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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Jun 23. 2024

삼성혈, 신령스런 노거수 숲 이룬 곳

제주시에 가면 볼일 마친 다음 발길 절로 가닿는 곳이 있다.

자력에 이끌리듯 향하는 이도 일동.

칼호텔이 솟아있어 멀리서도 금방 방향이 잡힌다.

대학 때 친구 숙이네 집이 있던 이 동네.


오십여 년이 지나 다시 가보니,  귤나무가 있고 돌 우물물 차디차던 제주시 이도 일동 친구집 터 짬에는 칼호텔이 떡하니 서있다.

예전엔 친구네서 언덕 하나 오르면 삼성혈이 기다렸는데.

바닷가 따라 한참 가면 용두암에 이르렀고 관덕정도 걸어서 갔다.

69년 당시 볼거리는 그뿐이라 멀리 있는 일출봉, 정방폭포 등으로 구경을 다녔다.

격세지감, 지금이야 여기도 도처에 복원된 유적지나 새로이 개발된 핫한 관광상품 널려있지만.

제주시에 넘어오면 박물관 투어에 시장 투어, 해안 도로와 해수욕장, 오름과 연대 등 볼거리 천지라 구역별로 짬짬이 훑곤 한다.

이번 역시 온 하루를, 해가 질 무렵까지 제주에서 지냈다.




모든 세기의 문화권마다 세대에서 세대로 전해 내려 오는 고유의 신화가 있다.

이 같은 신화는 민족의 신념이며 그들의 역사를 말해 주는 것이라 풀이된다.

신화를 종교처럼 진지하게 경배하는 사람도 있긴 하나 건국신화는 자기 뿌리에 대한 예우상 신뢰하는 정도이지 싶다.

다 알다시피 과학이나 세상의 이치에 대입해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이 아니라 구전돼 내려오는 동안 민족의 서사시로 자리매김된 신화.

신화에 나오는 인물은 거개가 신적인 존재다.

나라마다 건국신화가 있고 신화에 가까운 영웅담도 있으며 이에는 신성성과 위엄성이 부여돼 있는 데다 저마다 초자연적 능력을 갖췄다.

환웅과 웅녀에서 비롯된 단군 신화에서부터 그리스 로마의 신화까지 우리는 많은 신화를 들어 알고 있다.

제주에도 역시 외딴섬이라는 특수성에 따른 나름의 신화가 있다.

탐라라는 이름을 가진 옛 제주에는 태초에 사람이 없었다.

구름과 바다만이 아득하게 펼쳐진 섬의 중심에 선 한라산이 신령한 화기를 내리어 북쪽 기슭에 있는 모흥에 三神人을 동시에 탄강시켰다.

지금으로부터 물경 사천삼백여 년 전에 일어난 일이다.

제주도의 시조 격인 고을나, 양을나, 부을나 세 신인의 탄생신화가 서린 곳이 삼성혈이다.

탐라개벽신화의 발상지로 한반도에서 가장 오래된 유적지인 이곳은 사적 제134호다.

세 신선이 태어난 모흥혈(毛興穴)을 삼성혈이라 부르는데 지금도 땅에 나있는 세 개의 혈(穴)은 그대로이다.

이 신비한 성혈에는 눈이 많이 와도 쌓이지 않고 비가 억수같이 내려도 빗물이 고이지 않는다고 한다(팩트 여부는 차치하고).

그뿐 아니라 인근에 숲을 이룬 수백 년생 고목들도 모두 한결같이 혈을 향하여 감싸 안듯 가지를 벌렸으며 공손히 고개 숙였다고.



며칠 전 성산포 다녀오다 혼인지를 들른 터라 이번엔 제주시 나간 김에 볼일을 마치고 나서 삼성혈을 찾았다.

마당에서 투호놀이를 할 수 있는 전사청 방 안에서 학생 셋이 둘러앉아 탁, 탁 소리도 선명하게 장기를 두고 있었다.

스무 살 무렵 여름방학에 클래스 메이트가 사는 제주도에 갔을 때 친구 집 바로 이웃이었던 삼성혈이다.

