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량화 Jun 13. 2024

고군산군도에 해무 피어오르고

채석강을 떠나며 아들과 통화를 했다. 아들이 이번엔 어디 들리실 건데요, 물었다. 이모랑 배 타고 선유도 갈 거라 하자 거긴 차로 직접 들어가는 데요, 한다. 언니는 말이 섬이지 다리로 다 연결돼 있는데 여태 몰랐니? 그랬다. 당연히 섬은 배를 이용해야 들어갈 수 있는 곳이라 여겼는데 아니었다. 이십 년 세월을 미국 촌사람으로 살다 돌아와 보니 변해도 너무 많이 그리고 여러모로 놀랍게 변해버린 한국. 상전벽해이자 능곡지변이란 사자성어 그대로다.



바다의 만리장성이라고도 한단다. 단군 이래 최대 간척 사업으로 세계 최장 방조제라는 새만금 방조제를 달렸다. 전북 군산과 부안을 잇는 새만금 방조제는 총길이가 34㎞라니 엄청나다. 노태우 정권 당시에 시작해 19년 만에 완공을 본 국책사업이다. 소실점 아스라한 초대형 제방 길을 한참이나 치달려야 했다. 과연 세금 쏟아부은 국책사업의 효능이 제대로 발휘될는지는 글쎄다. 아무튼 왕복 4차선 도로 왼쪽은 시퍼런 바다, 오른쪽은 광활한 호수가 따랐다.


잠깐새에 군산 시역으로 들어왔다. 군산은 전혀 근처에도 와본 적 없을뿐더러 아무런 인연이 없는 지역이라 이번이 초행이다. 이곳 공항에 미 전투비행단이 들어왔다는 뉴스를 들은 적이 있어 미군 기지가 있나 보다 짐작은 됐다. 뭔가 조짐이 수상쩍다. 바깥세상 뒤숭숭하게 돌아가는 판세이나 걱정해 봐야 아무 소용없는 일. 터질 일은 터지게 마련이고 생길 일은 어차피 생긴다. 한치도 개조시킬 수 없고 통제 어려운 능력 밖의 상황일 경우, 차라리 관심 끄고 주어진 현재를 즐기는 게 낫다.


 남해에 한려수도가 있다면 서해안에는 고군산군도가 있단다. 그만큼 절경지로 바다에 뜬 섬이 빚어내는 풍치 수려한 곳이란다. 신선이 노닌다는 선유도를 비롯 군산 앞바다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오십 개도 넘는 섬을 아우르는 고군산군도다. 천혜의 비경을 품은 선유도, 신시도, 무녀도, 장자도 등이 다섯 개의 다리로 뭍과 연결되어 있다고 한다. 일출과 낙조가 장엄하기로 소문나 근동에서 일부러 사진 찍으러 찾아온다는 곳. 지금은 관광벨트화된 고군산군도이나 이 지역은 군사 요충지로 고려 때부터 수군 진영이 자리했으며 대중국 교류의 거점이기도 했다는데.



신선이 노닌다는 선유 8경을 품은 고군산군도(古群山群島)는 전라북도 군산시 옥도면이 품고 있는 섬 들이다. 열여섯 개의 유인도와 마흔일곱 개의 무인도로 이루어진 천혜의 해상관광지인 이곳. 고군산 대교가 완공되며 신시도와 무녀도가 이어졌고 무녀도는 선유도와 선유교로, 장자도와는 장자교로 연결되면서 섬이지만 뭍에 편입되었다. 안팎 실속 여부야 알 길 없지만 겉에 드러난 놀라운 과학기술력, 대한민국 만만세다.

고군산대교 건너 자동차로 갈 수 있는 맨 끝 막내섬 장자도부터 들렀다. 그림처럼 예쁜 자그마한 섬이었다. 풍경만 훌륭한 게 아니라 작지만 고시 합격생이 여러 명 나온 데다 군산시장도 배출한 섬이라 마을 주민들 자부심이 대단하다고. 그 섬엔 포인트 좋은 낚시터가 곳곳인 듯, 강태공들이 갯바위 여기저기에 진을 쳤다. 고동을 한 자루씩 주워오는 외지인들 표정 또한 흔연스럽다. 사진 동호인들도 단체로 출사를 나왔다. 하늘은 한껏 푸르고 유람선은 파도를 가른다.  

