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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Jun 09. 2024

모기장도 파는 서귀포 오일장

연 이틀 비가 쏟아졌다.

오늘도 새벽엔 소나기 오락가락했지만 날씨가 차츰 개이길래 과일을 사러 나섰다.

이마트에서 장을 보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오일장 보러 간다며 할망들이 우르르 차에 올랐다.

집에다 짐을 부려놓고 다시 나왔다.

시간도 어중간하니 장구경이나 하고, 간 김에 고구마를 사 와야겠다 싶었다.

일기예보는 빗줄기를 예고했지만 옅은 구름층으로 보아 비가 올 거 같진 않았다.

오일장에 다다르자 푸른 하늘도 좀 드러났다.

 

평일에 오일장 와보긴 첨이다.

일부러 대목장 구경은 두어 번 해봤는데 대목장과는 또 다른 묘미가 있는 일반 장날은 흥미로울 정도로 오밀조밀했다.

널러리한 시간이라 장터 구석구석 빠짐없이 훑다 보니 별의별 오만가지가 거기 다 모여있었다.

과일전 채소전 생선전 건어물전 기름집 그릇집 옷가게 신발가게만이 아니었다.

식당도 국숫집, 김밥집, 국밥집, 중국식당도 하나 있었다.

국화빵 굽는 집, 수육과 순대 썰어 파는 집, 찐 옥수수 파는 집,  갖가지 반찬 만들어 파는 집은 손님이 많았다.

종묘상에 약재상에 꽃집에 채소 모종 파는 집에 곡물점에 포목점도 뒤편에 끼어있었다.

요새도 라디오에 꼽는 카세트테이프를 듣는 사람이 있는지 테이프며 음반도 팔고 있어 고개 갸웃댔다.

곡식을 까부는 키도 있고 가루를 곱게 쳐주는 체도 있었다.

하도 오랜만이라 반갑기로는 모기장과 죽부인과 곡괭이와 쇠스랑 그리고 누룩까지.

거듭 들여다보며 확인했을 만큼 아직도 건재한 쥐덫은 자못 신기했다.

한참 서서 어성초, 방풍 뿌리, 졸참 나뭇잎, 우슬 같은 마른 약제들도 구경했다.

제수품과 인파로 대변되는 대목장이라면 일반 장날은 사라져 가고 잊혀가는 옛것들과의 재회가 이루어지는 날.

까맣게 잃어버린 과거 정경이며 향수 어린 예전 물상들이 거기서 고스란히 기다리고 있었다.

 

오일마다 열리는 장날 새벽은 움메! 소 울음소리로 시작됐다.

팔려가기 싫어 집 떠나면서부터 울기 시작한다는 소 울음이 처량스레 들리는 날이면 그날은 장날이 틀림없었다.

반면 아이들은 장날을 소풍날 기다리듯 기다려왔다.

닷새가 오 년 같았다.

어른들이야 장날이면 쌀도 사고 푸성귀도 사고 생선도 사고 계란 한 줄이라도 사야 하니 돈이 나가는 날.

철없는 아이들이야 새 신발도 얻고 재미진 구경도 하는 장날이 그저 좋았다면 어른들은 걱정부터 앞서던 장날이었다.

아궁이가 있던 당시라 장날이면 장작이며 솔가지도 단으로 사다 쟁여야 하니 이래저래 지출이 많은 날이었으니까.

주욱 나뭇짐이 모여드는 나무시장이 큰 내 둑방 아래 섰다면 장터 옆 너른 공터엔 우시장이 열려 각지에서 소장수들이 모여들었다.

그 근처엔 가마솥에서 김 푹푹 오르는 국밥집도 성시를 이뤘다.

어른들 시름이야 전혀 헤아릴 줄 모르니 철부지 아이다.

모든 게 풍성한 장날이 아이들은 물색없이 좋기만 해 무작정 싱글벙글할밖에.

 

아직 어릴 적, 엄마 치마꼬리를 잡고 신이 나서 폴카 스텝 밟으며 따라나섰던 당진 장날.

광목 차일 드높이 쳐진 장날은 매번 왁자지껄 잔칫날 같았다.

장이 선 날 장바닥은 학교에서 열린 운동회날만큼이나 떠들썩했다.

만국기만 휘날리지 않았을 뿐 아이들에겐  즐겁고 흥겨운 축제일에 다름 아니었던 장날.

엿장수 가윗소리만이 아니라도 약장수 따라다니는 풍각쟁이는 나팔 불며 마술도 부렸다.

게다가 아이들이 좋아하는 원숭이가 온갖 재주까지 펼치니 그런 오진 구경을 어디서 해보랴.

조무래기들은 어서 가라며 후쳐댔지만 아이들은 입을 헤~ 벌린 채 맨땅에 진을 치고 앉아 꼼짝달싹하지 않았다.

마침내 아이들이 냅다 일어나 달아나게 되는 일이 벌어지는데 약장사가 비암! 비암이 왔어요, 외치며 굵다란 뱀을 꺼내는 순간.

혼비백산 소리 지르며 사방으로 도망치는 아이들 자리는 금세 남정네들로 메꾸어졌다.

장날은 그렇듯 그 시절 최고의 즐길 거리를 제공하는 구경터이자 애들 입에 모처럼 주전부리가 물리는 날이었다.

엿이나 꽈배기, 셈베이와 왕사탕, 건빵과 미루꾸가 전부였던 50년대였다면 지금 아이들 상상이나 될까.

잠시 그 시절로 돌아가 옛날을 반추하게 해 준 서귀포 향토오일장 장구경은 꽤나 실팍졌다.

비닐 봉다리 두엇 챙겨 들고 돌아오다 보니 백록담 어름을 흘러가는 구름에 노을빛 살짝 어려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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