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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Jun 22. 2024

자구리해안에서 정방폭포 즐기기

이중섭 가족이 게를 잡으며 놀았던 자구리 해안.

동란 와중의 혼란기라 일본으로 처자를 떠나보내고 섶섬 물끄러미 바라보며 그리움 삭이던 중섭.

미칠 듯 보고 싶은 마사코와 두 아들은 바다 건너에 있고 홀로 해안가에 남아 우울한 블루를 곱씹었으리.

칠십 년 지나 그들 가족의 일원처럼 게잡이에 나서보기로 했다

수업을 마친 뒤 하늘이 푸르게 개였기에 곧장 해변으로 내려갔다.

물살 들락날락하며 바윗돌들이 물에 잠겼다가 드러나곤 했다.

걸음 옮기는 대로 갯강구와 게가 잽싸게 바위 그늘로 숨어들었다.

그만큼 갯강구 못지않게 많은 게가 버글거렸다.

바닷가에서 만만한 바위 들춰 게를 찾아보았다.

거무튀튀한 바위 아래에서 새끼손톱만 한 게가 뽀르르 도망쳤다.

어찌나 빠른지 보였다 싶으면 어느새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곤 했다.

어중된 내 실력으론 못 잡겠다, 꾀꼬리!

목장갑도 없이 맨손으론 사실 자신도 서질 않았다.

고 쪼그마한 집게발에 물린 들 얼마나 아프랴마는.

햇살이 하도 따가워 아무튼 겨우 잡은 게 한 마리는 도로 놔주고 자구리를 떠났다.

후덥지근한 날씨라 등이 후끈거려 시원스레 쏟아지는 정방폭포 쪽으로 걸어갔다.


서복전시관은 지나쳐 왈종미술관 정원으로 들어갔다.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위치에 키 늘씬한 야자수와 종려수뿐인가.


늙은 올리브 나무와 연보라 꽃이 핀 로즈메리 같은 허브 때문일까.


프랑스 풍 혹은 스페인 풍의 먼 나라 내음이 물씬 풍기는 정원에서는

알록달록한 원색의 목조각 새가 노닐고 있다.


티베트가 아닌 서귀포에 있어 언제든 찾을 수 있는 나만의 샹그릴라인 이곳.


하얀 흔들의자에 앉아 망중한을 즐기고 있는데 보이스전화벨이 울렸다.


풍광 끝내주는 미술관 뜰에서 지금 선탠 중이야 ~


퇴근길에 전화를 한 딸내미 왈, 신이 났네! 신났어! 살 판이 났어요!

오전부터 들뜬 음성 눈치챈 딸내미는 그래도 컴다운하라는 말 대신

"건강할 때 엄마 충분히 맘껏 누려" 성원 보낸다.

내 뜨락으로 삼은 서귀포 정원 느릿느릿 거닐며

지상낙원이 예로구나~ 때마침 한껏 기분 고조돼 있던 찰나였다.

맞다, 날이면 날마다 신명 펄펄 오르고 살판 살맛 다 최고치다.

이러다 복에 겨워 까무러치지 않겠나 수위 조절은 하며 지내노라, 답했다.

딸내미는 Good~하면서 운전 중이라 그쯤에서 전화를 마무리했다.




안빈낙도의 경지까지 갈 필요도 없다.

통장 잔고에 동그라미가 몇 개 붙어있는 게 뭔 대수랴.

내 명의로 된 땅 한 뙈기 없은들 어떠랴.

주식 문서 한쪽 지니지 못했어도 나는 부자 나아가 재벌이다.

섶섬 문섬 바로 내려다보이고 복도에 나가면 한라산 마주 보이는 '정와'일지라도

나에겐 별장이요 낙원인 것을.

안분지족 하면 내 지금 현재에 감사할 수 있는 나날이며 축제의 나날 되는 것을.

평소의 버릇대로 호흡 긴 글조차 쓸 짬도 없이 여기저기 손짓해 대는 대로 쫓아다니느라 바쁜 나날.


미술관 아래가 바로 정방푹포, 눈 감고도 찾을 수 있는 곳이다.

계단 몇 개만 내려오면 굵은 줄기 휘늘어진 노송 옆으로 폭포가 보인다.


수량의 차이는 있으나 사시장철 변함없이 꼿꼿이 내리 꽂히는 물줄기 장관인 정방폭포다.

전신을 내던지며 주저치 않고 낙하하는 그 정결한 지조라니.

남성적이기보다 섬세한 모시천처럼 선 고운, 그러나 품섶에 은장도를 숨긴 서늘한 나신!

가뭄으로 풍부한 수량은 기대치 않았으나 조신한 자태로 내리는 폭포라 오히려 더 다감스럽다.

우레 같은 굉음 발하는 웅장한 폭포수도 멋지지만 이만큼만으로도 여전 열광하는 팬덤층 두터운 정방폭포.

주변에 모여드는 사람들 계절 없이 끊이질 않는다.

오늘은 서구인들이 제법 많았다.

타인의 시선 개의치 않는 자유분방한 그들은 훌훌 옷을 벗어던지고 물놀이를 즐겼다.

폭포 아래 연못 물이 다른 때와 달리 깊지 않아서이리라.

수영 정도가 아니라 숫제 폭포수 바로 밑에까지 헤엄쳐 가서 물맞이하며 신바람 났다.

내국인들도 덩달아서 물에 들어가기는 해도 바지만 걷어붙일 뿐 수영 엄두는 누구도 내지 않았다.

물가에서 발만 담그고 더위를 식히며 다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신선놀음에 빠져들었다.

슬그머니 운동화를 벗고 그 대열에 끼어보니 세상에나~ 발가락에 쥐가 날 정도로 물이 찼다.

따끈히 달궈진 바위로 자리를 옮겨 발을 말린 뒤 신을 신는데 호루라기 소리가 들렸다.

안전요원이 물에서 들 빨랑 나오라 다급히 손짓하며 삑삑 호루라기를 불어댔다.

한 시간 여 동안 자리 비우고 어디 갔다가 뒤늦게 나타나 호떡집에 불난 듯 호들갑이다.

나오면서 보니 폭포 입구 안내판에 한글 영어 중국어 일어로 '주의사항'이 명시돼 있었다.

만약 통제구역에 들어가 사고가 생겨도 책임지지 않겠다는 노란 경고문이었다.

군중심리에 이끌려 통제구역 출입을 한 셈으로, 얼떨결에 정방폭포 못에도 들어가 봤다는. ㅎ

무식하거나 뭘 모르면 용감한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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