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사진은 넛지란 책표지 그림이다. 어미 코끼리가 아기 코끼리를 뒤에서 코로 살살 조종하고 있다.
그처럼 넛지는 타자의 선택을 유도하는 부드러운 개입을 뜻하는 것.
타자의 팔을 잡아끌거나 몸을 밀어서 어떤 행동을 하도록 만드는 게 아니다.
단지 팔꿈치로 슬쩍 건드림으로, 코끼리 같으면 코로 살짝 터치하면서 어떤 행동으로 유도해 나간다는 의미이다.
경제학자와 법학자인 리처드 탈러 / 캐스 선스타인 두 저자는 똑똑한 선택을 유도하는 선택설계의 힘을 '넛지'라 칭했다.
곧, 예상 가능한 방향으로 상대방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것이 넛지의 정의라는 것.
<넛지>는 한참 전에 아들이 보낸 소포꾸러미에 들어있던 책이다.
한국에서 산 책을 저부터 읽고 괜찮은 책들만 모아서 한꺼번에 배편으로 부쳐주고 있다.
유학 보낸 제 아들내미도 꼭 읽었으면 하는 간곡한 심정 차곡차곡 담아서.
2009년도에 한국에서도 출판된 넛지는, 오바마 정부가 정책에 일부 반영하고 있다 해서 유명세를 더한 책이기도 하다.
행동경제학을 경제학계에 알린 리처드 탈러와 법학자 캐스 선스타인이 시카고 대학 경영대학원과 로스쿨의 재정 지원으로
연구를 수행해서 얻은 결과물이 이 책이다.
따라서 전문 경제용어가 여기저기서 나온다.
경제학은커녕 기본 산수에조차 쩔쩔매는 나로선 소화해 내기 쉽잖을 것 같아 자꾸 뒤로 밀렸다가 겨우겨우 읽어낸 책이다.
그러나 이해하기 어려운 논리가 아닌, 실제 생활과 관련된 흥미로운 주제를 예로 들어가며 평이하게 설명해서, 그나마 행동경제학을 약간은 이해할 수 있었다.
이를테면 각종 대출이나 보험상품은 복잡성의 덫을 도처에 깔아놓아 함정에 빠지기가 쉽다 하였다.
실제 최고 수준의 MBA 과정을 밟는 사람도 최선의 설계를 고르는데 어려움을 겪는다고 한다.
시장이 복잡해질수록 교육 수준이 낮은 사람들은 이런 복잡성 때문에 불이익을 당하게 된다.
이들을 좀 더 이롭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어 가는 힘을 넛지가 거들어 도와줄 수 있다고 보았다.
기업가 더그 켐벨이 시도한, 스키폴공항의 남자화장실 변기에 적용시킨 넛지는 이러하다.
변기에 파리(fly) 스티커를 붙임으로써 조준점이 생겨 변기 밖으로 튀는 소변의 양이 자그마치 80%나 감소, 주변이 한결 청결한 공공장소로 바뀌었다고 한다.
이제부터가 본론이다.
넛지의 공동저자인 하버드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 캐스 선스타인(Cass Sunstein)이 쓴 또 한 권의 책이다.
그가 2008년 11월 시카고 대학의 학회에서 발표한 논문을 확충보강해 2009년도에 출간한 <루머>다.
‘인터넷시대에 던지는 新문명비판’이라는 부제를 단 <루머>는 ‘어떻게 거짓이 퍼지고, 왜 사람들이 거짓을 믿게 되며, 어떻게 해야 그걸 극복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에 대한 연구 논문에 속한다.
같은 해 한국에서 번역 간행된 양장본 소책자 <루머>를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탄식이 터져 나오고 소름도 돋았다.
루머는 인류의 역사와 궤를 같이하는데, 남 헐뜯기 좋아하는 인간성의 어두운 심연과 맞닿아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그러면서 루머는 괜찮은 정치인을 낙마시키고 시장질서를 파괴하며 인격 살인에 가깝게 타인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해 자살에 이르게 한다.
나아가 기관이나 심지어 국가 전체의 공신력에 까지 막대한 타격을 주어 민주사회의 기반자체를 위협하기도 한다.
