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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Jun 02. 2024

영화를 통해 단편적으로 신비의 베일을 들춰보았을 따름인 중국. 「붉은 수수밭」과 「국두」로 농촌생활의 피폐상을 접했다면 「북경 55일」과 「마지막 황제」로 궁정생활의 호사로움을 엿봤다. 지난여름, 대학 2학년인 딸내미가 독학으로 중국어 공부를 하면서 중의학을 해보겠다는 생각을 굳히길래 현지답사차 찾은 중국. 괜찮은 중의대가 있는 북경과 청도에 갔다가 대뜸 안 되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자유국가에서 살아온 우리로서는  두 도시의 고압적인 공안원에 질린 데다 치안도 너무 불안해 미련 없이 뜻을 접기로 한 다음 여행에 집중키로 했다. 일주일에 걸친 중국여행에서 극단을 이룬 양 계층을 두루 섭렵할 수는 없는 일. 워낙 지역이 방대하다 보니 자연을 품은 농촌풍경까지는 욕심이고 역사유적지나 명승고적 몇 곳 둘러보는 것으로 만족했다.



영화 「북경 55일」은 열강의 각축장이었던 청나라 말기의 중국이 배경이다. 각국 공사관이 집결되어 있는 조차지(租借地)인 동교민항을 포위한 의화단이 외국인들에게 무차별 테러를 가한다. 의화단은, 기독교를 앞세운 서구제국주의의 침략으로 아편전쟁을 치른 뒤 배상금 등 심각한 후유증에 시달리던 중국인들의 분노와 불만을 배경으로 일어난 단체다. 그들은 외세를 배격하고 청나라를 굳게 붙들어 일으키자는 슬로건을 내걸고 있었다. 그들의 힘을 배외(俳外) 운동에 이용하려는 서태후의 조종에 따라 의화단은 연합군으로부터 고립된 북경 주재 외국인과 기독교 신자들에게 55일간에 걸쳐 집중적인 공격을 퍼붓는다. 그때의 역사적 사실을 미국적 시각에서 화면에 담은 오래된 영화 「북경 55일」.



반면 「마지막 황제」는 몇 년 전에 상영된 영화다. 세 살 나이에 궁중에 들어와 지존의 자리에 오른 선통제. 그는 호화로운 궁전 그러나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자금성에서 내시들에 둘러싸여 귀뚜라미와 노는 어리고도 천진스러운 황제였다. 그가 격동하는 역사의 틈바구니에 끼어 치르게 되는 곤욕들은 보는 이로 하여금 깊은 탄식을 자아내게 한다.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부모와 헤어져 황제가 되었다가 훗날 일본의 꼭두각시 만주왕으로 추대되기도 한다. 그런 전력 때문에 공산정권이 내린 반역죄로 감옥생활을 하다가 노년에 이르러 평민으로 강등돼 식물원 정원사로 일하는 그. 파란만장한 생애를 산, 청의 마지막 황제인 부이의 삶을 통해 근세 중국역사를 조명한 영화가 「마지막 황제」다. 이 영화가 큰 성공을 거두며 자금성은 서방세계에 그 위용을 선보였다. 죽의 장막에 가려졌던 중국에 대한 호기심은 이후 서서히 가열되기 시작했다.



천안문 너머 겹겹의 황금빛 지붕이 이마 맞댄 웅장 화려한 궁성. 그 자금성이 절대권력자인 황제의 공식 집무장소라면 이화원은 그를 위한 여름 별궁이다. 북경 인근의 뛰어난 절경지로 정평이 난 이화원. 아편전쟁으로 심하게 훼손된 것을 서태후의 명에 따라 완벽히 복구시키나, 군함 건조비 등 군비를 유용한 결과 해군력 약화로 청일전쟁의 패인(敗因)이 되었다던가. 이화원 가는 길. 한때 변방의 힘없는 작은 나라 백성이었던 우리를 태우고 가는 택시기사가 연신 엄지손가락을 세우며 한국인 최고라고 추켜 준다. 이에 덩달아 기고만장, 팍팍 기분 내는 작태는 소인배나 할 짓. 지금 우리가 그들보다 조금 더 잘 산다고 해서, 삶의 질이 조금 더 높다고 해서, 우쭐하니 콧대 높인다는 것은 겸손치 못한 일이다. 외려 그 나름의 저력을 인정해야 하는 중국 중국인. 역사의 유장함에 대한 자긍심도, 중화사상이라는 민족적 우월감도, 그들의 의식 저변에 연면히 깔려있기 때문이다.



