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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Jun 15. 2024

자업자득인가

해마다 이맘때면 동아시아권은 지역적으로 장마권에 들게 된다.


부산 역시 열흘 넘게 계속 비가 오락가락하면서 때때로 집중호우현상을 보이기도 한다.


장마전선이 강타한 일본열도의 홍수 후유증이 매우 심각하다는 소식이다.


하루 최대 오백 밀리를 쏟아붓는 집중적인 물폭탄으로 인명피해와 재산피해가 거의 재난 수준을 넘어 아예 집계조차 어려운 상황이라고 뉴스는 전한다.


중국은 한 달째 폭우가 내려 홍수로 댐이 붕괴되고 산사태가 이어지며 다수의 이재민도 발생했다고.


양쯔강 범람에 대비, 인근 성들은 경계태세를 넘어 전시상태를 선포할 지경에 이르렀다니 예삿 난리가 아닌 듯하다.



세상이 다 비정상으로 미쳐 돌아가는 모양새다.


쓰잘데기 없는 잡생각이나 골똘히 하며 사는 나만 그런 걸까?


희망을 걸만하거나 낙관할 만한 구석보다 지구 종말론에 가까운 암울함만이 지배적으로 온데 무겁게 드리워진 듯 한 요즘.


잠깐 건강문제로 입원을 해 심지가 약해진 때문이거나 날씨 탓이라면 그나마 천만다행이겠다.


오후 다섯 시 반을 지나가는 지금도 창밖은 회색빛인 채 울한 하늘에선 하염없이 빗줄기가 아진다.


외출은커녕 자연 속으로 걸어 나가 본 지도 그럭저럭 여러 날 됐다,


다행히 회복기라 몸조리하면서 입원해 있다 보니 생기게 되는 무기력증 떨쳐내려 책 이야길 하려고 한다.



며칠간 병원에 머무는 동안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를 읽었다.


진작부터 빌려보려던 책이었다.


감사하게도 입원기간이라는 무료한 틈에 진료실 서가에서  책을 우연찮게 만났던 것.


의사 앞에 앉기만 하면 눈부터 꾹 감고 처분만 바라며 질문에 답변이나 하는 게 고작이었던 위인이다.


전에 썼던 '화잇가운 신드롬' 글에서 처럼 의사만 봐도 혈압이 급상승하는 특이체질인 별종이라서다.


아들 후배라서 인지 인상이 좋아서인지 이비인후과 진료 시에는 눈을 뜨고 사방을 둘러보기까지 했다.


그때 서가에 꽂혀있는 이 책을 발견하곤 옳다구나, 쾌재를 불렀다,


며칠 심심치는 않겠군, 내심 무릎을 치면서.


검사를 마치고 나오며 정하게 볼 테니 저 책 좀 빌려가겠다고 했다.



저자 재레드 다이아몬드(Jared Diamond)는 하버드를 나와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생리학 박사 학위를 받은 문화인류학자이자 문명연구가이며 저술가이다.


현재 UCLA 지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그는 생리학자로 출발하여 진화생물학과 생물지리학으로 영역을 확장해 나간 과학자로 1997년 이 책을 냈다.


 베개 삼아도 충분할 정도의 부피 두꺼운 묵직한 책으로 750여 페이지가 훌쩍 넘는 <총, 균, 쇠>다.


편안히 누운 자세로 설렁설렁 책장 넘기며 읽을 수가 없어 앉아서 읽어야 했는데 중증환자는 아니므로 그도 괜찮았다.


다만 부분 부분 사진으로 캡처 또는 메모할 거리가 많아 읽는 속도는 붙지 않았다.


표제 자체가 딱딱할 것 같은 책인데 그래도 초반부부터 몰입도 높았던 것은, 역사에 관
심이 많은 내 코드와 맞아떨어져 여간 흥미진진한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세계의 역사를 구분할 때 기원전이니 기원후, 즉 B.C 와 A.D부터 나오게 되는데 여기선 기원전 B.C에 아라비아 숫자가 길게 따라붙기 예사다.


가령 문명이 싹트기 이전인 B.C.11000년 경이라는 식으로.


고고학에서 빈번히 사용되는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법'이며 신기술인 '가속 질량 분광법'이 불쑥 튀어나오기도 하고,


진화단계를 설명하며 170만 년 전의 호모 에렉투스가 등장할 즈음에는 가벼운 흥분마저 느껴졌다.


인류사를 역사가 아닌 과학으로 접근, 정립해 나가면서 인류 문명을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본 그.


3부 들어 전개되기 시작하는 유럽인들의 신세계 식민지화에 이르면 환자 본연의 아픈 통각도 잊은 채 정신없이 책 속으로 빠져들어가게 됐다.