확인되지도 않은 거짓 루머의 위력은 정보화와 대중 민주주의의 결합에 의해, 훨씬 더 가공할 만한 힘을 갖게 되었다.
그렇게 저자가 지적한 대로, 2016년 한국사회는 그 병폐를 고스란히 보여주었다.
지난해뿐만이 아니다.
편도 1차로에서 사고를 당한 미선효순, 천안함 격침설, 광우병소동에서부터 세월호사건에 더해 사드괴담까지 온갖 루머의 확산으로 걸핏하면 한국사회 전체가 벌집 쑤신 듯 온통 뒤숭숭한 소용돌이에 휩싸이곤 했다.
놀라운 건 장갑차에 희생된 두 학생을 북측에서는, 2003년에 평양 모란봉제 1 중학교에 등록시켜 2005년에는 명예졸업장을 수여하였다는 내용을 위키백과에서 읽고는 허걱~
틀림없이 루머의 배후에는 사회혼란을 야기시킴으로 얻게 되는 반대급부의 수혜자도 있다는 게 여실히 증명된 셈.
<루머>의 저자 선스타인 교수는 오바마 행정부에서 규제정보국 책임자를 지낸 법학자로 헌법학과 법철학 분야에서의 독자적인 업적 외에 행동경제학에도 정통하다.
저자는 루머란 개인과 집단이나 어떤 사건, 단체와 관련해 명백한 진실임이 입증되지 않은 사실을 주장하는 것으로 규정했다.
책에서 그는 첫째, 왜 사람들이 거짓되거나 파괴적인 루머와 황당하기 짝이 없는 유언비어를 받아들이는 것인가?를 다뤘다.
둘째, 거짓 루머의 악영향에 맞서 자신과 사회를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이어서 다뤘는데 이 부분은 좀 막연했다.
저자의 첫 답변은‘사회적 폭포효과(social cascades)’와‘집단 극단화(group polarization)’라는 개념으로 이를 설명하였다.
폭포효과는 자신이 실제로 아는 정보를 근거로 판단 내리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관점과 생각에 동조해 그냥 휩쓸리는 것.
무리에 앞장서서 조직을 움직이는 사람이 하는 말이나 행동을 다른 사람들이 따라서할 때, 유통되는 정보는 거대 폭포가 된다.
폭포현상이 만연해지면 사람들은‘집단 극단화'의 블랙홀에 빠져들고 만다.
실제로 진보 성향을 지닌 주민들과 보수 성향을 지닌 주민들끼리 소그룹을 구성해 몇 가지 사회문제에 대해 토론하게 했다.
그랬더니, 각 그룹 구성원들은 토론 전보다 더 극단의 단호한 입장을 보였다 한다.
사람들은 자신과 의견이 같은 사람들과 대화할 때 자기 생각에 더 확신을 갖게 된다고.
그처럼 보다 극단적 방향으로 견해를 확장시키는 상승효과를 나타내고 있음을 실험결과 확인하였다.
한편 누구나 자신이 이미 갖고 있는 편향(확증편향)된 입장에 맞게 정보를 처리하는 경향이 있어서, 루머를 믿는 사람들은 무슨 수를 써 봐도 루머에 대한 믿음이 더 공고해질 뿐이라고 하였다.
거짓 루머들의 사실성과 합리성 여부에 대해 아무리 균형 잡힌 토론이 진행되더라도 사정은 크게 변하지 않는다고 한다.
루머를 바로잡는 내용이나 이성에 따른 요구는, 루머를 믿는 사람들을 오히려 열나게 만들어 방어 입장을 취하게 만든다.
심지어 그 속에는 분명 중대한 흑막이 있을 거라고 까지 믿게 된다 하였다.
어째서 사람들은 비판적 사회의식을 지닌 깨어 있는 주체임을 자처하면서도, 무방비상태로 허위 정보에 휘둘릴까.
나아가 무차별로 유포된 거짓 루머에 매몰돼 때로는 폭력 사태로까지 거침없이 나아갈까.
왜 똑똑한 사람들이 전혀 근거도 없는 음모론에 현혹되어 올바른 뉴스와 거짓된 루머를 구분하지 못하고, 대중들은 무분별하게 헛소문에 빠져드는 것일까.
