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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Jun 11. 2024

유월 산책에 나섰다가 이중섭거리로

유월 하늘은 쾌청했고 미풍 산들댔다.

네시에 약속이 있으므로 그 사이 막간을 이용할 겸 근처인 이중섭거리로 걸어갔다.

물빛 수국이 길가 따라 만개해 있었다.

비둘기 노니는 공원 안, 하귤나무 아래 앉아 스케치 중인 화가 손등에 쏟아지는 햇살은 눈부셨다.

애기장미와 담쟁이덩굴 무성한 고샅길 지나 그의 피란시절 임시 거처였던 초가집 뜰로 올라섰다.

얼마 전에 목련화 흐드러졌었는데 어느새 신록 깊어져 초가지붕이 녹음 속에 폭 싸안겨 있었다.

뜨락에는 봉선화도 몇 송이 피었고 단정한 어성초 하얀 꽃 다부룩했다.

설렁설렁 미술관으로 향했다

예매 필수였던 다른 때와 달리 자유로이 입장할 수 있었다.

번번 궂은 날씨에만 찾았던지라 섶섬이 보이는 옥상을 올라가 본 적이 없어 단숨에 주르륵 계단 뛰어오르니 꼭대기였다.

섶섬을 띄운 서귀포 앞바다는 더없이 청푸르고 적당히 구름 깔린 하늘빛 평화로웠다.


<섶섬이 있는 풍경> 그림과 실제 그 풍경을 띄운 바다를 번갈아가며 바라보았다.


자연은 변함없다지만 그때보다 나무가 자라서 섶섬 품섶이 넉넉해졌다.



청년 이중섭, 그의 사랑과 그리움이 담겨있는
1층 전시장에 들렀다.

거의가 삼성가의 기증 작품들이고 기타 사진과 편지를 비롯한 몇 편은 이남덕여사의 기증품이었다.

한국전쟁으로 원산에서 피난 와 서귀포에 닿아 일 년 남짓 동안 가족과 지낸 중섭 일가는 궁핍한 피난살이마저 따뜻했다는데..

자구리 해안에서 게를 잡으며 놀다가 한 칸 살림채에서 게를 반찬으로 삼았던 시기가 그나마 행복한 때였다.  

가족들을 일본으로 보내놓고 한국에 홀로 남아 외롭고 고단한 생활을 이어간 그.


행복은 화려하고 부유하고 거창한 그 무엇이 아니다.

사랑스러운 아내와 두 아들, 단칸 셋방에서 살 비비며 오순도순 지낸 그때가 화가의 생애 중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

담뱃갑 은박지와 엽서 한 귀퉁이에 그림을 그릴망정 그래도 재회의 희망 속에 살았던 그 남자.

일본으로 떠나보낸 가족을 그리워하다가 젊은 나이에 홀로 저 세상으로 간 화가 이중섭은 마사코를 향해 애절한 편지를 쓴다.

나의 빛, 나의 별, 나만의 천사라 부르던 마사코와 두 아들만을 남겨두고 그는 어찌 눈을 감았을까.

은지화, 편지화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으로 채워져 있었으며 재회를 갈망하는 애절한 마음이 편편에 녹아있다.

반면 엽서화는 일본 유학시절에 만나 후에 아내가 되는 마사코에게 보낸 내밀한 연서로 예술가의 뜨거움이 고스란히 담겼다.

시인 구상은 그를 일러 "시적인 미와 황소 같은 화력을 지녔을 뿐 아니라 용출하는 사랑의 소유자다."라고 하였다.

화가 박고석은 그를 이렇게 회고했다.

"개성 강한 독자적인 색채경향이나 분방한 표현수법으로 높이 평가되는 중섭예술의 진면목. 중섭형처럼 철두철미 그림에만 열중하는 작가는 드물며 독창성이 강한 화가도 본 적이 없다."

미술평론가 이경성의 글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있다.

"거미가 거미줄을 짜듯이 거리낌 없이 나오는 것, 그것이 중섭  예술의 본질이다. 그린다는 것은 산다는 것과 마찬가지로 중섭에게 있어서 살아가는 하나의 방법이었다. 중섭 예술의 특징은 조형가로서의 조형능력과 재료의 영토를 확대했다는 점이다."

미술관을 나오자 오후 햇살 쏟아지는 이중섭거리에 여행객 한가로이 밀려다녔다.

적당히 걸은 데다 미술관 나들이로 영혼을 소쇄시켜 어쩐지 충만히 채워졌다는 행복한 느낌.

축복 넘치는 시간이었다.


덕택에 가뿐한 발걸음으로 약속장소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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