굶주린 다수의 민중을 밟고 그 위에서 온갖 부귀영화를 누린 절대군주들. 결국 청조를 마지막으로 봉건왕정은 끝났고 격랑의 세월 뒤 국민당을 밀어낸 공산당이 중국을 장악하기에 이른다. 그들은 민중을 지지기반으로 자유평등을 내걸고는 인민 모두가 골고루 잘 사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약속한다. 하지만 오십 년 가까운 사회주의 체제는 인민 모두에게 골고루 빈곤만을 나누어주었다. 결국 시장경제 도입을 시도하면서 그간의 침체에서 탈피,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룩하고 있는 중이다. 그 저간에는 격심한 인플레와 현저한 빈부격차 등 심각한 고민도 쌓여 간다는데.



드디어 당도한 이화원, 규모 면에서나 시설 면에서나 과연 입이 벌어질 만했다. 인공호수인 곤명호의 드넓음이며 인공산인 만수산의 위엄도 대단하지만 원내 어디랄 것 없이 허술하거나 소홀히 다룬 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 옥좌가 놓인 인수전의 장중함. 서태후가 사용했다는 당시의 진품이 전시된 이락정의 사치로움이라니. 그밖에 덕화원 낙수당 불향각 등등 정자와 누각은 이름조차 다 외기 벅찰 지경이다. 하도 넓고 볼거리 첩첩이라 서너 시간 짬으로는 어림도 없다 보니 결국 반에 반도 살피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다 나온 셈이다.



미로 속이듯 이리저리 헤매다 보면 발길 부여잡는 처처의 수려한 가경들. 누각 사이로 버드나무 휘늘어진 고담한 연못이 나오는가 하면 흰 대리석 난간마다엔 해태와 용 조각이 섬세하다. 기와마저 구운 도기를 써서 자르르 윤기 흐르는 지붕의 추녀 선은 날렵하기 이를 데 없다. 곤명호를 따라 길게 이어지는 회랑 칸칸에는 서로 다른 수백 폭의 그림에다 정교한 단청이며 세공은 격조 있는 예술작품이다. 어딘가는 삼나무가 울울하더니 통로 하나 돌아서면 청죽이 운치롭고 또 관목 숲이 녹음 짙게 드리우기도 한다. 때로는 호젓한 쪽문이 반기고 이끼 낀 담장 아래 분재 같은 노송이 아주 고풍스럽게 앉아 있다. 꿈길이듯 환상이듯 아름다운 경관이 너무 많아 정신없이 셔터를 눌러야 했던 이화원. 잠시 정자에 올라 중국식 다탁에서 청화문 백자 주전자에 담긴 국화차 향을 음미했던 망중한의 여백은 자유여행객이나 누릴 수 있는 호사였다.



이화원의 그 무엇보다 나를 매료시킨 연꽃과 비단잉어 이야기를 어찌 빠뜨릴 수 있으랴. 전각 그림자가 되비치는 호수에는 연꽃 만발했고 연잎 사이로 비단잉어의 군무가 꽃물결을 이루던 곳. 혼몽 속을 헤매듯 어릿어릿해지는 의식 사이로 홀연 떠오른 옛 꿈 한자락. 딸아이를 갖고서 꾼 꿈이건만 어제이듯 선명하다. 마침 딸과 동행한 여행길이니 그냥 스칠 수 없는 일이다. "맞아, 이런 곳이었어. 이만큼 연꽃이 가득 피어 있었다구. 비단잉어도 보았어. 연꽃을 꺾을 순 없었지만 잉어 한 마릴 건져 올렸더랬지. 그래서 널 낳기 전부터 딸일 줄 알았지." 곁에 선 딸아이가 빙긋 웃는다.



중국유학의 꿈은 으스스한 현지사정으로 접었지만 뜻이 있으면 우회하더라도 필히 길은 열리게 마련. 연당의 비단잉어 꿈부터가 예사롭지 않은 길몽임을 믿기에 분명 더 나은 미래가 예비되어 있을 것이다. 무슨 연(緣)의 이끌림인가. 이십 년 전 꿈속의 장면을 실제 현실로 보여준 이화원. 딸과 나, 이화원 어느 연못가 구름무늬 난간에 기대서서 한점 그림으로 더불어 연꽃에 취해 있었다.             - 96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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