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량화 Jun 10. 2024

아홉산숲을 가꾼 독림가 4대

젊어서부터 친구는 세월을 압축시킨 분재에 빠져지냈다.

주로 목백일홍과 왜단풍에 집중해 왔다.

오래전, 친구는 분재원 농장 뜰에서 단풍나무 묘목을 한 삽거리쯤 움푹 떠왔다.

씨 떨어져 제멋대로 수복 돋아난 홍단풍 싹, 쥔장에게는 뽑아버려야 할 잡초에 다름 아니었다.

친구는 고성에 있는 시댁 선산 양지바른 빈터에 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묘목 삼아 퍼 왔던 것.

그날 즉시 차를 몰아 고성까지 가서 정성 들여 심은 어린 단풍나무 모종.

다행히 그때 따라 비도 알맞게 내려줘 지금은 조밀한 단풍숲을 이뤘다기에 한번 구경 가자 한 터였다.

당시 알맞게 거리를 두고 심었으나 나무가 자라니 간격이 너무 바퉈, 날 잡아서 옮겨줘야 한다기에 그때 동행하기로 했다.

먼 훗날, 후대들이 명절날 선산 찾았다가 단풍나무 그늘 아래서 그 나무 심은 선대 할머니 칭송하며 옛 이야기할 것이다.

친구에게 '넌 정말로 세상을 제대로 살아냈네. 가난한 의학도의 배필 역만이 아니라 가문에도 좋은 몫을 하고 가는구나'라고 했는데.



친정아버지는 독림가 소리를 들었다.

젊어서는 자유당 바람 타고 소나무 벌채 허가를 얻어 수많은 산을 벌목해 민둥산을 여럿 만들었다.

송진 내 상긋하던 산판에 가면 장정들이 우람하고 정정한 거목을 톱질로 척척 넘어뜨리곤 했다.

다행히 속죄의 기회가 주어진 것인지 나이 들면서 동산을 구입해 밤나무와 호두나무를 수천 주 심었다.

나무를 심으며 자연스럽게 화훼에도 관심이 가닿아, 60년대 우리 집 뜰에 온실을 만들 정도로 밤 시세는 높았다.

그러나 목재소를 확장하면서 사업이 기울기 시작, 결국은 아버지 대에서 밤동산마저 다 은행으로 넘어가 버렸다.

한눈팔며 오만 한량짓에 줄줄이 첩실 거느리고 허랑방탕하느라 본업에 방만했던 때문이다.

그 인과로 호된 병마까지 겹쳐 노후를 힘겹게 보내야 했으며.

재산은 일구기보다 지키기가 더 힘들다 했듯 사는 모습을 보나따나 하늘에서도 더 이상 돕고 싶지 않았던 모양.

한평생 살아온 족적을 보고 현재를 보면 그럴만하다고 수긍되는 부분, 아니 딱 합당하다는 생각마저 들 적이 있다.

하늘도 무심하다거나 공평치 않다고 더러 불평하기도 하나, 그에 앞서 하느님 눈에 벗어나지 않게는 살아야 할 터.

 

일정 규모의 산림을 모범적으로 경영하는 분을 독림가(篤林家)라 칭송한다.

얼마 전, 반듯하고 정갈하게 살아오신 표 역력한 어느 가계의 유산을 접했다.

기장 철마에 위치한 아홉산숲은 순우리말 이름부터가 예사롭지 않았다.

남평 문 씨 집안에서 일궈낸 대역사, 건강하고 아름다운 생태숲에 들자 숙연해지기조차 했다.

4대에 걸쳐 아홉산숲을 정성 들여 가꾼 문 씨 일가의 청청한 대밭과 편백숲, 금강송 군락지는 감동 그 자체였다.

한 집안에서 사백 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대를 이어 자연을 건강하게 가꾸고 지켜왔다는 사실부터가 감동.

대대로 자손들 하나같이 선대 유지 받들며 흐트러지지 않게 단정히 살아왔다는 반증이니까.

