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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Jun 01. 2024

공들인 시간의 흔적들

스물둘이었다.

나무로 연필꽂이를 만들었다.

졸업미전에 출품한 작품 제목은 '남과 여'였다.

목공예 시간이었다.


나무필통 한쌍을 만들기로 하였다.


먼저 주제를 정해 대강의 기본형 구상에 들어간 다음 스케치북에 이리저리 디자인을 잡아보았다.


목공예 교수님의 OK사인을 받고는 구체적인 작업에 들어갔다.

물결무늬 얼비치는 마호가니 토막을 목공소에서 구입해 형태 잡아 깎아주었다.


 스웨이드(Suede), 보통 세무라고 하는 천연가죽을 구하려고 구둣방을 돌아다녔다.

당시만 해도 동네골목마다 책상이나 책꽂이를 짜주는 목공소가 있었으며 직접 맞춤인 수제 구둣방이 흔했던 시절이다.

짙은 브라운과 옅은 밤색의 세무 쪼가리는 몇 집 안 거치고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었다.  

드로잉 용지 대고 그려낸 남과 여를 조심스럽게 오려서 나무필통 바깥면 오목 판 자리에 부모로 상정한 얼굴을 각각 붙여줬다.

조각도로 살살 홈을 파내다 손에 상처 냈던 선연한 그 기억만이랴.


아교풀 팔팔 끓을 때 풍기던 고약한 내음 어째 아직도 잊히지 않고 후각 끝에 맴돌고 있을까.

그 시절 여학생들은 아무래도 공정이 수월한 염색이나 목공예 부분과 섬세한 나전칠기에 많이 몰렸다.

반면 막 인기 끌던 금속공예는 용접까지 하는 등 과정도 복잡하고 다루기 벅찼기에 주로 남학생들이 선호했다.

즈음해서 전통자연염색법으로 스카프를 만들었고 가마가 있는 이천에 가서 며칠 머물며 초벌 도자기 구워 잿물 유약을 입혔다.

그때 완성시켜 미전에 낸 몸체 길쭉한 '자매'란 도자기 한쌍과 재떨이 겸 수반이 있었는데 이런저런 실수로 하나씩 깨져나갔다.

이사 때마다 안고 다니다시피 하며 꽤 아꼈던 도자기인데 이젠 흔적조차 없어지고 말았다.  

한때 신문지상에서 눈에 띄던 아는 작가들도 있었건만 세월 무수히 흐른 지금은 다들 원로 되었는지 그조차 소식 감감해졌다.

연필꽂이 용도로 쓰이기보다 장식용 소품이었던 나무필통 역시 하얗게 잊고 살았는데 한국에 와 오랜만에 다시 만나게 됐다.  

이 또한 전혀 생각지 않았던 터라 울컥 파문 일 정도로 반가웠다.

짐으로 싸 둔 박스 안 어둠 속에서 이십 년 세월 보냈건만 예전 때깔 하나도 변치 않은 채 말끔한 얼굴로 기다려줘 고맙고도 기특했다.

필통에 꽂혀있는 마른 꽃은 바닷가 언덕에서 취한 씨앗덩굴이며 필통 앞의 작은 돌은 해변에서 얻은 달그림자라 명명한 수석이다.


이제사 본디 직분에 맞게 책상에 올려져 연필꽂이 역할에 충실하고 있다.





스물넷.


이른 결혼을 했고 돌 지난 아기는 순하기 짝이 없었다.


공군장교인 신랑이 배치된 오산이란 낯선 고장에서 신혼살림을 차렸다.


미군 공군기지가 주둔한 지역이라 분위기는 사뭇 이질적이어서 도무지 맘 붙일 곳이 없었다.


시내에서 한참 떨어진 파밭 질펀한 외곽지 철로변 함석집에 세를 들었다.


기차가 지나갈 적마다 방이 울렁거렸고 비 오는 날은 지붕을 두드리는 빗소리 퍽 시끄러웠다.


주인집에서 마당에 내놓고 기르는 칠면조는 사람을 보면 뒤뚱거리며 막 쫓아왔다.


기세등등하게 나돌아 다니는 칠면조가 무서워서도 밖에 나가기가 꺼려졌다.


방에서 할 수 있는 '꺼리'를 찾다가 이참에 그림이나 그려보자 싶었다.


화방에 가서 유화 물감과 캔버스, 붓, 나이프 등을 새로 샀다.


본격 화가의 길을 갈만한 수준은 아니기에 이젤까지는 사양했다.


좋아하는 고흐의 그림을 꺼내 서툰 흉내질을 냈다.


명화 따라 그리기를 그때 처음 시도해 봤다.


모작이지만 한동안 시간을 잊을 만큼 몰입해서 제법 열중했던 듯싶다.


꼼꼼히 붓질해 그렸다기보다 나이프를 주로 사용해서 '별밤'을 마무리지었다.


완성품을 화방에 들고 가 목조각이 든 묵직한 액자에 넣고 꾸몄더니 틀이 좋아 제법 그럴싸했다.


대구로 부산으로 몇 번의 이사를 따라다니며 근 삼십 년 세월을 거실 한켠에서 우리와 함께 했다.


살다 보면 전혀 뜻밖의 행로를 걷게도 되는 듯, 생각지도 않게 오십 넘어 미국이민을 가게 됐다.


살림살이를 정리하며 큰 조카에게 뭐든 맘에 드는 거 선물로 또는 정표로 주고 싶다 했더니 액자를 가리켰다.


그렇게 갓 결혼한 조카집에 보내게 됐는데 때마침 장만한 아파트의 모던한 거실에 맞추겠다며 액자를 바꿨다.


유감스럽게도 새로 해 넣은 틀은 영 가벼워 보였고 같은 그림이라도 분위기가 전보다 못한 거 같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


새 주인이 된 큰 조카 마음에 흡족하다면 그로 충분했다.


그림은 내 기억에서 서서히 멀어졌고 이민살이를 하는 동안 아득히 잊혀졌다.


오월 아침, 한창 바쁜 오십 대 큰 조카가 뜬금없이 두 장의 사진을 보내왔다.


미국 가기 전 조카에게 준 서툰 솜씨의 별밤이었다.


카톡으로 사진을 받아 그림을 다시 접하자 감회가 새로웠다.


1972년에 그렸으니 반백년이 지난 치기어린 그림, 그새 나나 너나 이제 골동품 반열에 올랐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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