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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Jun 02. 2024

흥부 박 타기 놀이

랭카스터 일지

야심한 한밤중에 멍이가 요란스레 짖어댔다. 몇 번 짖다 마는 정도가 아니었다. 하도 한참을 짖어대는 바람에 잠귀 어둔 내 잠을 다 깨워놓았다. 두 시가 좀 넘은 시각이었다. 커튼을 제치고 내다보니 멍이는 뒤편 출입문에 바짝 얼굴을 댄 채로 왕왕거리고 있었다. 달도 없이 별빛만 초롱한 깊은 밤. 탐조등 비추듯 플래시로 주변을 빙 둘러보았으나 이상 징후는 안 보였다. 뒷골목 어슬렁거리는 밤 고양이를 보고 짖은 모양이라며 다시 잠을 이어갔다.


성당을 다녀와 아침 준비를 하면서 무심코 뒤란을 내다보다 저게 뭐지? 싶어 고개를 길게 뺐다. 죽 늘어선 쓰레기통 앞에 낯선 나무둥치가 부려져 있는 게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우리 울안이 분명한데 남의 집에 누가 나무를 잘라서 던질 리도 없고. 얼른 쫓아나가 봤다. 널브러져 있는 것은 느릅나무 육중한 줄거리였다. 담장가에 서있는 느릅나무 중심부 큰 가지 하나가 저절로 찢겨서 떨어진 것. 옹이가 있던 자리가 약해서인지 둥치 큰 줄기가 통째로 찢겨 나갔다. 하늘 받치고 줄창 서있기 고단해 대지에 누워 편히 쉬고 싶었던가. 다행히도 그 아래 유선화나 향나무 그 어느 것도 다치진 않았다. 무엇보다 그 덩치가 만일 철망 담을 쳤다면 수리비 꽤나 나갈 뻔했다.


워낙 무성하던 나무라 그만한 지체를 잃고도 느릅나무는 수척한 기미는커녕 표도 별로 안 났다. 오히려 숱 많은 머리 솎아낸 듯 바람길 열려 나무도 시원할 것 같았다. 졸지에 나만 큰 일거리 떠안게 됐다. 마침 구름 잔뜩 낀 하늘, 강수확률 20%라니 어떤 야외 작업이라도 해내기 좋은 날씨다. 팔운동 삼아 하루 즐거이 '톱질 놀이'를 하기로 했다. 우선 냉동실에 넣어둔 빵부터 꺼내두고 켄덜롭을 먹기 좋게 손질해 밀폐용기에 담아뒀다. 맥주도 냉장고에 넣었다. 일하다 새참으로 요기 삼아 먹을 요량이었다. 톱니 크고 작은 톱, 목장갑, 빗자루, 갈퀴 등 연장을 챙겨 들고 뒤란으로 나갔다.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첨엔 막연하기만 해서 한참을 우두커니 서있었다. 하지만 요깟 일 시키자고 인부를 부를 수도 없으니 결국 내 몫이잖는가.


일단 몸통에서 곁가지부터 차근차근 베어냈다. 잘려 나온 잔가지들을 한자리에 쌓아 놓으니 수북해졌다. 그다음엔 굵은 가지를 쓱쓱 톱질할 차례. 땀이 비 오듯 했다. 그 사이 진짜 비도 한줄금 시원스레 훑고 지나갔다. 빗물이 찝찌레했다. 맥주를 쓰레기통 위에 올려놓고 물처럼 마시며 일을 계속했다. 이번엔 큼직한 몸통 차례라 시간이 적잖이 걸릴 터다. 세월아, 네월아 느긋한 맘으로 흥부 박 타기 하듯 쓱싹쓱싹. 전기톱이 있어도 전동드라이버조차 우윙~하며 돌아가는 소리가 겁나 아예 안 쓰는  아날로그 세대. 아무튼 캠프파이어 감으로 마침맞은 굵은 몸통을 적당한 길이로 토막 내 모아뒀다. 톱질 끝에 금은보화가 쏟아지는 기적은 생기지 않았다. 대신 다음 캠핑 갈 때는 장작을 따로 사지 않아도 충분하게 됐다. 이게 바로 마당 쓸고 돈도 줍는 격이겠다.ㅎ

 


간밤에 멍이 혼쭐을 뺀 의문의 사태는 바로 나뭇가지가 쏟아져 내린 일. 겁 많은 녀석은 톱질을 다 마칠 때까지도 근처에 얼씬거리지 않았다. 천둥 치듯 나무가 껶여내리는 바람에 된통 놀랐던 모양이다. 잘린 나뭇가지는 야드 쓰레기 전용 통 셋을 꽉 채우고도 일부 남았다. 다음번에 나머지는 처리하기로 하고 주변 정리를 했다. 먹장구름 떼가 소나기를 퍼붓기 전 완벽하게 일을 모두 마쳤다. 시간은 오후 네 시 넘어가는 중. 허기가 정신없이 몰려왔다. 허겁지겁 밥 한 그릇 게눈 감추듯 하고는 과일을 통째로 내놓고 마냥 집어먹고 나니 비로소 살 것 같았다. 사실 일을 시작하기 전엔 엄두도 안 나고 버겁게 느껴졌다. 그러나 다행히 날씨가 큰 부조를 해줘 일을 수월히 처리해 낼 수 있었다. 뿌듯했다. 속담에도 있듯 억지가 사촌보다 낫다지 않던가.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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