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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Jun 24. 2024

천지 가르며 구름 불사르고 서서히 떠오르는 일출의 장엄 앞에 엎드려 경배하라, 경배하라.

두 팔 힘껏 펼쳐 환호하며 감격의 뜨거운 전율로 찬탄하라.

황금으로 질펀한 수평선 마침내 박차 딛고 호기롭게 일어서는 빛.

새 아침 위해 밤새워 성심껏 갈고닦은 빛. 정제된 빛 중의 빛으로 누리 밝히며 솟는 아침 해.

 

화염 뚝뚝 떨구며 휘날리며 치솟는 불덩이.

노련한 솜씨로 빚은 순금의 원반 쏘아 올리는 이 누구인가.

찬란한 새날의 휘장 힘차게 걷는 그는 누구인가.

드높은 하늘의 거룩한 신성 우러러 오직 공손스레 두 손 모아 합장하라.


이만큼 황홀한 조화 속이 또 있을까 싶잖은 현란의 극.

해운대 일출은 견줄 데 없는 장관이다. 차마 마주하기 두려운 狂炎. 눈멀도록 큰 빛의 위용.

서툰 글로 그 진수 훼손 될라 저어하며 삼가 묵례를 바치노니.


천여 년쯤일까. 여기 아직 그 어떤 이름도 매겨지지 않은 옛날.

북두칠성 밝은 별의 점지로 세상에 나온 해동의 한 문장가.

외로운 구름 되어 떠돌다 이 바닷가에 멈춰 자신의 字를 얹어주며 해운대라 이른 곳.

 

窓外三更雨요

燈前萬里心이라.


唐에서 누린 명성과 영광 물리치고 그리던 고국 신라에 돌아온 孤雲.

그러나 높은 학문과 이상 펼쳐보기엔 이미 기울어진 國運 앞에 고뇌하며 방랑의 길 떠난 최치원.

당대 최고의 시문은 계원필경으로. 신묘한 필법은 진감국사 비문으로 새겨두고

표연히 가야산에 들어가 신선되어 천상에 오른 분.

 

맑은 그 인품 기려 해운대는 저리도 청청한가.

그 덕망 경모해 해운대는 또 저리 너른가.

逆臣 황소의 감담 서늘케 한 추상같이 준열한 '토황소격문' 우렁찬 목소리는 큰 파도로 화했는가.

해운대여 이르라. 해운대여 답하라.


시종 여일한 침묵 속에 그저 파도 소리만으로 아침을 영접하는 바다.

더불어 기지개 켜는 삼라만상.

깊이 잠들었던 도시 깨어나 해풍으로 말갛게 세수를 한다.

 

비로소 천천히 출렁이기 시작하는 바다. 해운대 바다가 푸르게 넘실대기 시작한다.

여태껏 안개의 속삭임에 수줍게 젖어있던 바다.

몽롱한 그 도취에서 벗어나 헌헌장부 영웅 되어 일어서는 바다.

 해운대 바다에는 굽이굽이 파도마저 준수하다. 결결의 파도조차 힘이 넘친다.

 

파도의 끝없는 소멸과 생성으로 바다는 그리 너울대는가.

아니면 세상사 온갖 오탁과 시비 한데 모아 다스리느라 그리 격렬한 걸까.

술렁이며 나붓대며 한껏 달음질쳐와 물보라로 처연히 산화하는 파도.

잠시 굽이치다 속울음 삼키듯 숨죽여 이울고 마는 물이랑 인들 또 얼마인가.

그럴 바엔 차라리 마구 치솟아라. 솟구쳐 산산이 부서져라.

부서지고 깨어져 다시 젊은 물굽이로 환생하라, 해운대 파도여.

 

삼면이 바다로 싸인 이 땅엔 곳곳에 절경도 많다.

급경사 이룬 동해의 경포대. 물색 심오한 변산 해변,

파도 거센 제주 서귀포 다 합쳐도 해운대 명성에 필적할까.

남태평양 해안 탐나지 않는 천혜의 수려한 풍치 지니고 가슴 드넓게 열고 있는 해운대.

  

온천수를 품었는가 하면 동백섬 기암과 노송,

푸른 언덕 달맞이 고개로 운치 있게 이어지는 해변 따라 반월형 모래사장 빛 부신 파도.

해운대는 부산의 명소 이전에 한국의 비경이라 칭해 손색없을 터.

 

굳이 한여름 피서철의 번요와 혼잡은 말하지 않겠다.

뒤끓는 인파가 뱉어 내는 난폭한 소음의 방류도, 무질서의 분방함도,

 데쳐낼 듯 달구는 염제의 횡포 탓이라 하자.

그러나 환희에 넘쳐 사뭇 들떠 있는 여름 바다에서는 왠지 열정 소나타가 들릴 것만 같다.

격랑에도 터질 듯 열광하는 환호. 폭풍마저 화려히 군림하는 그 바다의 마력.


아직은 여름. 그리고 지금은 구름 한 점 없는 아침.

빛나는 일광의 세례로 바다는 사금 뿌린 양 반짝댄다.

바다에 쏘듯 내 꽂히는 火山彈이며 퍼득이는 불새의 수많은 깃털 조각이며 겹겹의 물결마다 흥건한 용암.

그 전부를 다스리고 식히며 서두름 없이 일어서는 바다. 그 바다와 멀리 작별하고 하늘에 드는 태양.

 

모네의 일출 풍경이 이리 훌륭하고 의상대 해돋이가 이리 대단하던가 싶은 찬란한 아침이다.

이 나라는 조선. 아름다운 아침의 나라란 뜻이 오늘 더욱 실감 난다.

문득 소리쳐 외치고 싶다. 자유와 평화 속에 이 땅이여 무궁하라고.

  

이제 나의 일상 그 하루를 열기 위해 돌아갈 시간.

도심으로 향하는 발자국마다 푸른빛 서렸고 옷자락엔 바다 내음 흠씬 밴 채로 나는 한껏 행복하다.

불과 이십여 분 거리에서 나를 기다리는 해운대가 예 있다는 것만으로 분명 축복받은 選民.

오래도록 여기 살며 극진한 마음 모아 두고두고 나는 해운대를 찬하리니.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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