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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Jun 23. 2024

사계절 언제라도 좋은  사계해안

와서 보니 만조 때다.

사계해안 왔던 중에 가장 물이 많이 밀고 올라왔다.

산방산과 형제섬 배경으로 한 풍경도 좋지만 간조 때만 전모 드러나는 또 다른 명물 마린 포트홀(Marin Pothole)을 볼 수 있는 이곳.

간조 때 같으면 바다 저만치까지 바닥이 드러나 기묘한 하모리층이 품은 마린 포트홀을 다 보여주는데 오늘은 거의가 물에 잠겼다.



누룩 빌레라고 불리는 하모리층은 제주에서 가장 젊은 지층으로 알려져 있으며 약한 암석층이라 마모가 빠른 편.

하모리층이 분포돼 있는 일대 해변에서 동물 및 사람 발자국이 발견되며 천연기념물 464호로 지정됐다.

육안으로는 암석이라기보다는 금세 부스스 허물어지는 모래탑 같으나 손으로 만져보면 단단한 암반이긴 하다.

그러나 눈에 띄게 날로 마모가 심한 것만은 사실이라 그 때문에 사계 해변을 더 자주 찾게 되는지도.

하모리층이란 대체 뭐지?

3만 년 전후로 분출된 용암이 만든 '광해악 현무암'이 먼저 흐른 뒤에 그 위로 하모리층이 생겼다고 한다.

첨 들어보는 광해악 현무암이란 또 뭣이라?

용머리와 방산화산재가 퇴적한 데다 송악산에서 분출한 용암이 흘러들어 주변을 에워싸며 만들어졌다는 설명인데 무슨 소린지 좀 모호하다.  

암튼 처음 화산 폭발 시기와 다른 폭발이 수천 년 전 일어나, 그 위로 다시 하모리층이 덮여서 서로 차이 나는 지층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살아있는 지질박물관이란다.

이 바닷가에서 살았던 선사시대 사람들이 해안길 따라 걸었기에 남아있는 자취들 선연한 해안가.

선사인 발자국과 동물 발자국이 하모리층에 고스란히 남아 고고학적으로 높은 가치가 있다고.

하여지간, 앞에 형제섬 거느린 이 하모리 해안은 기묘한 지층이 신기해 많은 사람들이 찾는 관광명소다.



누룩 빌레라는 제주 방언대로다.

전통주 빚을 때 사용하는 누룩 색깔처럼 누르스름한 데다 모양새 둥글넓적한 바윗장들이 널려있다.

헨리 무어 조각 작품같이 부드러이 다듬어진 바위들이 널펀펀하게 누워있는 해변.

누룩바위에 무수히 뚫린 마린 포트홀이 있어 꽤나 독특한 비주얼로 소문난 이곳.

마치 외계행성에서나 만날 듯한 낯선 풍경이라 어느새 명소로 굳은 포토존이기도 하다.

사계해안 저 끝에서 이쪽 끝까지 걸으며 산방산도 담고 형제섬도 찍고 박수기정도 담는다.

동으로 아른대는 한라산, 서쪽으로 느긋하게 엎딘 송악산도 찍는다.

그렇게 누룩 빌레 하모리층에 이르러 푸른 청춘들도 보고 파란 바다도 바라보노라면 절로 떠오르는 시.

박정원 시인의 시다.


바다는 파도로 말을 한다지

입술을 움직일 때마다 사람들은 쏴아 쏴아,

해조음으로만 듣는다지

중괄호 대괄호로 묶으면서 하시는 말씀을

갈매기들은 수평선까지 물고 와

밑줄을 그어가며 강조한다지

하기사 세상엔 이색진 비경들 허다하다

곳곳에 마그마를 품고 있는 바로 눈앞 예서제서 팥죽 끓듯 풀썩대는 옐로스톤처럼.

간헐천에서 증기가 올라오는 옐로스톤 지역에 만일 대폭발이 일어난다면 어떤 일이?

옐로스톤 인근만이 아니라 미국의 75%가 화산재에 덮이는 피해를 입게 된다고 한다.

에도 평균 기온이 12도 C 정도 내려가 전 세계를 한랭화시켜 지구촌에 대재앙을 몰고 온다는데.

64만 년 전에 대규모 폭발이 있었고 가장 최근의 폭발은 7만 년 전으로 추정되는 옐로스톤인데 언제 대폭발이 일어날지.

미국 지질조사국이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분석한 결과 금세기에는 폭발 징후가 없다지만.

그곳은 미국인들이 가장 가보고 싶은 곳 1위로 이유인즉, 언제 사라질지 모르기 때문이라는 옐로스톤이다.

마찬가지로 하모리층은 두드러지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하루하루 미세하게 부서져 모래알로 변해간다.

철썩대는 바닷물이 하루 두 차례 들고나며 하모리층을 깎아내고 있으므로.

그렇듯 점점, 또 언젠가 완전히 소멸해 버리는 것들은 그것이 무엇이든 우리를 조바심 나게 만든다.

하여 사람들은 나이 들어 늙어간다는 것을 한사코 거부하려 드는 걸까.

나이듦이야말로 생명 지닌 모든 존재에 대한 최상의 선물, 노년기란 인생의 황금기에 다름 아니다.

삶이 내게 얹어놓은 짐이었던 책임 지워진 의무로부터 해방되어 맘껏 자유로워진 지금.

건강 이만만 해서 두 발로 걸어 다니며 가고 싶은 곳 찾아다닐 수 있는 이 축복이야말로  황감스럽지 않은가.

복 중에 가장 큰 복인 노후복, 이만한 축복이 어디 있을 거며 따라서 뭘 바라랴 싶다.

빛나는 젊음이 좋다지만 노년의 특권은 걸림 없는 자유로움과 여유로움에 더해 편안함까지 부여받는데.

꽃답다는 청춘, 그 옛날로 회귀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해도 단연 노댕큐다.

셀카 찍느라 여념 없는 젊은 커플들과 이쁜 가족들, 원경으로 스냅샷 담으며 한가로이  해변의 낭만 즐길 수 있는 지금 이대로가 좋다.

모랫벌따라 계속 걸어가면 발자국 화석도 만나련만 만조 때라 그 기대는 접고 송악산 방향으로 길머리를 잡았다. 

주소: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안덕면 형제해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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