되돌아 선유도로 왔다. 선유도라는 이름이 괜히 붙었겠는가. 마침 해무 신비로이 피어오르니 몽환적인 분위기는 가히 천상의 예술작품이었다. 명사십리로 불리는 선유해변 부드러운 모래사장과 해송도 일품이고 우뚝한 바위산 망주봉의 장관도 늠름했다. 이층 버스가 자주 드나드는 동네인데 주차장마다 승용차들 빼곡했다. 칙칙한 코로나 그림자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해무 휘감긴 해안가 식당에서 바다 바라보며 먹은 우럭매운탕 칼큼스런 국물맛은 단연 일품. 별로 해물을 즐기지 않음에도 배고팠던지 맛있다 소리 연발로 터지게 만들었다.



주황색 선유대교를 건너면 바로 닿는 무녀도. 작은 섬이지만 거칠고도 아기자기한 맛이 각별했다. 목이 좋은 낚시터와 오토캠핑장이 있고 갯벌체험장도 갖췄다. 무녀도 앞에 쥐똥처럼 여럿 흩어진 쥐똥섬은 간조시 바닷길이 열리며 모세의 기적처럼 길이 드러난다고. 이때 어부는 통발을 거둬들이고 외지손님들은 갯벌에 엎드려 바지락을 캔다. 바위돌 들춰 더러 소라나 낙지도 잡아 올린다. 횡재를 한 아이들은 환호성을 지른다. 세상사 갑갑했던 흉금이 시원스레 트인다.


무녀도는 선유도와 신시도 사이에 위치한 규모 있는 섬이다. 섬 앞에 장구 모양의 장구섬과 술잔 모양의 섬이 떠 있어 경관도 멋지다. 선유도에서 무녀도를 바라보면 마치 너울너울 춤을 추는 무녀처럼 보인다 하여 무녀도라 부른다고. 이 섬은 경작지가 제법 되고 염전도 너르게 있었다 하나 예전의 염전은 습지로 변해가는 중이었다. 어종 풍부하고 김이 많이 생산되며 바지락 양식이 성하면서부터는 주민 거의가 어업에 종사한다고. 전과 달리 농어민들이 자연에 전적으로 의존하기보다 스스로 자연을 경작하고 경영하므로 소득을 올려 경제적으로 윤택한 살림들이다.   



여러 광고 문구 다 제치고 홍보에도 없어 누구로부터도 주목받지 못하는 풍광이 눈길 사로잡았으니 바로 해안가의 주상절리대(Columnar joint)다. 아득한 중생대 백악기에 분출된 화산의 마그마가 굳어 각진 기둥들. 지표로 분출한 용암이 냉각될 때 수축 작용에 의해 수직의 돌기둥 모양으로 갈라져 4~6 각형 쪼개진 결이다. 제주 중문 해변이나 광주 무등산 입석대 등의 주상절리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지질학적 보물창고다. 그에 비해 무녀도 주상절리는 소규모라 눈에 띄지 않았던가. 그러나 어딘들 제주 대포동 주상절리대의 위풍당당한 웅자에야 비하랴. 쭉쭉 뻗은 현무암 병풍 기둥 장관은 가히 경탄급이니.  


무녀도에서 주상절리를 만난 건 예상치 않은 가외의 수확이었다. 해변 데크를 넘어 기기묘묘하게 펼쳐진 갯바위로 올라간다. 예리하게 각진 암석들, 뾰쭉삐쭉 날카로이 솟은 바위길이라 조심조심 걷는다. 갯바위에 앉은 낚시꾼 외엔 인적 드물어 한갓진 해변. 여유롭게 천천히 연필꽂이에 든 연필같이 촘촘 일어선 바윗 전 정경을 사진에 담는다. 순간 눈살 찌푸려지는 현장이 잡힌다. 취객이 아니라면 맨 정신으로야 설마 청정지대 돌 틈바구니에다 쓰레기를 쑤셔 박아놓을까만.

바로 아래 옥빛 바다는 명경대처럼 맑디 맑건만. 아, 이 못 말리는 과다 염려증이라니.
남도기행 마침표로 찍은 고군산군도 여행. 하늘빛 푸르러 서해 물빛 모처럼 투명한 청옥빛으로 환대해 주었으니 그만으로 충분하다. 더구나 괜찮은 식당을 찾아 우럭 매운탕 포식했으니 이젠 느긋하니 펑퍼짐 퍼지기로 하자. 하얗게 치솟은 고군산 대교를 건너 상행선에 오르자 슬슬 잠이 밀려들었다.

작가의 이전글 나를 속속들이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