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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Jun 12. 2024

총구 앞에서 혼비백산

살다 살다 정말이지 별일을 다 겪었다. 지난 토요일 오후였다. 다섯 시, 일을 마치기 바쁘게 필라델피아로 향했다. 붐비는 주말 인파에 섞여 일주일치 장을 보고 식당에서 푸짐하게 저녁을 먹은 다음 뻐근한 어깨도 풀 겸 그날의 주목적지인 청담이라는 사우나장으로 갔다.


한국에서야 대중화되다시피 흔하디 흔한 찜질방이나 미 동부엔 뉴욕에 한 곳 그리고 필라에 하나가 있다. 한국에 살 때부터 이용을 거의 하지 않았으니  평소에도 체질상 별로 즐기지 않는 사우나다. 순전히 낙엽 긁느라 마당쇠 노릇하며 갈퀴질 과하게 하느라 탈이 난 팔 때문에 가게 된 사우나였다. 옥돌방 황토방 소금방 골고루 다니며 땀을 냈다.


시원하고 산뜻하게 마무리를 하고 나오니 딱 10시. 들어갈 적에 옆지기 요셉하고 입구에서 만나기로 약속한 시간이다. 대기실에 얼굴이 하얗게 변한 낯익은 남자가 앉아있다. 왜 그래? 완전 얼빠진 채라 대답도 얼른 못한다. 무슨 일이야? 두 번째 다그침에 겨우 낮게 그것도 떨리는 음성으로, 강도를 만났어... 권총을 든... 한다.


뭐라고? 권총강도? 어디서? 대경실색,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잦아든다. 핏기 없는 낯빛으로 맥 놓고 앉아있는 늙수그레한 저 남자. 그러게 왜 혼자 밖엔 나갔어, 고 새를 못 참고. 사시나무 떨듯 벌렁거리는 가슴 진정키 어려웠다. 그래도 놀란 표티 안 내려 짐짓 잘못 저지른 아이 나무라듯 몇 마디 했다. 차도 미리 뎁혀놓고 찬 바람도 쐴 겸... 요셉은 여전히 떠듬거렸다.


사실 한밤의 필라가 험하디 험하니 무섭다는 얘긴 누차 들었다. 그러나 우린 미국에서 한번이라도 실제살황으로 위험한 일과 맞닥뜨려 본 적이 없는 터라 그저 관념상일 뿐. 따라서 큰 코를 다쳐본 적이 전무하므로 전혀 겁이란 게 없었던 것. 필라델피아는 뉴욕이나 워싱턴 디시와 마찬가지로 저소득층 흑인 밀집지역이라 범죄율이 높은 도시다. 거기서 비즈니스 했던 한국인 거개가 총구 앞에 서본 경험이 있을 정도라니까.


카운터 지키던 직원은 CC티브이를 점검하러 전산실로 갔다고 한다. 잠시 후 나온 직원 말이, 후드 티를 입은 뒷모습만 찍혀서 인상착의는 어렵다 했다. 그러면서 경찰에 신고할까요, 의례적인 물음일 뿐임이 뻔한 소리를 한다. 왜냐하면, 전에도 이런 일 있었나요? 묻는 내 말에 즉각 한번도 그런 일이 없었다는 강한 부정이 오히려 발뺌으로 들렸으니까. 사업자 측에선 쉬쉬하고 싶은 사안이 틀림없긴 하리라.


사우나가 들어선 자리는 흑인 거주지와 인접한 우범지역인 데다 후미지게 돌아앉은 건물의 위치 자체에다 구조까지 강도행각에 용이하게 되어있다. 물론 야심한 시간대도 한몫했겠지만 실제 사건 정황이 이를 잘 대변해 준다. 사우나장을 나와서 바로 3미터 전방인 코앞에 주차시킨 차로 다가가 문을 여는 순간 등에다 권총 들이대며 돈을 요구했다니까. 한마디로 속수무책 상황이다.


건물 코너 어둠 속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혼자 나오는 사람을 겨냥, 슬그머니 뒤로 다가온 범인의 총구 앞에 무방비상태로 서게 된 요셉. 방아쇠를 건드리기만 하면 끝장이 아닌가. 이렇게 꼼짝없이 당하는구나, 한순간에 이대로 갈 수도 있겠구나, 싶은 게 혼이 거의 달아나버렸다고. 말 그대로 혼비백산, 눈앞이 하얘지며 소름 돋을 만큼 섬뜩하기 이를 데 없었을 터다.


