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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Jun 13. 2024

무면허 손님


미국에서 살아가려면 운전은 필수다. 차는 곧 신발이기 때문이다. 대중교통편이 빈번한 대도시는 운전을 못해도 별 문제가 없다 하나 뉴저지 같은 전원지역은 차가 없으면 당장 발이 묶이게 된다.

차라는 발통이 없으면 보통 답답한 게 아니다. 아니 생활이 안된다. 여기 애들은 16세만 되면 차를 몰게 돼있다.(16세까지는 보호자 동승, 정식은 18세부터) 고등학교 정규과정으로 운전시간이 있어 학교에서 운전을 다들 배워 일찌감치 면허를 딴다.

차 없이는 즉 차로 이동하지 않으면 우유 한통, 빵 하나도 살 수가 없으니 말해서 무엇하랴. 버스가 있긴 하나 배차시간이 두 시간이나 된다. 예전 시골버스처럼 버스운행시간표가 있을 정도이므로 버스 편 이용은 아예 생각을 말아야 한다. 언젠가 한번 필라엘 가면서 버스를 탄 적이 있다. 30분 거리가 이 골목 저 동네 돌아서 손님 태워 가느라  두 시간이나 걸렸다. 버스를 타도 손님이라곤 한 이 고작. 그도 흑인이거나 유색인이었다.

그렇다면 택시라도 자주 다니냐 하면 전혀 아니올시다. 고속버스 터미널에 가면 두서너 대 대기하곤 있다 하나 손님 찾아 거리를 돌아다니는 택시는 없고 전부 다 필요시 전화로 불러야 하는 콜택시다. 그만큼 각자가 다 제각금 차를 가지고 다닌다는 얘기다. 남녀노(소만 빼고) 누구나가 운전을 하는 건 당연지사, 장애인은 물론이고 보행 힘겨운 할머니조차 손수운전을 한다.

그런 미국에서 운전을 안 하는 사람이 있다. 손님 중에 인상은 헐크 같고 덩치는 오백 평이 넘는 거구의 남자가 주인공이다. 바로 무면허 깡패(진짜 깡패가 아니라 내 나름 기억하기 좋게 정해둔 별명)로 불리는 그 남자다. 40대의 백인인 그는 외모도 험한 데다 팔이며 어깨 손등에도 문신을 새겨 조폭깡패 같아 보이는 인물이다. 마피아의 행동대원쯤으로 보이는 고약한 인상의 그가 무면허인 이유는 교통단속 중이던 교통순경을 폭행해 운전면허가 영구정지되었다는 소문이다. 대단해 뵈는 성질머리를 경찰한테 못되게 부린 모양이다. 폭력행사가 첫 번째 그다음은 공무집행 방해... 뭐 그런 거겠지.

하여간 그런 연유로 운전면허증이 없다 보니 늘 다른 사람이 는 차를 타고 다닌다.(절대 전용 운전기사가 아닌 친구 도움받는 케이스) 무섭게 생긴 탓에 괜히 겁이 나는 그가 한번은 가게에 와서 자신이 원한대로 물건이 잘 안 나왔다며 다시 해달라는 것. 내가 보기엔 괜찮은 것 같은데 뭔 일로 심사가 꼬였는지 하여튼 생트집이다. 하자 없이 말끔한 새 옷도 아닌 것을 그냥저냥 입으면 되련만. 순간 나도 모르게 C이~하는 불만의 소리가 새어 나왔다.

한국말로야 욕설의 앞문자이지만 그가 무슨 소린지 알 턱 있으랴 싶었는데 얼씨구 담박 안 좋은 대꾸구나, 하는 눈치를 챘나 보다. 그런데 반응이 의외라서 내가 더 놀랬다. 희한하게도 목소리가 졸아들며 아니 됐어.... 하고는 그대로 고 가는  아닌가. 그다음부터는 가게에 오면 내 눈치를 슬슬 살핀다. 또 무슨 욕이나 들어 먹지 않나 하는 듯이.

감히 그 덩치에 그 인상에 그 행색에, 동양의 쪼끄맣고 빼빼하니 한주먹거리도 안 되는 여자가 대들었으니... 이건 보통 적수가 아닌 모양이다,라고 혼자 지레짐작이라도 했을까. 동양무술 유단자 같은 대단한 파워를 숨기고 있지 않고서야 어찌 내게 언감생심 대적하랴, 싶었으리라. 아마도 나를 동양의 쿵후 유단자나 무슨 비술을 쓰는 사람으로 안 건 아닌가도 싶다. 요새도 그가 오면 나는 속으로 후훗 웃는다. 그래, 나는 조폭 대모다.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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