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량화 May 29. 2024

쇠소깍에서 효돈천 계곡 따라 올라가면 뭐가 있을까

1. 백록담 남쪽 기슭에서 발원된 효돈천 물길 마무리하는 쇠소깍


바위 파도가 격랑 치는 효돈천이 찍어 놓은 푸른 마침표가 쇠소깍이랍니다.

쇠소깍으로 마무리된 효돈천 물줄기는 백록담 남사면에서 발원했지요.

한라산에서 서귀포 바다에 이르는 13km 하천인 효돈천은 천연기념물 제182호이고요.

용암이 바다로 흐르며 빚어놓은 다이내믹한 계곡에는 신만이 남길 수 있는 걸출한 작품 무수하지요.

한라산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보호구역이자 유네스코 생물권 보존구역의 핵심지역을 총망라한답니다.

거친 곶자왈 숲은 무한 깊고 절벽 아래 계곡 깊디깊은 효돈천 주변.

오늘은 잘 알려지지 않은 효돈천이 품은 비경에 대해 얘기해 볼까 해요.

효돈천을 의지 삼아 형성된 하례리- 상효동- 하효돈 마을 거쳐 끝자락에 쇠소깍을 빚어놓았는데요.

바다와 민물이 만나는 효돈천 하류 쇠소깍은 명승 제78호이며 물색 신비롭기로 유명하지요.

용암으로 이루어진 기암괴석과 깊은 수심, 울창한 숲으로 이루어진 하천 벼랑이 절경인 쇠소깍입니다.

제주올레 5코스와 6코스가 연결되는 지점이라 올레꾼들이 많이 찾는 명승지랍니다.

효돈천 하구는 원래 소가 누워있는 형태와 닮았다 하여 쇠둔이라는 지명이 붙었다는 쇠소깍.

‘쇠’는 움메~ 소, ‘소’는 웅덩이, ‘깍’은 끝이라는 의미라 하네요.

어느 금요일, 효돈중학교에서 세 시간 수업을 마치고 게서 머지않은 쇠소깍까지 걸어갔답니다.

하류로 계속 걸어가면 검은 모래 해변에 닿게 되고 파도치는 바다 멀리 길줌한 섬 지귀도가 보이는데요.

쇠소깍 물이 흘러내려 섞여든 푸른 바다 저만치 뜬 지귀도는 널빤지 같이 생긴 섬이지요.

외딴섬은 배를 타야만 닿을 수 있는 곳이랍니다.

하릴없이 가물거리는 지귀도를 한참 주시하다가 문득 반대쪽인 쇠소깍 상류를 내 두 발로 탐사해 볼 생각이 들었어요.

​암반 밟고 넘어가며 암벽 타기 하는 탐험자처럼 용감해져야 한다면 위험부담 감당할 자신은 없지만요.


2. 효돈 계곡의 백미, 추상적인 현대조각가 헨리무어의 작품 전시장 같은 남내소


용암이 만들어낸 원시 형태 그대로 아직도 태곳적 신비 고스란히 남아있는 비밀의 계곡이 효돈천입니다.

물길 흘러 내려오며 주변에 다양한 생물 종을 흩뿌려 놓아 유네스코 생물권 보존지역으로 지정된 곳이지요.

종의 다양성이 효돈천의 으뜸 가치로 꼽히는 생태관광자원이라면 버금가는 가치는 신비스러운 원시 자연일 겁니다.

효례교 다리에서 내려다만 봐도 장관 이룬 계곡은 발끝 저릿 거리다 못해 찌릿거리게 했습니다.

제주 최대의 건천인 효돈천이라 물길 대신 집채만 한 바위들이 널브러져 온 데가 풍광 장엄하기 그지없고요.

효돈천 양 벽에 기암괴석이 병풍처럼 둘러서 있고 그 위를 휘덮은 난대림 숲 하도 우거져 계곡은 보일락 말락 하지요.

그래도 가끔씩 생각난 듯 하천은 움푹 파인 소(沼)를 이뤄놓기도 하는데 예기소며 남내소는 사실 섬뜩할 정도였어요.

숲 속 경사면에 느닷없이 깎아지른 암석 벼랑이 드러나며 저 아래 검게 웅크린 예기소는 오금 저리게 하고요.

남내소 가는 길은 숨 멎게 하는 묘경의 연속이었는데요.

사막 능선처럼 부드러이 웨이브 진 백악 질펀하게 깔렸더랍니다.

추상적인 현대조각의 선구자 헨리 무어 작품들 진열된 야외 전시장과도 같았고요.

제주도 아니 우리나라 어디에 이리 신비롭고 비밀스러운 계곡이 또 있을까 싶데요.

아이들 풍덩 뛰어들어 수영을 하기엔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 겁나서일까요.

