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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Mar 11. 2024

날마다 수천에 이르는 순례자 자체가 기적인 루르드

까미노 스토리

바르셀로나에서 프랑스 루르드로 직접 가는 기차는 없었답니다. 스페인과 닿아있는 국경도시 나르본(Narbonne)까지 기차로 두 시간, 거기서 차를 갈아타고 다시 툴루즈(Toulouse)에 가야만 루르드행 기차와 연결된다네요. 로마의 향훈이 남아있는 운하의 도시 나르본 혹은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 유적이 즐비하다는 2천 년의 역사가 새겨진 툴루즈, 두 곳 중 어디건 하루쯤 묵을 생각이었습니다. 프랑스 풍토는 스페인과 달리 두드러지게 비옥하고 유순해 편안함을 느끼게도 했으니까요.


기차는 나지막한 평원을 지나기도 하고 만년설 머리에 인 준봉 스쳐 달리다가 지중해 바다 위로 달리기도 했습니다. 나르본 역에 내려서 주변을 살펴보니 삭막하기 그지없어 맘이 별로 내키지 않았지요. 지중해를 낀 툴루즈에서 역시 하루 쉴까 하고 역사 밖으로 나갔으나 하늘빛 칙칙했고 바람은 무척 거칠었습니다. 황량스러운 분위기에 질리기도 했지만 세찬 해풍에 밀려, 도로 역에 들어와 한 시간 후에 있다는 루르드행 기차표를 샀습니다. 간이역같이 자그마한 루르드 역에 닿으니 출출 비가 내렸고 산에는 안개가 자욱이 꼈더군요.


일단 역 앞에 대기 중인 버스를 타고 루르드 성지부터 갔습니다. 마을 안으로 들어갈수록 뜻밖에도 짜임새 있는 동네가 기다리고 있었는데요. 고층건물과 저택들이 조밀하게 들어차있어 마법의 나라에 온 듯 묘한 기분이 들었지요. 인파 따라 무조건 걸어가니 금빛 찬란한 왕관이 씌워진 장엄한 성당이 나타났습니다. 루르드 대성당은 외관상으로는 단일건물 같으나 3만 명 수용 가능한 지하 대성당과 로사리오 성당 등 부속 성당이 안에 별도로 있었습니다.


비 덕분에 더 오래 실내에 머물며 성전 안의 조각상과 스테인드글라스며 성화를 둘러보았습니다. 기도실에서 한참을 머물다 나오니 비가 그쳤더군요. 마사비엘 동굴로 가 벽에 이마 기대 보기도 하다가 다시 층계 올라 성당으로 왔습니다. 종탑 높이가 지상 70m나 되는 데다 날개처럼 양옆으로 둥글게 펼쳐져 있는 교각을 포함한 대성당의 위용은 정말 대단했습니다. 그러나 이곳만은 그 웅자가 충분히 수긍이 가며 이해도 됐지요. 회복 불가능한 병자가 기적을 입어 난치병에서 벗어나 치유됐다면, 만일 그가 엄청난 재력가일 경우 백지수표로라도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지 않겠나요.


그런 생각을 하면서 하늘을 우러르자 아주 커다란 무지개가 반원을 그리며 허공에 떠있었습니다. 일곱 빛깔 점점 더 선명해지는 무지개, 저마다 사진 찍기 바빴는데 이날 따라 무지개는 꽤 오랫동안 한자리에 붙박여 있었지요. 떴다가는 금방 아쉽게도 스르르 사라져 버리는 무지개 아니던가요. 헌데 하필이면 이때 유감스럽게도 전화기 충전이 제로 상태가 되더군요. 해서 구원의 언약, 약속의 징표인 무지개를 대신 내면 깊이 사진보다 더 진하게 각인시켜 두었습니다.  



루르드(Lourdes)는 프랑스 남서부 피레네산맥 북쪽 해발 420m 산기슭에 위치한 작은 마을입니다. 성모 마리아가 열네 살 소녀 베르나데타(Bernadette Soubirous)에게 발현한 동굴 성지 부근 일대를 '루르드의 성모 순례지'라고 부르는데요. 가톨릭 신자들이 성지순례를 오기도 하지만, 중환자나 불치병으로 고통받는 이들이 마지막 희망을 걸고 찾아오는 기적의 성수가 샘솟는 곳이랍니다. 신비스러운 기적을 기대해서라기보다, 딸내미가 세례명을  베르나데다로 정한 근원지라서 찾게 된 루르드이구요. 카미노 걸으며 지친 발걸음도 쉴 겸 순례길 마무리로 찾은 루르드입니다.


