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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Jun 01. 2024

꿈은 이루어진다

날마다 삼십 여분씩 걷기를 한다. 그때 신으라며 괜찮은 조깅화를 선물 받았다. 운동화치고는 고가품이라 내 주변으로는 평생 사신을 리 없을 터다. 발이 덕분에 호사를 한다. 볼이 넓어 발이 편하고 운두가 높아 키가 커 보이는 장점도 있다. 모양은 좀 둔하지만 유행을 타거나 쉬 싫증 날 것 같진 않다. 평평한 바닥이 아니라서 처음엔 허뚱거려지고 어지러운 감도 들었으나 적응이 되니 그럴 수 없이 걸음걸이가 가볍다. 가격이 비싼 만큼 착지감도 좋고 척추를 반듯하게 세우도록 해줘 자세까지 잡아주는 효과가 있는 신발이다. 아이처럼 '새 신을 신고 뛰어보자 팔짝~머리가 하늘까지 닿겠네..' 절로 동요가 흥얼거려진다.




말 타면 경마 잡히고 싶다던가. 좋은 말을 타보니 슬슬 말을 끌고 가는 牽馬잡이까지 두고 싶어 지는 게 사람의 마음이다. 욕심은 갈수록 태산을 이루어 더욱 큰 욕망을 불러낸다. 내가 그 짝이다. 편한 신발을 신고 걷다 보니, 걸으면서 묵상도 하고 기도도 하다 보니, 이 신발을 신고 아주 먼 순례의 여정에 나서 보고 싶어 진다. 중세에 만들어져 천년토록 이어지고 있다는 그 길. 연금술사를 쓴 파울로 코엘로가 걸었던 길로 유명한 '카미노 데 산티아고' 그 순례길에 올라보고 싶은 강렬한 욕구가 불꽃처럼 타오른다. 신발 덕에 얼마든지 그 길을 걸을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날개를 편다. 내가 그만 단단히 바람이 들었다. 전적으로 신발 탓이다.


                                                                 


처음엔 순전히 호기심이었다. 마음은 있었지만 이리 절실하지는 않았더랬다. 막연히 아주 막연히 한번 가보고 싶다고 생각했더랬다. 그런데 이제는 몸이 단다. 열망으로 몸이 달아오른다. 꿈에서도 그 길을 걷는다. 어서 오라고 자꾸만 그 길이 나를 부르네... 혼잣소리를 하고 보면 전율이 일기도 한다. 속계(俗界)에서 입던 옷일랑 착착 개켜두고 헐렁한 옷에 편한 신발을 신고는 이슬람교도들이 일생에 한번은 반드시 간다는 메카로 향하듯이 나는 갈 것이다. 이제 그 순례는 내가 살아있는 동안 꼭 하고 싶은 일의 첫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언제이고 꿈은 반드시 이루어짐을 나는 믿는다.


                                                               


외가 쪽 친척인 난호 아줌마가 '카미노 데 산티아고' 란 책을 냈다. 배낭을 지고 순례길에 나선 예순 넘은 그녀 모습이 나를 잡아 이끈다. 강한 자력의 그녀 책 표지만으로도 수시로 나는 울렁증이 도지는 것이다. 언제든 나도 갈 거야, 그 길을 꼭 걸어 볼 거야! 다짐을 한다. 예순 고개도 중반을 훌쩍 넘었다. 다리힘은 괜찮으나 약간 초조해진다. 프랑스의 생 장 피드포르에서 스페인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이르는 800여 킬로 길을 걷자면 체력도 필요하고 비용도 만만찮게 준비해야 한다. 거기다 한 달간에 걸친 여정이다, 쉬이 마음 낼 수 없는 조건들이다. 자칫 만용이나 괜한 호기일 수도 있겠다. 또는 싱거운 헛바람일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나는 꿈꾸기를 멈추지 않는다. 다행히 아직은 걷는 일에 자신이 있으므로.



