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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Jun 03. 2024

은갈치 깔린 서귀포 어판장

모처럼 새벽같이 일어났다.

가만.... 일찍 일어난 김에 벌써 몇 달째 별러온 서귀포항 새벽시장 구경을 가야겠군.

날쌔게 채비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올레시장 거쳐 이중섭거리 지나서 솔동산도 얼핏 스쳤다.

작가의 산책길도 휙휙 빠른 걸음으로 지나 서귀포구 향해 내려갔다.

아직 한번도 항구 쪽으론 가본 적 없지만 근처 천지연폭포나 건너편 새섬과 새연교는 누차 찾았던 곳.

금방 서귀포 부둣가에 이르렀다.

갯물에 녹슨 고깃배가 다수 정박해 있었으며 날렵한 보트도 섞인 채 흔들거렸다.   

배 위에 꽂힌 댓가지와 붉은 헝겊조각은 나름의 신앙의식, 험한 물길 헤치고 어로작업하는 그들인지라 수긍이 갔다.

해풍이 별로 없어 태극기 천천히 휘날렸다.

비린내 나는 어판장은 바로 이웃에 있었다.

자갈치시장처럼 펄펄 뛰는 활어는 물론 잡어 따위는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오로지 은빛 몸체 얌전히 누인, 살 통통히 오른 은갈치 천지였다.

구부리거나 뒤틀린 갈치는커녕 이집트 벽화 시선처럼 한 방향으로 한결같이 반듯하게 누워있는 은갈치들.

밤새 앞바다 수평선에 집어등 점점이 떠있더니 그렇게 주낙으로 잡아올린 갈치이리라.

배 안에서 뭍으로 밀려 나오는 상자마다 냉동상태이던데 생갈치로는 신선도 유지가 어려워서일까.

하역해 놓은 갈치 상자가 트럭과 냉동탑차에 속속 실려나갔다.

장화를 신은 어판장 상인들은 하나같이 바쁘게 움직였다.

그들의 재빠른 몸짓과 달리 기웃기웃 생선을 둘러보는 이들은 외지 관광객 같았다.

공판장 한편에선 경매도 진행 중이었다.

재작년 오후 자갈치시장 옆 충무동 어시장에서 열린 아구 경매 구경을 한 적이 있는데 그땐 물동량 엄청났었다.


이상한 수신호를 주고 받는 경매인들도 많았지만 시멘트 바닥에 산더미처럼 부려놓은 아구에 질려 머리를 흔들었던 기억.

 
그에 비해 이곳 경매는 처음의 왁자한 분위기와는 달리 눈 깜빡할 새에 후다닥 끝나버렸다.

경매 끝난 어판장은 한산해지며 상인들은 제각금 생선 상자를 밀차에 싣거나 들어 옮기느라 분주했다.

온데 은갈치 판, 어쩌다 더러 돔 종류가 끼어들었으며 비린내 흥건한 바닥은 물기로 질척거렸다.


운동화 젖을세라 발치 조심해 걸으며 앞쪽에서 상자 정리하고 있는 상인에게 다가갔다.

알맞춤한 크기의 갈치 가격을 묻자 상자당 판매 값을 대기에 한두 마리만 필요하다고 했다.

새카만 눈 똥그랗게 뜬 은갈치 한 마리에 3만 원 주면 제법 굵었다.

그 옆에 마침 벤자리가 보여 얼마냐니까 두 마리에 만 원, 같이 포장해 달라고 했다.

덤으로 이쁜 돔새끼 서너 마리를 넣어준다.


쿨러 채운 낚싯꾼처럼 흡족한 기분으로 언덕길 오르는데 어느새 햇살 퍼져 환해진 누리.

오른손에 든 비닐 봉다리가 꽤 묵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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