생사의 갈림길에 선 그 순간은 찰나였지만 바로 그것이 지옥불 앞의 경험이었으리라.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 바짝 차리랬다고 침착하게 대처, 일단 손을 들고 차에 바짝 엎드린 채 가진 돈이 이것뿐이라며 40불을 꺼냈다. 그러자 왼손으로 날렵하게 상하의 호주머니를 전부 다 뒤지더란다. 그때의 섬뜩함은 등에 총부리를 들이밀 적의 촉감과 함께 도저히 잊힐 수가 없겠다고.


다행히 그날따라 카드가 든 지갑은 차 안에 넣어두고 혹시나 하여 두 장의 20불짜리만 주머니에 넣고 왔던 참인데 그 돈이 목숨을 구해준 비상금 역할을 톡톡히 했다. 샅샅이 옷을 뒤져봐도 더 이상 나오는 게 없자 다행히도 차 안까지 훑지는 않더라고. 범법자 처지에서야 범행현장에서 시간을 끌수록 불리할 터. 다른 해코지 없이 서둘러 잽싸게 어둠 속으로 도망쳐버리더라는 강도. 그제서야  살았다 싶으면서 옴짝달싹 할 수 없이 얼어붙었던 다리가 풀리더라고.


급히 안으로 쫓아 들어와 카운터에 사건 전말을 얘기하니 사우나 측에서야 당연한 듯 경찰 운운하며 신고해야겠지요? 묻더란다. 강 건너 불 보듯 말투가 피동적이었다. 하지만 강도사건이 발생했다는 뉴스가 뜨면 타격은 불가피. 이미지 측면에서 업주 입장으론 심히 껄끄러운 사안이다. 가뜩이나 불경기인 판에 남의 사업장에다 재 뿌릴 일도 아닌 데다 안 그래도 크고 작은 사건사고에 치인 필라경찰들이다. 신고해 봤자 결과도 뻔하다.


한인 대부분이 현찰을 많이 소지한다 알려져 강도들의 표적감이 된다는 소문도 들었던 다. 상한 데 없으며 피해액도 적은데 괜히 일을 키울 거 같고 무엇보다 후환이 두려워서도 없던 일로 묻고 그만두자 하였다. 그 와중에 얼핏 봤지만 생생히 인상에 남은 범인 모습은 얼굴에 스타킹을 덮어쓴 검은 사람이었고 젊은이였다며  요셉은 부르르 진저리를 쳤다.


필라델피아는 위싱턴 디시와 엇비슷하게 아프리칸 아메리칸 비율이 70% 수준. 노숙자도 흔하고 살인 및 강도며 절도 등 강력사건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도시다. 졸지에 비명횡사를 당할 뻔한 상황, 생각사록 아찔하고 끔찍스럽기만 했다. 속히 필라를 벗어나고만 싶었다. 운전을 할 만큼 진정이 됐으면 어서 집에 가자고 했다.


갑자기 무서워진 필라, 차 번호판이라도 기억해 뒀을까 두려워 즉각 그 자리를 벗어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죄라도 지은 사람처럼 주변을 휘휘 둘러보고는 얼른 뉴저지로 향했다. 집에 돌아와 청심환을 찾아 건네주었다. 매 순간 사는 일이 정말로 기적의 연속이다. 하느님, 그 순간 무사히 지켜주심에 감사드립니다, 기도가 절로 바쳐졌다. 생과 사가 정면으로 대치한 절체절명의 순간, 하늘의 도우심이 없었다면 그대로 끝이 아닌가.


그 밤, 유난스레 바람이 거칠게 불었다. 창문 덜컹대는 소리에도 쭈뼛 두려움이 일면서 깊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일요일 교우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런 일은 다반사라 했다. LA 흑인폭동을 겪고 동부로 옮겨온 교민도 있었다. 필라에서 가게를 하며 바로 눈앞에 바짝 겨눈 총구를 대했던 경험은 물론이고 흉기를 들이대는 통에 돈을 빼앗긴 사례도 부지기수였다.


가게 보는 일만 위험한 게 아니라 우체국장이었던 한 교우는 칼을 들고 들어온 강도에게 손목 인대가 끊어지는 상해를 입기도 하였다. 결국 죄다 들 힘겨운 이민살이, 생활 최전선에 나서서 생명의 위해조차 무릅쓰고 2세들을 키워내며 오늘의 이민사를 쓴 셈 아닌가. 그래서인지 신경줄 날카로워 성격장애에서 자유롭지 못한 도 더러 만나곤 했다. 다들 나름 트라우마가 깊어서일 터. 그 일 이후, 이민자로 산다는 게 어쩐지 씁쓸하고 처연스럽기만 했다.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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