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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Jun 12. 2024

필라델피아, 도회의 명암

일요일이 아니면 짬을 낼 수 없던 나들이다.


마침 연휴라 주 중의 하루 필라델피아를 찾았다.

강시인과 동행한 길이다.

어느 누가 감히 엄두를 내랴.

역시 강시인이다.

미국 어딘가에 산다는 십 년 전의 문우다.

 

뉴욕까지 온 김에, 라지만 옛정 잊지 않고 챙긴 그녀가 가슴 뭉클하게 고마웠다.

이리저리 수소문 끝에 미국에서 은둔 아닌 은둔생활 중인 문우 기어코 찾아낸 강시인.

강시인이 아니라면 그 누가 이 멀고 먼 곳까지 불편함 무릅쓰고 찾아올 생각을 하랴.

그녀와 함께 한 2박 3일 만리장성만큼 긴 이야기를 나누며 부산 문단 소식은 물론 쌓이고 쌓인 회포를 풀었다.

성실히 부지런히 최선 다해 살았던 장한 엄마 그녀의 진면목을 재발견할 수 있었던 시간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그녀를 이곳까지 올 수 있도록 징검다리 역할을 한 따님 가족들.


교환교수로 뉴욕대에 와있는 사위인 신 교수가 수고를  많이 했다.

차이나타운에서 우리는 점심을 먹은 다음  미국 내에서 제일 오래됐다는 아이스크림 집에 들렀다.

갈 때마다 개관시간이 끝날 무렵이라 구경 못했던 로댕 미술관에 가기 위해 길을 걸으며 우린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다운타운 안의 필라 뮤지엄을 관통하는 대로상 한쪽에 있는 자그마한 로댕 미술관.

그곳을 향해 필라 중심가를 부지런히 걸었다.

뙤약볕 내리쪼이는 시청거리를 가로질러 걷는 동안 그녀를 놀라게 한 뜻밖의 풍경들.

도중 곳곳 조형이 잘 된 정원과 고목 숲 그늘과 벤치가 알맞게 배치된 공원을 지나는데 거기서 의외의 군상들과 여러 번 접하게 됐다.

공원 벤치를 점령한 그들은 이른바 홈리스족들, 떠돌이 부랑아 무리들이다.

IMF 이후 한국에서도 공원이나 지하철 역사 등에서 자주 목격했던 홈리스족이라, 하긴 생소할 건 없으렷다.

언젠가였다,


밤 열차를 타고 야심한 시각에 닿아 부산 역사 밖으로 총총 걸어 나왔다.

신문을 덮은 채로 맨 아스팔트 땅을 잠자리 삼은 숱한 노숙자들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게 됐다.

그중에 아이까지 딸린 남자가 한뎃잠을 자는 것을 목격하고 충격을 넘어 기가 찼던 기억.

요즘 미국은 극심한 불경기가 계속되며 문을 닫는 회사들이 부쩍 늘고 있다.

허나, 활황기 때 살아본 경험이 없는 나는 그런대로 괜찮은 편인데도 한인들도 경기가 나빠졌다고 야단들이다.

제조업은 물론이고 반짝 뜨던 닷컴 기업들이 속속 무너지며 30년대 공황 이래 최대의 실업난을 겪고 있다며 아우성을 친다.

젊은이들은 일반 회사에 취업이 어려우니 대학 나오고 다시 로스쿨로 가거나 몇 년 전 한국처럼 대학원 진학 붐이 일고 있었다.

주변에서도 몇 사람이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새로운 일자리를 찾는 경우를 보았다.

집단 해고, 구조조정, 도산이란 단어가 요즘 들어 자주 눈에 뜨이기도 한다.

아무리 그래도 세계 최고의 부국인 미국에  거리 떠도는 거렁뱅이들이 이토록 많다니…

하긴 거지노릇도 제 자유요 프라이버시라 내세운다던가.

그러나 사지 성한 사람이 무슨 일이든 일을 찾아 할 것이지 왜 그러고 사나? 싶었다.