루머가 거짓임이 밝혀진 뒤에도 대다수 사람들이 그 루머가 가짜라는 사실 자체를 완강히 부인하는 사회심리학적 이유는 무엇인가.
본문에 따르면, 2008년 미국 대통령 선거 때 많은 유권자들이 오바마후보가 정말 무슬림인 줄 알았다고.
케네디 대통령 암살에는 CIA가 관여했으며 인간의 달 착륙 사진은 연출된 것이고. 에이즈 바이러스는 의사들이 고의로 유포했으며 대공황은 부자들이 노동자 임금 삭감을 위해 일으킨 음모이며. 지구온난화는 의도적으로 조작된 사기극이다 등등 음모론에 다름 아닌 악성 루머를 믿는 이들.
이처럼 삐딱한 '진보수'들이 미국에도 양 진영 두루 진을 치고 있는 현실이다.
정보의 바다인 인터넷과 첨단 정보기기의 유통이 현대인을 개안시킨 반면, 동시에 병폐도 심하게 표출됐다.
한 사회 전체를 익사 직전의 혼몽상태로 몰고 갈 수도 있다는데 그는 주목하면서,그러나 거짓루머가 유포될 때 이를 바로잡기
위한 노력이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점을 기억하라고 하였다.
한국은 작년에 겪은 바대로 주도면밀한 사전준비에 따라 조직적으로 확산시킨 루머가 판치는 사회였다.
검증되지 않은 정보, 의도된 가짜정보, 악의로 조작된 정보를 무작위로
퍼뜨려 헌정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사태를 몰고 왔던 광란의 현장이었다.
루머란 진실성의 여부에 관계없이 사람들 사이에 널리 퍼져 돌아다니는 거짓정보를 의미한다.
미확인된 '썰'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살이 붙어 계속 확대 재생산되며 유언비어가 마치 사실인양 둔갑, 그럴싸하게 포장되어 갔다.
그로부터 촉발된 촛불집회는 근원부터가 사실과 합리성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결정적 문제점을 안고 있는 게 사실이다.
즉 진실과 거리가 먼 오도된 정보, 조작된 거짓 루머로 선동된 광기의 분노에 따른 궐기가 과연 도덕적으로 정당한가?이다.
루머는 일종의 사회적 타살이고 넛지는 눈치 못 채게 보내주는 긍정적 도움.
부디 넛지로 서로 격려하며 살아가야 하련만.
가뜩이나 살기 팍팍한 세상이다.
넛지는 고사하고 조작된 루머로 온 나라의 진을 다 빼놓고 만 오늘의 한국 현실이 심히 안타깝다.
서로 격려하고 성원 보내주는 상호긍정의 넛지로 힘을 보태주진 못할 망정 사회적 타살행위인 루머로 생사람 잡는 세상임이
참으로 우려스럽고 서글프다.
극소수가 SNS 등을 통해 퍼뜨린 루머와 음모론이 전 국민의 여론인 것처럼 왜곡 유포될 경우.
급기야는 정치 경제 등 모든
분야를 흔들어 사회혼란을 불러올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다.
이처럼 '카더라'식의 루머와 음모론의 폐해는 마침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엄청난 결과를 가져오고야 말았다.
정변에 준하는 정치격변사태에 대해 현재로선 잘잘못을 거론하거나 섣불리 판결 내리는 대신 역사의 심판에 맡기는 편이 낫겠지만.
그러나 국정농단이니 청탁이니 뇌물죄 따위는 접어두고, 아주 작은 한가지 만은 계제김에 짚고 넘어가려 한다.
온갖 막말과 입에 담지 못할 험한 표현들이 난무하는 그 아수라판에 끼어서 누굴 두둔할 의사는 추호도 없다.
다만 정유라를 박근혜 딸이라며 게거품을 물고 증거를 찾아 독일까지 갔던 몇몇 잡넘들은 정말이지 짜증스럽고 화가 치민다.
DNA 검사가 필요 없을 정도로 어미 순실씨를 빼닮은 그 얼굴을 보면서도 생억지를 쓰는 저의가 빤히 들여다 보여 숫제 불쌍지경이다.
인과응보라 하였듯 언젠가 그들도 루머가 아닌 진실의 제물이 될 날 반드시 오리라 확신한다.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