그러면서 페루 잉카유적지에서 느꼈던 허탈감과 먹먹함, 스페인의 거창하고 화려한 성전 건물에서 받은 씁쓸한 충격이 거푸 되살아나곤 했다.



생태학자인 저자는 1972년 연구를 위해 찾은 뉴기니 섬에서 만난 얄리라는 사람에게 이런 질문을 받는다.


"당신네 백인들은 그렇게 많은 화물

(물질문명의 산물)들을 발전시켜 뉴기니까지 가져왔는데 어째서 우리 흑인들은 그런 화물들을 만들지 못한 겁니까?" 18쪽.


그로부터 25년이 지나 그는 이 책을 통해 대답을 내놓는다.


책의 중심 화두인 '인류역사가 차별적으로 진화하게 된 수단으로써의 무기, 병균, 금속'의 역할은 물책 전반에 걸쳐 비중 있게 다루었다.


허나 그보다 더 핵심적으로 본, 불평등한 문명과 인류역사의 차별적 발전은 다만 환경이 이끌어낸 결과라는 관점을 명료하게 피력해 나간다.


그 긴 여정에 건조한 전문용어가 별로 동원되지 않는 데다 독자의 호기심을 재치 있게 자극시킨다.


따라서 읽어내기 팍팍하지가 않았다.



스페인 병사들이 총을 앞세워 아스텍이나 잉카제국을 정복하려 들었지만 정작 그들을 무릎 꿇린 것은 유럽에서 온 전염병이었다.


고작 몇 백 남짓한 소수의 병사로 제국이 무너진 데는, 병원균에 노출된 적이 전혀 없던 원주민들이라 자체 면역력이 전무했던 게 주원인이었다.

천연두 홍역 인푸루엔저 같은 질병이 결과적으로 남미 토착민 거의를 스러지게 했던 것.


북미 인디언들이 역사의 무대 뒤로 사라진 배경 역시, 기병대들의 무자비한 총칼로 보다 담요에 묻어 들어온 낯선 균 때문이었다.


 그렇게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콜럼버스 이전 인구의 95%가 유럽에서 옮겨온 균, 바이러스로 인해 떼죽음을 당했다.


전쟁사를 훑어봐도 훌륭한 군대가 전쟁의 승기를 잡았던 경우 못지않게 지독한 병원균을 적에게 퍼뜨리는 군대가 승리한 예도 적잖다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된다.


세균전 방식은 물론 21세기에도 유효하다.



숱한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전염병은 역사를 변화시키는 결정적 요인이 되곤 했다.


중세 페스트나 스페인 독감 때처럼 역병으로 희생된 사람이 그만큼 많았다는 소리다.


헌데 인류 근대사에서 주요 사망원인이었던 결핵 말라리아 페스트 천연두 홍역 콜레라 같은 질병들은 동물의 질병에서 진화한 전염병들이라는 공통점을 지녔다.


거의 모든 전염병은 원래 동물들에게 퍼져 있던 병원균들이었다.


사람들이 점점 동물을 가축화하면서부터 새롭게 진화된 균이 더 강한 병원체로 인간을 반격하기 시작했던 셈.


코로나를 비롯, 가축 등 동물이 건네준 치명적 댓가가 세균 선물이라고 보는 타당한 이유가 여기서 증명된다.


가축에서 그치지 않고 이번엔 색다른 야생동물을 찾는 미식가들로 인해 해괴한 신종 바이러스가 창궐하기도 한다.


더구나 오늘날처럼 제트기가 대륙간을 잇는 세상에서는 전염병 확산속도도 그만큼 빠르다.


번 코로나 사태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나다
시피. 이 모두가 자연계의 질서를 허물어버린 오만하고 탐욕스러운 인간의 자업자득이 아닌가 싶다.  



저자에게 두꺼운 한 권의 책을 단 한 문장으로 요약해 달라고 요청하자 그는 이렇게 기술했다.


"민족마다 역사가 다르게 진행된 것은 각 민족의 생물학적 차이 때문이 아니라 환경적 차이 때문" 이라고.


" 곧 어떤 민족 이를테면 아프리카나 폴리네시아 부족이 유럽인보다 생물학적으로 미개해서가 아니라 단지 지리적 환경이 그들의 사회발달에 영향을 미쳤다"는 얘기다.


역사 진행의 차이는 본질적으로 타고난 유전자가 월등해서 또는 열등해서가 아니라는 뜻이다.


뉴기니인들도 경험과 직관에 의해 공동작업의 이점을 십분 활용할 줄 알고 지렛대를 이용해 힘든 작업을 수월히 해내는 생활의 지혜를 발휘하듯이.


마무리하며 "미국의 도시와 뉴기니의 촌락에서 각각 살아본 나(저자)의 느낌은, 이른바 문명의 축복이라는 것에는 장단점이 뒤섞여 있더라." 23쪽 그 문장에 아주 격하게 공감했다.  2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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