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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Jun 10. 2024

대통령 별장 화락원과 허니문 하우스의 경계

쇠소깍에서부터 이중섭거리까지 이어지는 11킬로 여정이 올레길 6코스다.

그와 반대로 이중섭거리에서 정방폭포를 지나고 소라의 성을 거쳐 소정방폭포 들른 다음 서귀포 칼호텔까지 걸었다.

칼호텔 너른 정원을 내 집처럼 거닐다가 돌아서서 바당길과 검은여를 통과해 이국적인 뷰를 자랑하는 허니문하우스 전망대로 향했다.

외국 풍물 같은 큰 키의 야자수와 둥치 우람한 소철만이 아니라 하얀 몸체에 담황색 테라코타 지붕을 인 종각 입구부터 눈길 끄는 이곳.

차례로 드러나는 건물은 하나같이 수도원 풍이면서 성채와도 닮은 이색진 풍경이라 스페인이나 이태리에 온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다.

산책로의 솔숲 울창한 이곳은 과거 잘 나가는 인기 신혼여행지였던 파라다이스 호텔 자리다.

서귀포 최고의 에 자리했으나 객실 수가 오육십 개 정도라 경영적자가 누적돼 을 닫았고 가까이 위치한 칼호텔 측 한진그룹에 매각됐다.


그 이전 이승만 대통령 별장이었다는 소문 무성한데 60년 초에 하야한 노령의 이승만 박사가 이 대단한 건축물을 언제, 어떻게 지었다는 말인지 도시 어리둥절했다.


허니문 하우스는 서귀포의 로열박스에 해당하는 절경지에 위치, 사진 찍기 좋은 뷰로 소문난 카페다.

과거 8~90년대 신혼부부들이 선호한 낭만 어린 파라다이스호텔 중에서도 전망 최고인 자리다.

명승지 호텔이 경영난으로 칼호텔에 넘겨져 현재 부대시설인 카페만 운영 중이다.

입구부터 스페인풍 혹은 지중해 스타일의 독특한 건물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담황색 기와지붕에 거칠지만 하얀 벽체, 둥근 창이며 곡선으로 굽이 튼 회랑 우아하다.

처음 왔던 날, 여기가 이승만 초대 대통령 별장이었다는 말에 순간 뜨악해졌다.

그 얘길 들려준 이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억측을 거의 전적으로 믿는 눈치였다.

대통령이 미국 유학생활을 한 데다 외국인 아내를 얻었으니 서구식 사고방식에 젖어 파티도 하고 그랬을 거라며 사뭇 비난하투였으니까.


식민시대에서 갓 벗어난 궁핍한 나라에서 최상위층은 이런 호사를 누렸다니 어느 시대나 일반 백성은 맹탕 속고만 산 셈?


납득키 어려웠다.

아무리 우방국 귀빈 접대 등의 이유를 댄다 해도 설마 이리 방대한 터에 거창한 규모의 별장 화려하게 지었을까.

회랑으로 연결된 수많은 방에 드넓은 라운지와 수영장이 딸린 호화판 별장이라니.


일단, 53년 휴전 후 상황에서 가당키나 한 발상인가 어이없는 추측이다.


전후 복구가 당장 시급한 판에 이만한 규모의 건물을 지을 경제력은 물론 기술력조차 믿기지 않았고.

설마 하니 말도 안 되는 따위 가설이 어쩌다  왜 어디에서 비롯됐을까.

대한민국 건국 초기의 혼란 정국에 이어 한국전쟁을 겪으며 피폐해진 산하, 길거리엔 비렁뱅이가 득시글거렸다.

목숨 붙은 백성들은 초근목피에 의지하거나 구호물자로 연명하던 대가 아닌가.

그럼에도 통수권자는 거대 수영장 딸린 초호화판 별장을 지었다는 게 말이 되나?

아무리 무소불위의 권력자였다 한들, 그것도 팔십 중반 노인네가 노망기라도 들었다면 모를까 전혀 가당치 않은 소리다.

70년대에나 지어졌을 법한 건물을 이대통령의 겨울 별장이었다고 덮어씌운 이 풍문은 한마디로 낭설에 불과하다.

단지 대통령 별장터라면 맞는 얘기다.

아래 어두침침한 사진에 나온, 대숲에 싸인 창고같이 허름한 집이 바로 이대통령의 소위  별장지.




해방 후의 혼란기를 거쳐 50년대는 전쟁 치르며 극도로 피폐해진 산하에 너나없이 배곯고 살았던 때였다.

그 궁핍한 시대 구호물자에 의존했던 나라에서 위정자로서 도저히 꿈도 꿀 수 없는 호화판 별장 아니랴.

 

현재 대나무 숲 뒤편에 숨겨진 채 삭아가는 낡은 기념관을 화락원이라 부른 별장 자리로 확정하는 데는, 나름 이유가 있다.


이 박사 별장으로 알려진 화진포나 진해에 있는 건물을 비롯 부산 임시수도기념관에서 본 대통령의 거처는 대개 매우 소박했으니까.


화락원은 4.19 혁명 후 국가에 귀속된 채 방치됐다가 훗날 파라다이스 그룹이 인수해 대대적인 공사 끝에 호텔로 개장했다는 게 정설일 게다.


수십 개의 방에 너른 풀장이 딸린 호텔 건물을 이박사 별장으로 환치시켜 매도한 세력은 과연 누구일까?

아무튼 건축양식부터가 50년대 후반에 지어진 건물이라고 단정 짓기 무리일 만큼 시대를 앞선 데다 매우 감각적이라 특별하다.

서유럽 스타일의 고급스러운 건축물은 구석구석 얼마나 섬세하게 꾸며져 있는지, 게다가 벽면의 세라믹 장식 타일마저 곧 예술이다.

언제이고 서귀포 향토사학자를 만나면 이 건물과 관련된 자세한 전후 상황을 들어볼 참이다.

 
 
저만치 동쪽으로는 소천지와 섶섬, 서쪽으로는 정방폭포 주상절리대와 해식동굴이 또렷하게 드러난

멋스러이 펼쳐진 해안선 바라보노라면 누구라도 감성 충만 시인이 되지 싶은 곳.

서귀포 바닷가 중에서도 풍치 가장 뛰어난 으뜸 장소인 허니문하우스 입구에서는 한라산 영봉건너다 보인다.

에메랄드빛 바다를 조망하며 전망대를 돌다가 바람결 서늘해져 전면 유리창 가득 바다가 담긴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빈티지하고 클래식한 인테리어에 커피 맛이 특별하다는데 커피 체질이 아니라서 대신 망고 주스 홀짝이며 둘러본 실내에음악까지 고전적이라 편안했다.

흰 벽체 위로 이어진 천정에 드러난 목재 선마저 저마다 작품이 되는 공간, 거기 취해있는 동안 얼마의 시간이 흘렀던가.

어둠 깃든 바깥은 어느새 청남빛 신비로이 퍼지 시작했다. 


색상부터가 먼 먼 지중해 서정에 취하게 만들었으나 그쯤에서 일어나야 할 시각.

여섯 시 반이면 문을 닫는 카페라 천천히 회랑 빠져나오니 소설 제목처럼 어느새 깊고 푸른 밤이 펼쳐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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