루르드 샘물은 기적수로 불리지요. 베르나데타에게 발현하신 성모님이 가리킨 곳을 손으로 파자 깨끗한 물이 샘솟았는데 그때 당부하시길 발현 장소에 성당을 지을 것과 샘물을 마시고 그 물에 몸을 씻으라고 하셨답니다. 그 샘물에 눈병이 난 사람이 눈을 씻으면 눈병이 나았고 고질병을 앓던 사람이 그 샘물을 마시자 깨끗이 치유되는 기적이 일어났는데요. 직접 옆에서 보고 느낀 바로는, 걷지 못하던 사람이 일어나 걷는 것만이 기적이 아니겠다 싶었습니다. 어쩌면 날마다 밀려드는 수천에 이르는 순례자 행렬 자체가 기적이라 여겨졌습니다. 프랑스에서 파리 다음으로 호텔 많은 곳이 루르드라는데 그럴 만도 했지요. 루르드는 그간 알고 있던 성지로서만이 아니라 프랑스인에겐 자기 정화와 힐링을 위한 휴양지로 즐겨 찾는 그런 장소였습니다.


루르드에서 성모님 발현 후 몸이 아픈 이들은 이곳을 찾아와서 치유를 기원하며 성수를 마시거나 몸을 씻었습니다. 병자의 완치 모두를 기적이라고 할 수 없지만, 1882년부터 운영되고 있는 루르드 의료 조사실 보고에 따르면 최초 55년 동안 기적이라 칭할만한 치유 건이 4445회나 있었다고 합니다. 현재까지 루르드의 기적수로 병이 완치되었다고 신고를 한 사람의 수는 1862년 이래 6,700명에 이릅니다. 그러나 불치병에 걸린 사람이 기적으로 병을 고친 후 1년 안에 다시 재발하지 않았음이 의학적으로 증명되고 정식으로 교회로부터 '기적'으로 인정된 사례는 70건인데요. 프랑스인이 55건으로 가장 많고, 이탈리아 6명, 벨기에 3명, 독일과 오스트리아 그리고 스위스 각 한 명씩이랍니다.



한편 성모님을 만난 베르나데타는 사랑의 자매(Soeurs de la Charite’) 수녀회에 입회하여 기도와 은거의 삶을 살게 됩니다. 젊은 나이에 평생을 수도원에서 살기로 서원했음은 세속의 관심에서 벗어나고자 함 외에 기적을 바라며 루르드를 찾는 많은 환우를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는 일만이 자신의 몫이란 생각을 했던 건 아니었을까요. 1844년에 태어나 22년을 루르드에서 살았고, 그 후 13년 동안 느베르(Nevers)에서 수녀로 조용히 기도하고 봉사하며 살다가 35세를 일기로 베르나데타는 눈을 감았습니다.​



현재 51만 m²에 달하는 방대한 루르드의 성모 순례지는 가톨릭교회 측에서 직접 관리하는데요. 중병으로 고통받는 환자들과 그들을 거드는 봉사자들을 위해 마련한 진료 병원과 숙박시설이 현대적 시설을 갖추고 여러 부속 건물로 나눠 운영되고 있답니다. 7천여 명에 이르는 의사와 간호사 수녀 외에 전문 자원봉사자들이 환우들을 돌보고요. 안내센터와 쉼터에서도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이 성지 안내와 기타 필요한 도움을 줍니다. 루르드 당국은 루르드 순례자 모두에게 무상으로 샘물을 제공하고 있고요. 조그만 그 샘에서는 매일 12만 2천4백 리터의 물이 솟아올라 매년 순례자들이 마시거나 떠가는 샘물의 양은 1만 톤이나 된다고 하네요. 내내 감동과 감격으로 벅차오르던 루르드에서의 며칠. 정결한 마음으로 이 시간을 허락해 주신 하느님께 오체투지 삼보일배라도 올리고 싶어졌습니다.  정결한 마음으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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