그대는 먼 여행 떠나갔나요.

하늘에는 아직도 까마귀가 떼 지어 날고 있었소.

우리와는 달리 서양 사람들이 수호신으로 혹은 길조로 받든다는 윤기 짙은 까마귀.

창공을 덮은 까마귀 무리가 그대를 조상하며 전송하는 듯했소이다.

자, 이제 편히 쉬길 바라오. 그대 빈센트 반 고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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