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량화 Jun 13. 2024

추모방식이 놀랍다

월요일 아침, 시험도 치는 날인데 불가피한 일로 학교를 10분이나 지각했다.

이른 아침부터 바로 머리 위에서 헬리콥터 석대가 낮게 선회하며 동네를 줄창 맴돌았다.

무슨 일일까 의아해하며 평소 시간대로 등굣길에 나섰는데 브러바드에서부터 심상치 않은 기운이 감지됐다.

카메라 기자들이 바쁘게 움직였고 경찰들이 죽 깔려있는 시가지.

브러바드 양 방향 차도는 다 막힌 채였다.

중앙통 끄트머리에 있는 경찰서 앞에는 비상등을 켠 경찰차가 무수히 도열해 있었다.

통상 브러바드 뒷길인 성당 주차장을 통과해 지름길로 학교에 가는데 슬그머니 호기심이 발동했다.

아무런 잘못 없이도 경찰서 문 앞을 지나려면 괜히 쭈뼛거려져 대개 그 앞길로 다니는 것조차 꺼려지곤 했는데.

그날 따라 무리진 정복 경찰들과 번쩍거리는 비상등 불빛까지 가세해 안 그래도 더 주눅 들 지경이었다.  

경찰서 인근에는 어딘지 숙연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정문 앞의 까만 장의용 리무진을 보고서야 지난주 순직한 경찰관의 Funeral service가 있는 날임을 비로소 눈치챘다.

건너다보니 시에라 하이웨이 도로도 완전히 막힌 채 통제됐다.

게다가 하이웨이 통제 구간 6차선 도로에는 수백 대 족히 될, 수많은 경찰차들이 입추의 여지없이 뒤덮여 있었다.

그럴리야 없지만, LAPD 소속 모든 경찰차가 모였나 싶을 정도로 엄청난 숫자의 차량들이 운집해 있어 그만 입이 벌어졌다.

거국적으로 열리는 대통령 장의행렬만큼이나 규모 거창했다.

사진으로 본 고종황제 출상 날, 연도에 서서 나라님을 애도하는 백의의 인파가 인산인해를 이뤘듯 여긴 미국다이 '車山車海'를 이룬 추모 행렬이었다.

강도 신고를 받고 출동했다가 근무 도중 숨진 경찰에 대한 예우가 이럴진대.....

한국에선 야간 비행 임무를 수행하던 헬기가 추락하며 해군 장교 등이 사고로 순직한, 얼마 전 뉴스가 동시에 교차 대비됐다.

은 물론 소방관, 경찰관이 근무 중 사고를 당해 치러지는 장례 의전 예식은 경이로울 정도로 이처럼 장중했다.

이에 반해 주검을 놓고 흥정하는 정치꾼이나 시민단체들이 주도하는 떠들썩 수상쩍은 영결식도 있는 어떤 나라.

군 차원의 단체 조문객을 빼면 한산했던 해군 세 분의 합동 영결식장에 다녀온 어느 제독의 애끓는 탄식도 떠올랐다.

세월호 사건에는 수많은 단체가 찾아가지만 야간 훈련에 나갔다가 순직한 군인들에게는 별 관심이 없다,며 나라 지키려다 목숨 잃은 젊은이들에 대한 사회의 무관심에 섭섭한 마음 드러냈다가 일부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한 그였다.

딴은 사실이 그렇지 않은가, 천안함과 연평도 사태에 대처해 온 그간의 방식만 비교해 봐도 자명한 일.

그뿐 아니다, 경찰이 데모대에 마구 짓밟히며 폭행을 당하고 심지어 전경이 방화 살해당하는 끔찍한 일이 어이없게도 발생했던 대한민국이다.


곳곳에 카메라 기자들과 리포터가 현장 스케치를 하고 있기에 그제서야 용기를 내 엄두도 못 던 사진을 몇 컷 담았다.

내 생전 이렇듯 경찰이 밀림을 이룬 사이를 걸으며 사진 찍을 일이 또 있겠나만은 암튼 그런 담력이 무뜩 생기더라는.

