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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May 31. 2024

온주밀감과 구상나무 그리고 에밀 타케신부

에밀 타케 신부를 기리는 <타케의 정원> 전시회장에 다녀왔어요.

제주 감귤의 시원이 된 식물학자 에밀 타케 신부(Emile Taquet) 탄생 150주년 기념전은 지난 10월 1일부터 상설전시에 들어갔는데요.

타케 신부가 사목했던 홍로성당의 옛 터에 자리한 면형의 집(서귀포시 서홍동 204번지) 3층에서 기념 전시회가 개최되고 있거든요.

여기에서는 그가 채집한 23점의 식물 원 표본과 사목 당시 쓴 18통의 서한, 그의 생애가 담긴 영상물 등을 관람할 수 있답니다.

지난 해 11월에는 서귀포합창단이 서귀포예술의전당에서 ‘에밀 타케의 삶을 노래하다’를 주제로 정기연주회도 열렸고요.




이에 앞서  면형의 집이란 곳은 무얼하는 곳인지 알아볼까요.


한국 순교자들의 영성을 알리며 신자들의 영성생활을 돕는 피정센터 운영을 통해 신자 재교육의 장으로써 역할을 하는 수도원입니다.


일단 생소한 단어 면형(麵形)이 무엇인지부터 알아봐야 겠지.


면형이란 동그란 밀떡이 그리스도의 몸인 성체로 바뀐 후에도 그 모양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겉모양을 이르는 가톨릭 용어이지요.


즉 밀떡의 형상을 한 성체를 의미하는 것으로 한국순교복자수도회 설립자 안드레아 신부의 영성 용어 ‘면형 무아(麵形 無我)’에서 따왔다고 합니다.


면형무아란 면형이 축성되어 그리스도의 몸이 되듯 나란 인간적 본성이 없어진 무아에서만이 하느님과 내가 하나 되는 것이라네요.


성체성사의 삶으로 자신을 비우고 하느님의 뜻을 이루며 살아가는 영성의 삶을 면형무아라 이른다고 하는데요.


영성이란 초월적 경계는 너무 높고도 숭고하기만 해 그 근처 감히 서성이기조차 저어되는군.




잘 알다시피 피정은 말 그대로 일상생활에서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려 조용한 곳으로 가서 오롯이 나만의 시간을 갖는 걸 의미한답니다.


평소 머물렀던 자리에서 잠시 벗어나서 나를 바라보는 시간을 갖고 묵상과 성찰기도를 바치며 자신을 정화시켜 나가피정인데요.


한국 순교 복자 성직 수도회에서 두 번째로 설립한 분원으로 귤 농장과 피정의 집을 함께 운영하고 있는 면형의 집.


면형의 집은 제주에 천주교가 전래된 초기부터 자리한 유서 깊은 장소로 1902년 프랑스에서 온 타케 신부가 이곳에다 홍로본당을 건립했답니다.


서귀포성당 제3대 주임인 타케 신부는 홍로 본당을 세우고 사목에 들어갔는데 일본 아오모리현에서 사목하는 포리 신부가 두 차례 홍로성당을 방문합니다.


권위있는 식물학자이기도 한 포리 신부로부터 이때 식물에 대한 지식을 습득한 뒤 타케 신부는 애정깊게 제주의 식물군을 관찰해나갔지요.


그러던 중 유럽에는 없는 왕벚나무 자생지를 한라산 관음사 부근 해발 6백미터 지점에서 발견하고 1908년 유럽 학계에 보고하게 됩니다.


표본번호 4638호인 왕벚나무 자생지가 제주임을 타케신부가 최초로 세상에 알린 것이지요.


식물학계의 인정을 받게 된 타케 신부는 감사의 뜻으로 1911년 포리 신부에게 왕벚나무를 선물로 보냈답니다.


일본은 마치 벚나무 종주국인 양 행세하지만 엄연히 벚나무의 고향은 제주도 한라산 자락이랍니다.


국립산림과학원이 기준 어미나무로 명명한 관음사 지구 왕벚나무 후계목은 현재 서귀포성당 정원에서 자라고 있지요.


왕벚나무를 선물한 뒤 그 답례로 일본에 있는 포리 신부로부터 온주밀감 나무 열네 그루를 기증받았는데.


제주 귤 재배 역사의 시작은 그렇게 싹을 틔우게 되었답니다.


열네 그루의 나무 중 하나는 백 년 넘게 면형의 집 앞마당을 지켰는데 저지난해 고사했는데요.


고사목은 방부처리 후 비정형 나무조각 작품으로 재탄생해 <홍로의 맥>이라는 제목으로 주님의 집 현관 안에 전시돼 있지요.


면형의 집 정원의 감귤나무 옆에는 감귤 시원지 기념비도 세워졌고요.


천주교 탄압으로 와해 위기에 처한 제주 천주교 재건의 기틀을 마련했으며 한국전쟁 때는 피난처 신학교로 사제들을 양성하기도 한 이곳인데요.


