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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Jun 01. 2024


연분홍 푼사실이 그만

청록 갑사 치마 위에 함빡 흐드러졌다.  

여름의 들머리, 숲 어디쯤에선가 뻐꾸기가 가는 봄을 홀로 전송하는 한낮.

미풍이 자귀나무 잎잎을 애무한다.

밤이면 옷깃 살몃 여미는 정절을 하마 오래전부터 연모해 왔나 보다.

깊은 정한 품은 채로 이울 수 없는 안타까운 정념(情念)이 기어이 몸 풀어 나부낌인가.

갈매빛 숲의 침향(沈香)에 머리 헹군 바람. 그 바람의 어깻짓이 종내는 신들린 듯하다.


자귀나무 위로 구름 그림자가 지난다. 무심히 흘러가는 구름, 그리고 세월.

아득한 유년의 지층에 화석으로 남겨진 자귀나무.

왜 하많은 나무 중 유독 그 나무에 마음을 여는가.

물빛 그리움으로 매양 설레이며 이리도 연연(戀戀)해 하는가.  


오디를 달고 나를 무등 태우던 뽕나무 낮은 가지.

연보라 꿈으로 피어나 너른 잎에 달빛 출렁이게 하던 오동나무.

까마득 높이 치솟아 벽공에 까치집 걸어 준 참죽나무의 훤칠함.

그리고 어느 해 모진 폭풍 뒤 허리가 꺾인 늙은 홰나무, 이끼 낀 샘 가의 배롱나무,

늦가을 감나무 끝의 홍시 빛인들 어찌 잊힐까마는.  


꽃다이 고운 향기도, 예쁜 꽃잎도 지닌 바 없으나

이맘때쯤이면 나는 자귀나무 꽃을 찾아 산에 오른다.

자귀나무를 만나지 않고서는 도무지 심란하여

갈피갈피 스며드는 허기 혹은 빗물 같은 걸 감내할 수가 없으므로.

그러다 자귀나무를 만나면 나는 아예 그 그늘에 묻혀 버린다.  


외가의 뒤꼍, 볕바른 장독대만 지나면 곧바로 동산이었다.

굳이 울타리 따윈 없었다.

굴뚝 모퉁이 짬에 엄나무 가지를 쳐다 걸쳐놓은 외에

솔게 난 노간주나무가 생울타리 역할을 했다고나 할까.  

 뒷산과 통하는 길, 그러니까 장독대 제일 큰 장 항아리 옆으로 비스듬 길은 나있었다.

겨우내 구들을 데운 청솔가지 섞인 마른 나뭇단이 점차 허술해질수록 길은 넓어졌다.

그 낟가리 같이 큰 나뭇단이 몸체를 의지한 나무가 바로 자귀나무였다.

그 나무는 약간 구부정한 허리만 빼면 귀골 타입의 아주 잘 생긴 나무였다.  


한겨울 자귀나무는 굳게 잠긴 덧문 너머로 잊혀진 나무였다.

그러다 종달이가 날고 창포가 피고 보리가 영글 무렵이면

 자귀나무는 어느새 연분홍으로 수줍게 치장을 시작했다.

정부인(貞夫人) 가슴에 늘여진 노리개의 차랑한 매듭술과도 닮았고

춤사위 산들산들 휘돌아 펼쳐내는 부채춤에서 본 것과도 같은 자귀나무 꽃.  


그 꽃이 필 무렵이면 얼마 남지 않은 나뭇단 속에선

농주(農酒)가 저 혼자 보글거리며 숨결을 삭히고 있었다.

보리 바심이나 모내기 때 쓰려고 담아 둔 술이 꼭꼭 숨은 채로 노오랗게 익어갔다.

외숙모는 때때로 항아리를 두드려 울려오는 음향만으로도 술 익은 정도를 잘도 아셨다.



술을 뜰 때는 한밤중이었다.

밀주는 그렇게 은밀한 어둠 속에서 걸러질 수밖에 없었다.

심지 낮춘 남포불을 받쳐 들고 나는 외숙모 곁에서 무서움도 잊은 채


꿈꾸듯 아예 몽롱히 그 내음에 취해갔다.

그때 성긴 잎 사이로 자귀나무 꽃은 수만 개 자그마한 꽃등을 밝혀 주었고

더 멀리 까만 밤하늘 가득 미리내 은물결이 흐르고 있었다.


 지금도 자귀나무 아래에 서면 나는


은은한 꽃향기 대신 취할 듯 감겨오는 그 새콤달큰한 술내음을 느낀다.

때론 흠뻑 취해 들고 싶을 적이 있다. 무릇 술에만 취하랴.

브람스에, 렘브란트에, 보들레르에 그리고 저 자연의 무량함에.


햇살도 비껴가는 유월 오후.

바람이 이는가 보다. 자귀나무 긴 그림자가 다시 너울거린다.

그리움이란 아름다운 것인가. 아름다움이란 얼마쯤 슬픈 것인가.

차라리 나는 눈을 감았다.  - 86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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