쉽지 않은 일이다, 중간에 어느 하나 못난 자손 둔다면 오늘의 아홉산숲은 없었을 테니까.

늠름한 기상으로 울울창창 푸르른 그 너른 숲을 오랫동안 한결같이 푸르게  지켜냈다는 것은 대단한 일.

현재 이 집안의 대주이자 숲 지킴이는 울산에서 치과를 운영한다고.

고사리조차 귀하게 여긴다는 뜻을 지닌 고옥, 단아하기 이를 데 없는 관미헌이며 연리지 목백일홍 얘기도 빠뜨리면 섭하겠다.




숲길 걸은 후, 더없이 단아하고 수려한 관미헌에 들어서자 고개 절로 주억거려졌다.
 
근자 들어 전통마을에 복원시킨 한옥은 고래등 같은 기와집이라는 표현과 하나같이 겹쳐지지 않던가.

~소리가 절로 나게 어마무시하다 못해 위압감마저 느껴지게 아주 거창하기만 하다.

건물이나 집은 무작정 크고 너르고 높다 해서 다 대단한 것이 아니다.

하나의 건축물은 거기 깃든 사람의 삶을 담게 되며 정신이 담기는 그릇으로 사회상까지 담고 있다.

시대의 문화가 담겨있게 마련인 집이지만 그보다는 쥔장의 기본 철학이 고집스레 녹아있는 집.

욕심스럽지 않은 아름다운 고집을 지닌 고택을 아홉산숲 품에서 만났다.

이처럼 품격 있는 고택이 또 있을까.

단아한 기품의 수려한 외관에 못 하나 박지 않고 자연친화적으로 지은, 담박하면서 고아한 관미헌(觀薇軒).

조상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살고자 애쓰는 후손들이 가풍을 고이 지키며 오늘을 살아가는 남평 문 씨 가문의 종택이다.

‘고사리 같은 하찮은 풀도 눈여겨본다’는 의미가 담긴 옥호는 그 댁 삶의 좌우명으로 배여든 자연사랑 정신이다.

나뭇결이 그대로 살아있는 전통방식의 한옥인 관미헌.

순전히 대대로 뒷산에서 가꾼 나무만으로 지었다니 궁궐 지을 때나 쓰인다는 금강송을 썼겠다.

앞뜰에는 백 년생 우람한 은행나무 배롱나무 자귀나무, 본디 제 자리이듯 어찌 그리 자연스럽던지.

바깥마당 정원, 죽순 한창 돋아나는 희귀 구갑죽과 황금죽 자색죽이 쑥쑥 자라고 연리목으로 얽힌 배롱나무도 눈여겨볼 만하다.

건물 입구 축대에 지하창고 같은 시설물은 자연 냉장고 역할을 했다니 산림만이 아니라 살림살이도 과학적으로 운영한 가계다.

사철 새소리 여울지며 목향 감도는 이 집에서는 여전히 나무 아궁이를 사용하면서 지금도 가족들이 거주하고 있어 마루 반들거린다.

관미헌이 안긴 아홉나무숲은 그린벨트이자 상수원보호구역이라 건강한 자연 생태를 간직하는 데 일조를 한 점도 있다고.

물론 광대한 숲을 한 집안에서 9대 4백 년이라는 오랜 시간 동안 가꾸고 지켜왔다는 것만으로도 높게 평가받아 마땅하다.

다양한 종류의 나무를 품은 이 숲에는 116그루의 나무가 보호수로 지정받을 정도로 귀한 숲에 틀림없으니까.

관미헌이 자리한 아홉산은 아홉 골짜기를 품고 있다는 뜻의 순우리말 이름이다.
 
 위치 : 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미동길 37-1

관미헌 돌담
관미헌 축대를 이용한 지하 저장고는 자연 냉장고
오죽
연리목
구갑죽
아홉산숲 초입
작가의 이전글 모기장도 파는 서귀포 오일장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