지금은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진 피정센터로 천주교 신자들과 비신자들을 위한 피정의 집이 운영되고 있답니다.

                                         4638호인 왕벚나무 표본과 구상나무 표본

 

이번엔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타케 신부님을 자세히 소개할게요.

프랑스 태생인 에밀 타케(한국명 엄택기, 1873∼1952) 신부는 24세에 사제 서품을 받은 후 곧장 조선으로 파견되었어요.

1898년 1월 조선에 닿은 타케 신부는 부산 본당에 이어 1902년 서귀포 하논성당으로 부임하면서 제주도와 특별한 인연을 맺는데요.

하논성당은 1900년 한라산 남쪽에 설립된 최초의 성당이었는데 제주민란으로 폐허가 되다시피 하였지요.

1901년에 제주도에서는 신축 교안(이재수의 난) 등을 겪고 천주교가 몰락의 길을 걷고 있었던 때였답니다.

가톨릭을 앞세운 봉세관(封稅官)이 제주도민들에게 극심한 횡포를 저지르자 이에 맞서 이재수 등이 봉기한 민중항쟁이었지요.

이 과정에서 일반 도민들도 큰 피해를 입었으며 천주교인 300여 명이 희생당했다고 해요.

타케 신부가 뮈텔 주교에게 보낸 서신에 따르면, 그가 부임할 당시 하논 마을에는 열한 가구 밖에 없었다네요.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그는 제주 천주교 부흥에 결정적 역할을 수행, 제주문화를 존중하면서 대화 통해 제주민의 마음을 열게했지요.


하논에서 현재 면형의 집이 위치한 홍로로 성당을 이전할 당시, 스무 명이던 교우 수는 그가 제주를 떠날 즈음 교세 크게 확장됐대요.

그 과정에서 타케 신부에겐 선교자금이 필요했을 테고 자금 문제는 뜻밖에도 식물채집으로 해결했다고 하네요.

식물을 채집해서 유럽의 식물원 박물관 등에 보내면 자금이 된다는 사실을 알려준 이는 일본에서 선교활동을 하던 포리 신부였는데요.

서구의 열강들은 식민지 영토만이 아니라 각 나라 동식물의 우수 유전자원 확보에도 공을 들이던 시대였지요.

국력이 약한 지역이라면 세계 어디든 연구원이나 상인들이 드나들었고 주둔군과 선교사들을 적절히 활용해 고유 자원을 빼냈는데요.

더구나 일제강점기와 6.25를 거치며 우리나라는 토종인 원추리, 수수꽃다리가 유출돼 데이 릴리가 되고 미스김 라일락이 됐더군요.

그처럼 힘이 약한 나라는 종자는 물론 문화재와 역사도 빼앗기고 고유문자와 얼마저도 잃고 종당엔 주권마저 잃고 말지요.




18세기는 유럽 제국이 아시아를 쥘락펼락하던 시기였는데요.

동양에서는 나름 헤게모니를 뽐내던 일본조차 과학과 종교 등 강대국의 도움과 간섭을 받을 정도였던 당시.

서방 종교인 가톨릭을 1500년대 중반에 수용한 일본이라 진작부터 선교사들이 포교를 하고 있었다고 해요.

그처럼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인 포리 신부는 타케 신부보다 훨씬 선배로 일본에서는 이미 대단한 식물학자로 꼽히고 있었대요.

포리 신부가 홍로 본당을 수차 방문하면서 식물채집과 표본제작, 판매방법 등을 전수해 줘 타게 신부 역시 식물학자로 발돋움했지요.

식물채집가이자 식물분류학자가 된 타케 신부는 채집한 식물표본을 각국에 보냈는데요.

영국 에든버러 왕립식물원, 파리 국립자연사박물관, 미국을 비롯해 일본 교토대학과 도쿄대학 등에 보냈다고 해요.

그중 채집본(채집번호 4638번) 왕벚나무를 독일 베를린대 쾨네 교수에게 보냈고요.

장미과 식물의 권위자인 쾨네 교수는 이를 연구해 제주도 한라산이 왕벚나무의 자생지임을 정식으로 세계에 알렸답니다.

구상나무는 타케 신부와 포리 신부가 1907년 한라산 해발 1700m에서 채집해 미국 하버드대 아널드 수목원 표본관에 보낸 표본이 현재는 스미소니언 박물관에 있다네요.

수목원 식물학자 윌슨에 의해 'Abies koreana'란 이름으로 한국 자생의 특산 나무임이 학계에 보고되면서 세계적 주목을 받는데요.

이처럼 그는 제주에서 사목하는 동안 선교활동을 하면서 제주의 식물을 세계에 알리면서 감귤산업화의 초석을 다진 분이 타케 신부님이기도 해요.

