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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May 29. 2024

비자림에서 심신 정화하기

꽃만큼 아름다운 신록의 숲, 한라산에서 구상나무를 만나던 날 비자림이 문득 생각났다.

새로 올라온 연연하고 보드라운 구상나무 새순을 보자, 같은 침엽수인 비자나무가 떠오른 건 당연한 일.

연둣빛으로 키 돋우는 비자 어린 이파리를 보러 오전 일을 마치자마자 득달같이 구좌로  달려갔다.

근 두 시간 거리인 비자림이라 간 김에 싱그러운 숲 향기 속에 좀 더 오래 머물고 싶어 발길을 재촉했다.

비자림에 들면 자유로이 코 벌름거리며 허파꽈리 부풀려 한껏 심호흡을 하리라.

옷소매 걷어붙이고 모공 활짝 열어 피부 통해서도 푸른 기운 흠뻑 받아들이리라.

자동차의 네 바퀴보다 마음이 더 앞서서 달렸다.

 


드디어 도착한 제주 구좌읍 평대리에 위치한 비자림.

단일 수종의 숲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비자나무 숲으로 원시림을 방불케 하는 곳이다.

수령 수백 년을 넘나드는 비자나무가 수천 그루 빼곡하게 군집해 아예 하늘을 가려 기 서늘하다.

순식간에 휩싸여드는 신선한 감촉에 오감 낱낱이 깨어난다

상큼하고도 향긋한 한약방 내음 같은 게 온데 흐르는 숲, 그 향기 탐하며 코 평수는 절로 넓어진다.  

오랜 세월을 살아온 비자나무가 밀밀한 숲을 이룬 데다 제주도 숲의 허파 역할을 하는 곶자왈에 형성된 비자림이다.

숲에서 뿜어져 나오는 신선한 피톤치드와 테르펜이 살균작용을 하여 심신 건강을 돕는다.

피토 케미컬인 이 성분은 자율신경을 자극해 성격을 안정시키며 정신집중 등 뇌 건강을 좋게 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이곳 비자림은 천연기념물 374호로 지정돼 보호 관리되고 있으며 나무마다 각자 고유번호가 매겨져 있다.

비자나무는 주목과에 속하는 상록침엽교목으로 잎은 두껍고 작으며 끝이 뾰족하나 이맘때 햇잎은 보드랍기 그지없다.

비자나무 열매인 비자는 변비 치료제, 구충제, 기름을 짜는데 쓰였으며 나무 자체도 귀한 목재로 괴임 받았다.

고급 가구재로 장식장 등을 만들며 특히 바둑판을 만드는데 좋은 자재로 쓰여 높은 가격으로 거래된다고.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제주도 토산물인 귤·비자 열매를 얻기 위해 둘레에 축장(築墻)을 만들어 보호했다는 기록이 있다.

비자림에는 편안한 산책로가 조성돼 있으며 침엽수 외에 팽나무, 때죽나무, 자귀나무, 후박나무, 단풍나무 등 여러 수종이 얼크러졌다.

황톳빛 산책로에는 화산쇄설물인 송이가 깔려있는데 길을 걷노라면 사각사각하는 소리가 기분을 상쾌하게 해 준다.

알칼리성 천연 세라믹인 송이는 인체 신진대사 촉진, 산화방지 기능, 곰팡이 증식을 줄여주는 효능이 있다고 한다.

오뉴월엔 부디 천년 숲 비자림에 갈 일이다.


하늘 청명하게 푸르르면 한결 운치로운 숲.


거길 가면 맨발로 찹찹한 흙길 걸어볼 일이다.


자박자박 오솔길에 깔린 송이마다 알알이 발바닥 지압해 주는 흙길 맨발 되어 걸어볼 일이다.


혼자라면 팔 휘휘 내두르면서, 아니 그보다는 고즈넉 묵상에 들어 손이야 뒷짐 쥐거나 팔짱을 끼거나.


연인끼리라면 손 맞잡고 체온과 맥박 공유하면서.


비자나무 가지 끝마다 연두색 부드러운 새순 돋아났으니 한번쯤은 연한 침엽수 쓰다듬으며 푸른 향 음미해 봐도 좋으리라.


안개비 자욱 내리는 날, 그보다 빗줄기 난타하는 날이면 더더욱 숲향기 그윽해지는 비밀스런 비자림이다.  


오뉴월 신록 싱푸른 비자림에 부디 가 볼 일이다.




'천년의 숲길'이라는 안내판 앞에서 길은 양갈래로 나누어진다.

직진해 오솔길 따라 이십 분쯤 안으로 걸어가면 밀레니엄을 기념해 지정된 새 천년 비자나무가 기다린다.

조선조가 아니라 고려 명종 때인 1189에 싹을 틔웠다니 8백 살이 넘는 거목이 압도해 온다.

14미터에 이르는 장대한 키에 허리둘레가 네 아름도 넘는 정정한 고목이자 신목이다.

이 나무를 반환점으로 삼아 돌아 나오게 되는데 벤치가 있으니 거기 앉아 느긋하게 삼림욕해도 좋겠고.

피톤치드 음미하며 편안히 눈 감고 숲의 소리에 고즈넉이 귀 기울여도 좋을 것이다.

그때 향방도 알 수 없는 숲 어디선가 뻐꾸기 소리 들리고 딱따구리 탁탁탁 나무를 쪼아대는 소리 들으리니.

인근에 연리목도 서있고 그늘진 숲에는 콩짜개난이며 풍란, 비자란 등 희귀 식물이 자라니 눈으로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여유롭게 나오는 길가에 곶자왈의 숨골도 찾아보고 벼락 맞은 나무도 슬쩍 둘러보며 설렁설렁 걷다 보면 어느새 출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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