당시는 지금처럼 담장은커녕 울타리도 없는 민둥한 언덕배기로 저녁 먹고 슬슬 걸어 다니곤 했다.

삼성혈로 들어오는 건시문도, 그 앞의 홍살문이나 삼성전도 숭모당도 전혀 없는 아주 밋밋한 언덕이었는데.

그때 친구가 사적으로 지정된 중요한 장소라던 곳, 허나 삼성혈이라 쓰인 작은 팻말 외엔 단청 바랜 채 쓰러질 듯 낡은 집 한 채뿐이었다.

작은 굴 비슷한 흔적을 가리키며 친구는 저기서 제주도 고씨, 양씨, 부씨의 시조가 태어났노라 했다.

가락국 시조처럼 알에서도 아니고 왜 하필 요상하게 땅굴 속에서 태어났담, 하면서 농을 했던 기억도 났다.


오십 년도 훨씬 넘어 다시 찾은 이곳.


도심 안의 녹지공간을 공원처럼 아름차게 조성해 놓아 보기도 좋은 데다 신화를 토대 삼아 역사기록대로 잘 복원된 건물도 볼만했다.

돌담장 높직이 둘러싼 삼성혈은 담벼락에 바짝 관람대를 만들어 놓아 거길 올라가면 분화구 닮은 곳에 삼각 꼭짓점에 하나씩 난 구멍이 보였다.

아직도 매년 12월 10일에는 삼을나의 탐라개벽을 기리는 대제가 제주도민제로 열린다는데 오늘도 삼성문 앞에선 향불 사루고 있었다.


삼성혈은 한반도에서 가장 오래된 유적이라고 한다.

단군신화처럼 신화적 역사와 역사적 신화의 차이를 서술할 계제나 수준도 아니다.

언제라는 시점이 애매하지만 삼성혈 전시관 영상처럼 아득한 옛적 어느 날 삼신인이 태어났다는 혈이다.

신격화된 이가 셋이라 삼성혈이다.

성산 온평리에 있는 혼인지에서 벽랑국 삼공주와 맺어져 탐라왕국이 비롯됐다는 설화대로.

조선조 중종 때부터 이곳에 표단과 홍살문을 세우고 춘추로 제사를 올리며 삼성혈 성역화 사업이 비롯됐다.

이후 삼성혈은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제134호로 지정됐다.


1526년 제주목사 이수동이 고·양·부 씨의 후손들에게 제를 지내게 하였으며 1827년 전사청을, 1849년 숭보당을 세웠다는 기록

도 남아있다.


현재는 고·양·부 삼성사 재단이 관리하며 춘추 및 건시대제를 지낸다고.


삼성문 삼성전 전사청 숭보당 건물 외에 전시관에는 고문서와 제기, 홍화각이라는 현판이 전시돼 있다.


환기시설이 시원찮아 골방 냄새 풍기는 그런 시설물보다는 눈맛 서늘한 숲의 거목들이야말로 실로 장관이다.


제주 지역 고유의 상록수림과 울울하게 숲 이룬 활엽수 침엽수의 헌칠하고도 미끈한 자태.


땅바닥엔 가을도 아닌데 낙엽이 푹신하게 쌓여있었다.


특이하게도 안정감 있게 두 줄기로 벋은 나무들이 많았고 연리지 연리목도 흔했다.


삼성혈의 파수꾼인 두 그루 정정한 녹나무는 신목 반열에 들 만큼 걸출한 노거수였다.


그러나 숲이 깊다 보니 그늘진 데가 많아 어둑신한 숲은 모기떼 서식처, 걸어 다니는 도중 네댓 번이나 나도 모르게 헌혈을 당했다.


어찌나 독한 모기인지 금세 벌겋게 부풀어 오르며 가렵기는 또 얼마나 가렵던지.


삼성혈 관리는 숲 돌보고 잔디 깎는 데만 치중할 게 아니라 해충방제부터 해야 할 듯.


그게 방문객들에 대한 기본적 예의이자 도리일 거 같다.


오나가나 벌써부터 물것들이 극성이라 그쯤에서 삼성혈 숲그늘로부터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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