홈리스로 전락한 이유야 알 수 없지만 대체로 허우대 멀쩡하건만....

걸인은 대체로 흑인이 많으나 젊은 백인도 꽤 된다.

그중에는 더러 정신이상자도 섞였다지만 약(마약류)을 하는지 손을 떨거나 심지어 전신을 떠는 경우도 흔했다.

미국 어디서나 그들의 특징은, 모두들 땀 흘려 일할 시간에 멍하니 한눈팔고 앉았거나 시도 때도 없이 거릿잠을 잔다는 것.

차림새가 지저분하고 텁수룩한 머리에 때와 땀에 쩔고 쩐, 해진 옷차림을 한 그들은 하나같이 고약한 악취를 풍기며 좀비처럼 걷는다.

손에는 한국에서라면 소줏병, 여긴 반쯤 남은 콜라병을 들고 있다.




우리가 사는 뉴저지는 한적한 전원이라서 이 같은 떠돌이 부류를 볼 수가 없는데 대도시는 어디나 예외 없이 거지가 많다.

전에 시애틀 중심가에서도 홈리스족을 떼거리로 보았는데 워싱턴 DC는 물론이고 어디든 대도시란 거지들 살만한 조건이 되는 모양.  

도시미관을 흐리든 어떻든 시민들의 휴식공간을 점령한 채로 태평인 그들.


혼자라면 거리 지나가기도 겁이 날 만큼 숫자도 많다.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최고로 잘 사는 나라에 걸인이 떼로 몰려있다니…

그녀는 쯧쯧 혀를 차며 하긴 가난은 나라님도 구제 못한다 하였지, 한다.

더구나 미국에선 부랑아를 시설에 수용해 놔도 인권침해가 어떻니 하며 자유를 간섭 말라는 주장과 함께 석방을 요구하면 달리 도리가 없단다.

당당히 거지라는 직업도 직업이라나 뭐라나 하면서.

후미진 뒷골목이라면 모르는데 필라의 중심가 공원에 버젓이 진을 치고 상주하는 그들.

오가는 이들이야 눈살 찌푸리든 말든 하여간 이리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겨울 코트를 걸치고 아무렇지 않게 잠든 사람들.

아예 담요까지 덮고 잠든 사람, 한껏 구부린 채 새우잠을 자는 이도 있었다.

옆 사람과 한담을 즐기는 사람, 충혈된 눈자위를 번득이며 오가는 인파를 훑어보는 사람, 무어라 쉼 없이 중얼대는 사람, 신문 쪼가리를 읽고 있는 사람, 멍청한 시선으로 허공을 더듬는 사람 등 유형도 갖가지다.




도심 곳곳에 만들어진 공원은 데이트 공간이자 아기 데리고 산책 나온 사람들이 바람 쐬는 장소이며 도시 노인들의 휴식처다.

점심시간이면 인근 오피스의 직원들이 간편식을 사들고 찾는 식사 장소이기도 하다.

명암 짙은 도회의 고민 중 하나로, 공원의 오후 풍경은 이렇듯 아름답지 못한 면모를 유감없이 노출시킨다.

밤거리야 말할 것도 없다.

필라델피아 밤길을 걸어본다는 건 대단한 모험을 넘어 죽을 각오나 해야 되지 않을까 싶다.

하긴 행색 남루하고 추접다 한들 그들 역시 외면할 수 없는 이 도시의 구성원, 도시를 도시답게 만드는 요소의 하나일지도.

누군가 그랬다. 어둠이 있어야 빛이 더 밝게 드러난다고…

진작에 프랑스에서 로댕의 진품들을 둘러본 터라 별 의미는 두지 않을지라도 다시 본 모작들 중에서 <우는 여인>이란 찌푸린 얼굴이 인상적이던 필라의 로댕 미술관.

지옥문에 걸터앉은 <생각하는 사람>은 저 멀리 공원 벤치에서 웅크린채 잠든 부랑아를 굽어보며 무슨 생각할까.

우리는 말을 잃은 채 서둘러 필라델피아를 빠져나왔다.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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