심지어 돌멩이질도 금기시했을 정도로 인근 주민마저 섣불리 범접지 못하는 신성한 장소였다는 남내소.

용왕제를 지내고 기우제를 지내는 경건한 장소였다고 합니다.​

밤에 제관이 할망당에서 용지부인석(龍旨婦人石)을 모셔다가 제단에 올린 다음 기우제를 지낸다는데요.

그래 그런지 주변에 널린 바위들이 유령처럼 움짓거리는 느낌이라 왠지 등골 오싹해지더군요.

물가 왼쪽에 크게 입 벌리고 있는 그늘집마저 제단에 바쳐진 제물 취하는 이무기 드나드는 동굴처럼 보였어요.

팔뚝에 소름이 좌악~금방 물속에서 무언가가 튀어나와 목덜미 나꿔챌 거 같은 두려움이 엄습해 왔답니다.

이 세상 정경이 아닌 듯 경이롭기는 하나 그보다 앞서는 건 암록 짙은 물빛 너무 가공스러운 섬뜩함이었어요.

남내소에 홀려 반쯤 넋 나간 듯 내려다보다가 정신 차리자마자 부리나케 꽁무니를 빼게 되더라고요.

 
​3. 이름처럼 정답고 오붓한 돈내코 계곡의 원앙폭포


제2 효례교를 지나 약간 북상하면 등장하는 또 다른 물줄기 영천이 효돈천과 만나게 되는데요.

영실 계곡 타고 내린 시냇물은 영천 계류로 이미 세를 불릴 대로 불렸더군요.

그렇게 영천은 돈내코를 거쳐 효돈천과 합류해서 거침없이 쇠소깍으로 내려가 바다에 이르지요.

돈내코 계곡에 있다는 원앙폭포 역시 이름만으로도 호기심 자극하기에 충분했답니다.

근처에 이르자마자 곧바로 원앙폭포와 돈내코 계곡 표지판이 큰 길가에서 기다리더군요.

빼곡하게 들이찬 상록수림이 짙게 그늘 드리워 시원한 데크길을 따라 걸었습니다.

좌측으로 나있는 계곡은 어림짐작으로도 무지 깊겠다는 감이 오더라고요.

울창한 수목들로 가려진 벼랑의 바닥은 어딘가? 그만큼 계류 소리 아스라이 멀었답니다.

그늘진 데크길 십여 분 걸었을 즈음, 급경사진 계단이 나오기에 아래를 굽어보니 비취옥 깔아 둔 보석함 열려있더군요.

두 줄기로 내리쏟는 폭포수 낙차로 인해 움푹 팬 소(沼)는 엄마 유품인 반지 알 색깔처럼 투명했습니다.

폭포 인근은 햇빛 반짝이며 부서지건만 들쑥날쑥 제멋대로인 바위마다 이끼 옷 두터웠지요.

깊은 산간이라 수온 꽤 낮아 이빨 맞부딪힐 판일 텐데 수영 중이거나 튜브 타는 물놀이객은 꽤나 즐거워 보였어요.

이름처럼 정답고 오붓하면서도 속닥한 원앙폭포는 그들 머리 위로 무지개 수시로 내걸더군요.

수심 깊어 보이진 않았으나 암벽 사이 헤집고 물가로 내려갈 엄두 나지 않아 구경만 하고 있어도 피서는 절로 됐지요.

숲 속 물가의 냉기야말로 청신하기 그지없어 심신 두루 쇄락해지므로 이만큼 옹골지게 더위 피하기도 쉽잖지요.

한라산 영실 계곡 푸른 정기 담은 골바람 일어 돈내코 계곡은 어디라도 뼛속까지 차가워질 거 같은 피서지였는데요.

점차 아열대성 기후로 바뀌면서 심해져 가는 하절기 혹서를 이기는 법, 서늘하게 여름 나기엔 숲이 최고 아닐까요.​


4. 고살리, 날 것의 비릿한 야성 그대로

제주의 속살을 들춰보려면 가보길 권하는 고살리 숲길이랍니다.


가장 제주다운 진면목을 보고자 할 경우 곶자왈을 추천하는데 그중에서도 특이한 생태계를 두루 품은 이곳.


난대림이 넓게 분포돼 있는 데다가 한란과 무엽란, 솔잎란 등 귀한 식물과 계곡의 기암괴석을 함께 만날 수 있는데요.


아직은 사람 손을 덜 타 원시 숲 밀밀하며 새소리 바람소리 외엔 사위가 너무 적요해 괴괴할 정도였어요.


청신한 나무향 대신 틉틉한 이 내음은 또 뭐지?


고여있는 물 웅덩이며 두터이 이끼 싸인 바위에서 풍기는 비릿함.


