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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Jun 10. 2024

수국꽃 풍성하게 핀 태종사

충청도 친정집에서다. 백일 지난 아들아이를 안고 수국이며 백합 흐드러지게 핀 뜰에서 찍은 흑백사진 한 장. 아버지는 볼일로 대처에 다녀올 적마다 화분을 안고 왔다. 지금 생각해 봐도 신기한 일이지만 그렇게 하여 군 단위 시골인 우리 집에는 60년대에 온실이 있었다. 어느 겨울밤 연탄불이 꺼지며 신기루처럼 사라진 아열대 여린 식물들. 다만 알뿌리가 번져 늘어난 백합이며 꺾꽂이로 다량 번식시킨 수국만은 화단에도 심었기에 추억을 이어갈 수 있었다. 아버지가 수국 화분에 백반을 묻으면 흰 꽃이 푸르스름하게 변하던 꽃. 물에다 빨간 물감을 타서 물뿌리개로 뿌리짬을 적셔주면 분홍으로 변하던 수국.


이처럼 희다고 계속 하얀 것도 아니고 파랑이라고 다 파란색만도 아니다. 순백에 핑크 연분홍 자주색 연노랑 연두색 청록 연보라 남보라 진보라 …. 미묘한 파스텔톤 배합에다 짙고 옅은 농담이 한 송이에서 조화를 부린다. 흙과 물이 어찌 저리도 신비스러운 빛깔을 빚어낼까. 한 그루에서도 뿌리의 길이나 수분 흡수량과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다른 색깔로 변해간다. 그래선지 색색이 다른 꽃말은 냉정, 냉담, 무정, 변덕, 변심, 진심이다. 진심이었다가 변덕이 생기면 변심도 예사롭다.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요즘 세태와 시류를 닮은 꽃 같기도 하다.


수국의 다른 이름은 태양의 꽃 자양화(紫陽花) 다. 해보다는 물과 친한 꽃인데 왠지 중국 시인은 그렇게 불렀다. 토양에 알칼리 성분이 강하면 분홍빛 꽃으로, 산성이면 남색 꽃이 피므로 생각대로 꽃 색깔을 바꿀 수 있다. 꺾꽂이와 분주로 번식시킨다. 수국밭을 이룬 이곳도 사찰 경내이지만 대체로 절에 많이 심는다. 부처님의 머리모양을 닮은 불두화와 꽃 모양은 비슷하나 잎새를 보면 영 다른 종류다. 학명은 하이드랜지어(hydrangea)다. 라틴어로 물을 담는 그릇이라는 뜻. 그늘지고 습기가 있는 나무 그늘에서 무성하게 자라며 너무 건조하면 꽃이 잘 피지 않는다. 수국은 장마가 시작됐음을 알리는 꽃이니 물기 많은 비의 꽃이다.


멀리서 수국 언덕을 바라보면 한 덩어리 꽃송이가 마치 각각 한 송이의 꽃처럼도 보인다. 너른 터에 자리 잡아서인지 전체적으로 풍성하고 넉넉하면서도 소담스럽다. 신부 부케로도 선택받는 수국꽃, 꽃 하나를 찬찬히 들여다보노라면 어느 부위가 진짜 꽃인가 싶다. 원래의 꽃 자체야 작은 꽃잎은 물론 수술과 암술이 퇴화하여 몽글몽글 오글오글 모여있어 볼품이 없다. 그 모양으로는 더구나 향기도 없으니 눈여겨볼 리 만무다. 이에 신의 섭리라는 절묘한 수가 개입한다. 생존전략상 곤충을 부르려 나비 같은 가짜 꽃잎을 스스로 만들게 하는데 이는 꽃받침이 변형된 것이라 한다.


청보라색, 자색, 분홍색, 흰색, 빨간색의 꽃이 핀다. 꽃은 처음엔 노르스름한 흰색으로 피기 시작하지만 점차 청색이 되고 다시 붉은색을 더하여 나중에 보라색으로 변한다. 지조 없다고 나무람받아도 할 말 없겠다. 아무튼 시시각각 그 조화가 변화무쌍하다. 전국적으로 알려진 수국 명소는 부산 태종사 수국이다. 삼천 그루가 넘는 수국이라니 아예 수국 밭이고 수국 언덕이다. 해마다 칠월이면 수국축제가 열린다고 한다. 축제에 앞서 태종사 유월 수국을 보러 왔다. 아직 제철이 아니라도 꽃을 담으려는 사진작가와 관람객이 제법 많았다. 무뜩 '하나의 마음도 주체하지 못해서/들었다 놓았다, 풀었다 맺었다 하루에 열두 번도 더/변덕을 부리다가, 꽃의 몸을 빌려 빵반죽처럼 부풀어도 되는지...' 최정란시인의 수국꽃 시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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