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량화 Jun 13. 2024

나를 속속들이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지하철 타고 부산 누비기

어느 신부님의 강론을 들으며 파안대소한 적이 있다.

지금도 잊히지 않는 그 얘기를 들은 다음부터 냉면 먹을 때마다 빙긋 웃음 감돈다.

박장대소하게 했던 신부님 얘기는 대충 이러했다.

날씨가 더워지자 안노인네가 냉면이 매우 자시고 싶었다.

그렇다고 혼자 가서 사 먹자니 왠지 남세스럽기도 하고 쑥스러웠다.

아들내미가 사주려나? 딸내미가 사주려나?

자식들 기다리다 여름 다 지날 판이었다.

마침 아들이 다니러 왔다.

앞집 할마씨는 아들하고 원산면옥집 다녀왔다데, 은근히 떠본다.

그랬군요, 무심하게 대꾸한다.

며칠 후 딸이 들렀다.

옆집 할마이는 딸내미 하고 평양냉면집 가서 시원하게 냉면 먹었다더라, 슬쩍 간을 본다.

왜 먹고 싶어? 대신 뷔페집 갑시다.

아니 말이 그렇다는 거지.

속보이게 얼른 그러자꾸나! 할 수야 없으니 대답은 마음에 없는 소리를 하고 만다.

 
 
냉면이 먹고 싶은데 뷔페집 모시고 가려는 자식 나무랄 거 없단다.

딸이 휑하니 돌아간 뒤 안노인네는 생각사록 서운하기 짝이 없다.

내가 어떻게 지들을 키웠는데.... 공치사도 푸념도 하지 말랜다.

사실 자녀들은 어릴 적에 온갖 재롱으로 부모  행복하게 만들었으니 효도는 그때 다 했다.

고로, 이날 이때껏 속 썩어가며 고생하고 산 거 알아주는 넘 하나 없다고 탄식하지 말란다.

냉면 한 그릇 알아서 사주는 자식 한 넘 없다고 속상해하지 말란다.

섭섭하다고 원망하지 말고 스스로가 자신에게 대접하면 된단다.

그까짓 냉면 한 그릇에 백만 원을 하나, 십만 원을 하나, 생각나면 즉시 가서 사드시란다.

혹시 혼자 가기 뭣하다면 옆집 친구한테 냉면 쏘겠다 하고 같이 가란다.

내 속내, 내 입맛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정작 자신뿐이다.  

본인 기분에 맞게끔 자기 취향에 딱 맞도록 나에게 가장 잘해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나뿐이다.

나이 들수록 자신한테 포커스를 맞추고 우선권도 주며 뭐든 알아서 재밌게 즐기면서 살아가는 게 최선.  

그래야만 안 그래도 제각금 바쁜 자녀들 구태여 신경 안 쓰고 편케 하는 길이란다.

부산 온천장에서 냉면집에 갔던 얘기.


볼 일이 있어 지하철 동래역에서 하차했다.


보길도 부용동에 꾸민 윤선도의 세연정에서 취한 이름인가.

물에 씻은 듯 정결해서 상쾌한 곳이라기보다 세상 인연이 머무는 뜨락, 세연정이란다.

지금도 운영하는지 모르겠으나 역에서 큰길 건너면 바로,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있는 식당이었다.

친구네 가는 마산행 시외버스정류장을 찾아 나섰다가 아주 우연히 인연 닿은 세연정.

동래의 소문난 집이라는 그 앞에서 문득 냉면 생각이 났다.

점심때도 아니고 시장기가 든 것도 아닌데 갑작스레 냉면이 땡기기에 이른 점심 삼아 냉면을 먹기로 했다.

빌딩가가 늘어선 도심 한가운데 한옥인지 왜식인지 중국풍인지 아무튼 건물 외관 독특한 식당이다.


건물 규모보다 뜨락에 가꾼 오죽에 이끌려 무조건 들어간 집이다.

밖에서 보이던 대로 기차칸처럼 길쭘한 실내 규모도 대단해 농구장을 여럿 이어놓은 운동장 같았다.

내실과 테이블 좌석이 가림막 사이에 두고 칸칸 들어차 한꺼번에 능히 백여 명 입장도 가능할듯했다.

옆 좌석에서 굽는 고기도 맛있겠고 맞은편 식탁 위의 갈비탕도 푸짐해 보이나 혼밥이니 간단한 냉면을 주문했다.  

비빔냉면이 나오기 앞서 샐러드가 올려졌는데 고소한 소스 맛에 접시를 말끔 비우고 나자 그만 배가 부르다.

그래선지 뒤따라 나온 냉면 양이 엄청 많게 느껴졌다.

다른데선 두어 젓가락이면 바닥 보이곤 했는데 양이 너무 많아 결국 맛난 음식을 남길 판.

식사 손님이 하도 숱해서 이리저리 사진 찍어가며 객쩍은 장난을 쳐도 타인 시선 의식할 필요가 없었다.

좀 과하게 먹었다 싶었는데 후식으로 차가운 석류차 뽑아 입가심하자 속 개운하고 편해졌다.

젊은이들 식으로 말하자면 취향 제대로 저격, 가성비 좋고 무엇보다 자재 순환이 잘돼니 모든 재료가 신선해 좋았다.

귀가해 책상 앞에 앉았으나 배부르니 잠이 솔솔~ 평소 낮잠을 모르던 내가 블라인드 내리고 꿀잠까지 쿨쿨.

오늘 하루도 천지 부러울 게 없는 만고강산, 마음만은 태평성세로세. 흠흠!

 
 

 
 

주소: 부산광역시 동래구 온천동 충렬대로 155번길 4

작가의 이전글 무면허 손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