숨골 아니라도 비척지근한 날것의 야성 그대로가 얼크러 설 크러 진 채 숨 거칠게 내쉬는 오지다웠답니다.


고살리 탐방로의 명소인 속괴는, 사시사철 물이 고여있는 작은 소로 우천 시에는 폭포가 볼만하다는데요.


커다란 바위에 적송 한 그루가 주사위같이 생긴 네모난 바위 옆에 우뚝 서 있으나 활엽수에 가려 몸체만 붉었어요.


예전부터 영험한 장소로 알려져 비손 하는 이들이 자주 찾았을 정도로 이름마저 비밀스러운 속괴인 데요.


그러나 물가라서 유달리도 물 것이 하도 덤벼들어 혼비백산했네요.


고살리 숲길은 흐르는 물길보다 웅덩이가 흔해서인지 모기 엄청나게 많은 모기 소굴이었는데요.


계속 움직이며 걸어도 어느새 흡혈귀처럼 착 달라붙어 배를 불리는 모기 등쌀에 고개 절레절레 내저었지요.


시커먼 산모기는 얼마나 지독한지 헌혈 넉넉히 나눠주고도 열흘 정도 가려움증에 시달려야 했거든요.


여름철 지나야 녀석들이 남긴 팔뚝과 다리에 난 상흔 사라지지 싶습니다.


미리 정보검색을 해봤더라면 이런 낭패는 당하지 않았으련만.


따라서 해충 퇴치 스프레이는 필수, 반드시 긴팔 윗옷에 긴바지 착용할 것!


숲 깊어 햇빛 비치지 않는 그늘길이므로 그래도 시원해 걸을 만은 했습니다.


5. 제주에서 만난 가장 절 다운 절, 선덕사


고사리에서 선덕사 쪽으로 올라간 것은 바로 옆에 효돈천 물길이 흐르고 있었기 때문이었지요.


​선돌교라 쓰인 교각에서 바라본 계곡은 이곳 역시 범상치 않았습니다.


하긴 어딘들 예사로운 곳에 가람 초석 놓는 경우 있던가요.


그래 그런지 고찰 아니어도 선덕사는 격조와 깊이가 있는 사찰이었습니다.


정갈한 기품을 갖춘 목조건축물 여러 동이 한라산 넉넉한 품에 안겨있었는데요.


이 절은 현대의 선지식인 고암(古岩) 대종사에 의해 중창불사가 이뤄졌다는데 가람 배치가 군더더기 없이 정연하더군요.


무엇보다 한라산 주봉인 백록담을 가리지 않도록 약간 비껴 가람을 겸손스레 앉힌 특별한 안목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하긴 선덕사가 있는 선돌 지역엔 오래전부터 눈 푸른 납자들의 수행처인 토굴이 있었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백록담에서 발원한 효돈천이 폭우로 물 불으면 사자후를 토하며 치달려 내리는 바로 그 한복판이니까요.


평상시엔 건천이라 집채만 한 암석 덩이 계곡에 누워있지만 한바탕 거센 물줄기 지나고 나면 죄다 일어서는 바윗돌 되리니.


그리하여 한 시대를 선도하는 큰 스승 그 터에서 나오리니.


제주에서 만난 가람 중 가장 절 다운 절, 선덕사.


층계 위 중앙 높직이에는 중층 구조의 목조건물 무량수전인 대적광전이 자리 잡았는데요.


대적광전은 법신인 비로자나불을 모신 금당으로 학술적 가치가 높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고 하네요.


무량수전 주불은 비로자나불이며 좌우에는 아미타불과 석가모니불을 모셨더군요.


그 옆에 범종루 독성각 삼성각 옥칠불전 등이 전통방식대로 배치돼 있었습니다.​


선덕사 소장 묘법연화경 목판본은 제주시 유형문화재 제19호, 단지 사진으로만 보았답니다.


볼거리 다양해 선덕사에서 시간 너무 지체한 터라 이미 하루해가 기울어가고 있었어요.


지도상으로 효돈천 줄기는 효명사 즈음에서 비롯되나 왕복 거리 짧아도 시간이 늦어 여기까지만.


그로부터 길은 아득해지고 계곡은 좁아들겠지만 한라산 중턱인 효명사까지는 오르지 않았답니다.


이끼 푸른 천국의 문을 지나야 한다는 그곳 대신 현실의 천국을 더 선호하는 속인이라서 일까요.


사방 어둑신한 데다 바위 널브러진 예서부터는 무리라 나머지 코스는 눈 딱 감고 생략하기로 했습니다.


정확히는 시간 관계상 선덕사 옆 계곡에서 더 이상은 치고 올라갈 담력이 없었던 까닭이지요.


그러나 효돈천 답사는 제 역량으론 이만으로도 충분했고 만족스러웠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고흐의 해바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