죄짓고는 살 수 없는 세상이다.


우선은 자신의 양심상 괴로워서도 힘들 테고
다음은 사회 질서유지의 임무를 수행하는 경찰들의 몸 사리지 않는 범죄 척결 의지가 있어서이다.

공교롭게도 경찰에 대한 흑인 사회의 공권력 남용 비난 여론이 높아지고 있는 이즈음.  

얼마 전에 흑인 범죄자 과잉제압으로 떠들썩했던 여론의 반전을 이끌어내기 딱인,
흑인 강도 용의자가 쏜 총탄을 맞고 비명에 간 장년의 백인 경찰관.

미국은 특히 군경과 소방대원에 대한 예우가 남다른 나라다.

국가와 사회를 위해 일하다 희생당한 분들을 영웅대접하며 극진한 대우로 기리는 건 당연한 노릇일 게다.

한편 이날의 전체적인 인상은 국면 전환용 혹은 이미지 환기시키려는 의도적인 면도 있지 않을까 싶은 건 한국인인 나만의 생각?

 모든 경찰력이 동원되다시피 하여 막강한 위용을 드러냄으로 예비 범죄자들에게 섣불리 까불지 말라며 보내는 경종이자
일종의 위압적이고도 묵시적인 메시지일 수도 있다.  

정의를 위해 이 수많은 경찰들이 너희를 주시하고 있으며 사회안전을 지키고자 불철주야 뛰고 있음을 명심하라는 듯이.  

범죄와 이웃해 사는 자들에게 사고 치지 마라, 경찰 다치게 하지 마라, 똑바로 살아라, 일깨우는 엄중한 경고와도 같았다.

이처럼 전방위로 압박하며 조여 오는 데야 실제 이 현장을 밤법자가 직접 혹은 뉴스로 보게 된다면?


아무리 태생적으로 악한 철면피에 강심장일지라도 흠칫하지 않을 수 없을 터.  

LAPD 소속 경찰력의 엄청난 파워나 규모 자체로도 압도될 정도라, 보는 것만으로도 공안기능의 막강함에 기가 질릴 법했다.  

또한 업무상 늘 위험에 노출된 경찰관의 위상을 고취시켜 자긍심을 높이고 나아가 내부결속 다지는 효과 역시 있을 듯.



엘에이 카운티 쉐리프국의 스티브 오웬(53) 서전트는 지난 10월 5일 낮 12시 35분, 사건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했다.

대학 캠퍼스 인근의 비교적 안전한 주택가에 침입한 용의자와 경찰의 총격전이 벌어졌으며 베테랑 경관인 그는 범인의 총탄에 맞아 병원으로 실려갔으나 사망했고 쉐리프국의 또 다른 데퓨티 한 명도 부상을 입었다.

용의자는 두 명의 인질을 잡고 한 시간 반 동안이나 대치극을 벌이다 낮 2시경, 집 밖으로 나와 경찰에 투항했다.

그는 전과가 있어 보호 관찰 대상인 젊은 흑인 남성으로 현재 구금되어 있다.

그렇게 한 가정의 아버지이자 사랑하는 남편이고 누군가의 귀한 아들이었던 스티브 오웬 서전트는 범죄 없는 하늘나라로 떠나가 이제는 많은 이의 추모 대상이 되었다.

30년 근속을 한해 앞둔 그, 시리도록 청명하기 그지없는 어느 날의 일이다.

가족들은 물론이고 캘리포니아 주지사를 비롯 검찰총장과 숱한 동료 친지들까지 6천여 명이 마지막 자리를 함께 해 천국으로 향하는 그를 슬픔으로 전송하였다는데.

 다음은 그에 관한 LA Times 기사 일부다.

Law enforcement officers gather at memorial for slain L.A. County sheriff's sergeant 'He was the best of us'.

“He loved his Lord, he loved his family, he loved this community and he will be truly missed.”  2016

작가의 이전글 총구 앞에서 혼비백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