                                                                   


혼자이면서 함께 걷는 길, 함께이면서 혼자 걷는 길이란다. 평화롭고 행복한 고행길이란다. 정보를 수집하고 지도를 보고 또 본다. LAX에서 파리로 그리고 테제베를 타고.. 그다음은 걷고 또 걷는다. 피레네 산맥을 넘으며 오래된 흙냄새 햇빛 냄새 바람 냄새를 느끼고 싶고 길섶 풀잎 잘게 흔들리는 몸짓을 보고 싶다. 그뿐이다. 차원 높은 영적 깨달음이나 구도자처럼 나를 찾기 위해서라는, 분에 넘치는 기대나 주문은 걸지 않겠다. 산티아고 대성당의 미사시간이 아니라도 여러 번 나는 그 길을 걸으며 눈물을 흘릴 것 같다. 그냥 생각만 해도 벅차오르는 감동으로 솟구치는 눈물 아니 울음. 좀 더 기다리자. 아직은 때가 무르익지를 않았으니 구체적인 계획은 짜진 게 없다. 그러나 벌써부터 마음속으로 짐을 꾸렸다 풀길 여러 번, 도반은 있어도 좋고 없어도 그만이다. 일상을 뒤로하고 가벼이 어느 날 나는 그 길 위에 서 있을 것이다. 홀연히.


                                                                        


그전에 나는 고산의 보길도 세연정이 그리도 보고 싶었다. 기회는 우연히 왔다. 진도에서 열린 문학세미나를 마친 연후 몇 이서 의기투합하여 일정에 없던 배를 탔다. 안개 깊은 땅끝마을에서였다. 지국총지국총 어사화~그 기억으로 오래도록 나는 홍복을 느꼈다. 90년대 초 큰애가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다녀와서는 베네치아의 금빛 물결에 대해 얘기했다. 일 년 후 나는 그 유려한 석양의 금물결을 보고야 말았다. 한국에 나갔다가 틈새를 이용해 오래 별러온 앙코르와트를 둘러보았다. 그 시간은 각성제처럼 고단한 현실을 잠깐씩  잊게 해 주었다. 딸내미가 안내한 샌디에고와 산타바바라의 오래된 미션에서는 양치기 용 지팡이에 달린 무쇠 종을 보았다. 순간 전생에 나 무슨 공덕 쌓아 이런 은총 누리는가 싶어 황감스러웠다. 내 마음의 정원으로 자리한 미션들. 향기로 번지는 그 풍경들은 회상만으로도 마음에 잔잔한 평화가 고여든다.




그처럼 지난 여행을 돌이켜보면 한 일 년여 행복감에 충분히 잠길 수 있으리라. 사는 게 고단하고 괴로울 때, 하다못해 치과치료를 받을 때조차 행복 충만한 여정을 떠올리면 고통이 한결 덜어진다. 마치 딴 세계로  편입된 듯이. 행복한 기억의 힘을 진작부터 믿어온 나. 소용돌이치며 일구는 파문마저 잦아들게 하는 그 힘... 마음, 영혼, 정신은 어디에 있는가.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고 기억하는 이 모든 것을 주관하는 것. 그 자리의 명칭을 무엇이라 불러야 하나?

정신인 것도 같고 영혼인 듯도 싶고... 오즈의 마법사에서 양철 나무꾼은 마음을 찾기 위해 심장을 원했다. 그리스 철학자들이 주장한 대로 심장, 하트가 마음인가? 현대과학에서는 그것을 뇌에 연결 짓는다.

마음의 움직임이 1000억 개에 이르는 신경세포의 신경활동일 따름이라면

종교적 체험은 무엇으로 설명되며 아름다운 대상으로 해서 느끼는 행복은? 그 행복감을 얻기 위해 언젠가는 페루의 마추픽추에 오르고 싶고... 인더스 강가에도 서보고 싶고.... 무엇보다 산티아고 가는 길을 느린 걸음으로 타박타박 걸어보고 싶다. 꿈은 꼭 이루어질 것이다.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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