 솔방울처럼 생긴 구상나무 암꽂과 잎 틈새 작은 수꽂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인 김찬수 박사에 따르면 식물학 분야에서 다케 신부가 내놓은 성과는 엄청난 것이라 하네요.

당시 헐벗고 굶주린 제주도민들을 구휼하기 위해 온주밀감을 도입했고요.

온주밀감 나무는 오늘날 제주도 감귤 산업의 마중물이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요.

또한 왕벚나무를 채집하여 제주도가 왕벚나무의 자생지임을 세계에 최초로 알렸는데요.

관음사 인근에서 왕벚나무 자생지를 발견해 영국 식물학자에게 표본을 보내자 그가 이를 학계에 보고한 다음 에딘버러 왕립 식물원에 소장한 거지요.

구상나무 표본을 채집한 타케 신부는 이 나무가 한국의 특산이라는 사실을 규정하는 데도 크게 이바지하였는데요.

이 구상나무는 1907년 에밀 타케 신부와 일본에 파견된 포리 신부가 한라산에서 채집한 제주 토종 나무였지요.

원조 구상나무의 고향은 놀랍게도 우리나라, 소나무과 전나무 속 상록수인 구상나무의 이름은 제주도 방언 ‘쿠살낭’에서 유래했대요.

‘쿠살’은 성게를 이르는 제주어이고요, ‘낭’은 나무라는 뜻으로 나뭇잎 형태가 성게와 닮아서 붙은 이름이래요.

이는 그가 식물학자로서 채집한 2만여 점에 달하는 식물 가운데 하나라고 하네요.

전시된 식물표본을 사진에 담으려니 조명이 유리판에 반사돼 구상나무 등은 얼비치는 빛으로 인해 주제가 가려져 유감이었어요.

1915년 목포 산정 성당으로 전임할 때까지 13년간 제주에 머문 그는 이 시기 서귀포에서 식물 채집 활동에 매진했다고 합니다.

잘 알려진 천연기념물 156호 제주 왕벚나무를 비롯 구상나무, 향유, 화살나무, 한라개승마, 가시복분자, 제주산버들을 채집해 세상에 알렸는데요.

무려 채집 표본만도 7047개로 알려져 있으며 표본은 주로 영국, 프랑스, 미국 하버드대, 일본 도쿄대학이 보관하고 있다고 해요.

타케 란 이름이 들어간 ‘타케티(taquetii)’ 125종과 채집본이 있는 타케 식물 1670종은 세계 식물원 누리집에서 찾아볼 수 있고요.

그만큼 그는 근대 한국 식물 분류학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셈이지요.




갈수록 최고의 크리스마스트리로 인기 상종가를 치는 구상나무에 대해 얘기를 하려면 밤을 새워도 모자랄 판인데요.

흔히 크리스마스트리는 소나무, 전나무, 가문비나무 등의 키 큰 침엽수였거든요.

근자 실내에 적합한 사이즈로 아담한 구상나무가 원뿔형 단아한 수형으로 각광받고 있지요.

구상나무가 보여주는 안정된 삼각 구도는 삼위일체를 상징하기도 하고요.

게다가 짧은 잎새는 도톰하면서도 조밀하게 분포됐고 잎 끝도 날카로운 침형이 아니라 부드러운 데다 잎 뒷면은 은빛이 도는 회녹색.

따라서 크리스마스트리로는 최적인 나무가 바로 구상나무(Korean Fir / Abies koreana)로 매년 트리의 70%를 차지한대요.

구상나무 개량종은 90품종 이상이 개발돼 조경수나 트리용으로 꾸준히 사랑받고 있지만요.

고유종은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에서 2013년부터 안타깝게도 ‘위기’ 단계로 분류한 멸종 위기종이 됐는데요.

최근 들어 구상나무 군락지인 한라산과 지리산 덕유산 등지에서도 기후 위기의 시대, 불길한 적신호가 감지되고 있어요.

기후변화로 말라죽은 구상나무 개체 수가 증가했다는 보고에 이어 한라산 구상나무숲 면적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더군요.

구상나무를 가꾼 미국 신부님 이야기도 듣고자 하신다면  포스팅 <기적의 항해>로 초대합니다.

타케 신부는 한국에 온 후 1952년 선종할 때까지 55년 동안 단 한 번도 고향 방문을 못한 채 한국에서 하늘의 부르심을 받았다네요.

모쪼록 이번 전시회가 제주도의 식물을 전 세계에 알린 타케 신부를 새롭게 조명하고 기리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나아가 우리 모두 자연의 가치에 눈 뜨고 환경에 대해 숙고하는 생태영성에 마음 기울여, 보다 소박하고 단순한 삶을 실천할 수 있기를!


https://youtu.be/0gkPh6nIkUg?si=KcYT2R6PFqiJjX3C


전 화 : (064) 762-6009

팩 스 : (064) 732-6009



기적의 항해 :https://brunch.co.kr/@muryanghwa/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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