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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May 31. 2024

루르드의 피레네 조망터 제르 피크

Vignemale 3298m
bigorre 2872m
Le pic Arrouy 2708m
Le midi d'Arrens 2267m

애초부터 순례 일정에 들었던 루르드 성지가 아니었다.

카미노가 예정보다 일찍 마무리되는 바람에 시간 여유 넉넉히 생겨 들르기로 한 루르드다.

지나온 삶의 여정을 돌아봐도 가끔은, 전혀 기대치 않았던 뜻밖의 선물이 안겨져 감격한 적 있었다.

루르드에서도 그처럼, 아주 오래 기다렸다는 듯 어서 오라며 예상 밖의 특별 선물들이 속속 기다렸다.

호텔을 정하고 창문을 활짝 열어젖히자 바로 눈앞에 교회 종탑이 마주 서 있었다.

성당 뒤편 멀찍이 만년 설산 피레네의 이마가 운무 사이로 보일락 말락 모습을 드러냈다.

순간 의외의 보너스에 두 팔 힘차게 뻗으며 Thanks God!!! 거푸 환호했다.

3층 창밖에 펼쳐진 풍경만으로 대뜸 반해버린 터라 프런트로 내려가 하루만 머물려던 계획을 대폭 수정했다.

기적수가 있는 성지에서 별장 부럽지 않은 뷰를 가진 방을 빌려 닷새나 머물다니, 생각사록 과분한 축복이 흥감스러웠다.

이후 내내 콧노래 부르며 새벽녘은 물론이고 노을 질 때도 즐겨 창가에 서있곤 했다.

더구나 대성당을 시도 때도 없이 들락거리기에도 알맞은 거리, 성당 가는 길목에는 베르나데타의 생가도 있었다.

시내 중심가와도 가까운 데다 가장 큰 슈퍼마켓이며 기차역도 멀지 않아 거의 횡재를 한 기분이었다.

가업을 이어 프런트를 지킨다는 청년에게 피레네가 좀 더 잘 보이는 장소로 가볼 수 있는 방법이 있나 물어봤다.  

Pic du Jer에 오르면 피레네 연봉과 루르드 주변 계곡의 비경을 360도로 조망할 수 있다며 그는 신이 나서 설명해 줬다.

산책로가 나있어 하이킹하기도 좋고 산악자전거 코스로도 최적이라며 자전거 타러 자주 간다는 자랑을 늘어놨다

보통 일반 여행객들은 1900년부터 운행되는 트램카를 타고 950 미터까지 올라가면 바로 정상, 조망권이 일품이라고 했다.  

쾌청한 아침 성당부터 들렀다가 망설임 없이 제르 피크행 트램카를 타러 갔다.


트램 역/ Gare d'Arrivee

트램 카 터널과 차가 서로 교차할 수 있도록 두 개로 분리되는 중간 지점 선로다.


출발역에서 왕복 12유로에 트램카를 타고 슝~ 십 분 만에 가파른 바위산 정상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


그 십 분 동안, 발아래 깔리는 루르드 마을의 원경에서부터 전모를 조망케 해 주더니 점차

피레네 연봉들이 펼치는 만화경에 넋을 잃게 만들었다.


하이든의 천지창조 서곡이 서서히 흥분을 고조시키다가 마침내 베토벤 심포니 운명과 영웅이 사방에서 울려 퍼지는 듯하였다.


목을 길게 느리고 동서남북을 정신없이 조망하는데 덜커덕 트램이 멈춰 섰다.


구 쪽에 레스토랑과 테라스가 있는 휴식처도 있었으나 이동하는 사람들 따라 앞쪽으로 나아갔다.


파노라마 전망대에서 마주한 피레네 연봉들은 범접키 저어 될 정도로 청정 고결한 설산, 눈을 인 예봉마다 기상 얼마나 장쾌했는지 가슴이 탁 트였다.


청량한 만년설 눈바람에 폐부가 말갛게 정화되는 느낌이었고 탁해진 눈빛 전에 없이 형형해지는 것 같았다.


감탄사와 함께 피레네의 정수를 흡입할 양으로 심호흡하면서 두 손 고이 모둔 채 머리 깊숙이 조아려 감사합니다!! 를 연발했다.


가문비며 소나무와 키 낮은 참나무 개암나무 등 잡목이 숲을 이룬 산길, 여러 번 돌층계 길도 지나 산꼭대기에 이르렀다.


거기가 바로 1천 미터 지점인 최정상, 송전탑 위에 철 십자가 서있고 바람은 거칠 것 없이 사방에서 불어왔다.  


앞면은 루르드 시가지, 반대편은 피레네산맥, 우측은 루르드에서 이웃 마을과 통하는 도로다.


좌측 완만한 산기슭은 목장 지대인 듯 아주 미미하지만 선명하게 양 떼 방울소리가 쟁그랑 댕그랑 바람결 따라 들렸다.

카미노 첫날 체력이 따라주지 않아 걸어서 피레네를 넘지 못한 데 대한 아쉬움을 상쇄시켜 주고자 준비시킨 제르 피크 같았다.

주변 가득 들꽃 깔린 바위에 앉아 따스한 볕살 즐기며 할 줄 안다면 요들송을 불러보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그렇게 하염없이 시간도 세월도 세간사도 다 잊고 천국의 평화 같은 은총 가운데 오래오래 머물고 싶었다.

제르 피크에서 한나절 여유 있게 노닐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신 하늘의 축복에 감사기도 바치며 산을 내려왔다.

59 avenue Francis Lagardere
65100 LOURD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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