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량화 Mar 12. 2024

우짜꼬?


한 일주일 되어간다.

요걸 어찌하오리까, 누구에게든 묻고 싶은 일이 생겼다.

그래서 딸내미에게 텍스트를 보냈다. 우짜꼬?

이 한마디에 딸려 사진도 한 장 전송했다. 바로 위의 길냥이 사진이다.

태생적으로 냥이는, 마치 물풀에 앉은 실잠자리처럼 촉각 예민하다.

주변의 미세한 기척에도 경계부터 하고 여차하면 연기처럼 사알~ 사라져 버린다.

간이 콩알만 한 냥이 같으나 웬일인지 이번엔 사진을 찍도록 선심 쓰며 꼼짝도 않는다.

연을 맺자는 건지, 오히려 나를 빤히 바라보면서 담장 위에 오도카니 앉아만 있다.

 
며칠 전 해거름 무렵이었다.

시원한 바람 좀 들어오라고 현관문을 열어놓고 있었다.

그때 앞뜰에 무언가가 휙~스쳐 지나갔다.  

마른 잔디 빛깔하고 거의 비슷해 헛것을 봤나 싶어 확인차 문밖으로 나갔다.

언뜻 스친 동선 따라 시선을 옮겨가다 보니 달아나던 물체와 내 눈이 마주쳤다.

누런 고양이었다.

냥이는 무슨 생각에선지 뜰 한구석에 멈춰 선 채 그대로 잠자코 있었다.

자그마한 몸집에 밉지 않은 순한 얼굴을 한 누렁이 배는 아주 훌쭉했다.  

배가 고픈 게로구나, 몰래 멍이 녀석 먹이를 조금 떠다가 접시에 담아놨다.

얼른 다가오지는 않았지만 밤에 나가보니 그릇이 비어있었다.


그 이튿날 아침, 문을 열고 나오자 냥이가 뜰 앞 저만치 오도카니 앉아있었다.  

때맞춰 끼니 찾아먹으려 와서 미리 대기하고 있는 폼새다.

그러나 아직은 불안한 듯 쭈뼛쭈뼛 눈치를 보며 금방이라도 도망칠 자세다.  

아마도 노숙자 눈빛이 저리 불안정하리라, 집 없이 떠도는 길냥이도 마찬가지다.

측은한 마음이 들어 또 멍이 건사료를 슬쩍 퍼다 부어놓고 성당에 갔다.

그래도 인기척은 무조건 조심해야 한다는 듯 내 움직임에 잽싸게 몸을 피해버렸다.

한 시간 뒤 와보니 그릇은 역시 깨끗하게 비어있었다.


슬슬 고민이 됐다.

아무리 양고기로 만든 사료라하나 냥이에게 개밥 주는 게 맞는 일은 아닐 게다.  

더구나 책임지고 계속 거둘 것도 아니라면 이게 잘하는 짓은 아니다.

어쩔 것인가, 결국은 냥이들을 키우고 있는 딸내미에게 SOS를 쳤다.

제 고양이 살구와 요요 외에도 조카가 입양한 부시까지, 거느린 식구가 여럿이라 진작부터 쌓아둔 경험도 많다.

맘먹고 한 생명 거둬줄 거 아니면 피차 정 붙이지 않는 게 좋지만, 기왕 온 거 돌봐 봐.

길냥이를 사람이 보살피기 시작하면 그나마 야생성 떨어진다지만 수척한 게 가엷으니 지가 찾아올 때까지는....

먹이는 열흘 정도 안 먹고도 살지만 물을 못 먹으면 방광에 탈이 생기므로 꼭 정수한 물을 떠주고.  

주문대로 물그릇에 맑은 물 마르지 않도록 자주 채워 놓았다.

사나흘 지나고도 조석으로 때만 되면 냥이는 기다렸다는 듯 현관 앞으로 다가왔다.  

은근 갈등 생기네, 딸내미한테 하소연했다.

어차피 냥이가 주인을 찜하는 거니 좀 더 지켜봐.


안 그래도 요물이라 불리는데 이건 또 무슨 괴담이람.

저 싫으면 안 올 텐데 이미 집사로 찍혔으면 장항아리에 숨어도 인연 못 피해, 전에 쫑쫑이들 못 봤어?


쫑쫑이는 우리가 미국온 초창기 뉴저지 아파트에서 돌본 길냥이들이다.

아직 모든 것이 서툴고 두서없던 때, 처음 해보는 일에 지쳐 밤이면 파김치가 되던 이민 초기였다.

아파트 뒤란 베란다에 어느 날 느닷없이 애앵거리는 조막만 한 어린 고양이 두 마리가 등장했다.

어미임직한 고양이가 몇 차례 우리 주변을 배회하더니 새끼들을 물어다 놓고 사라져 버린 것.

팻마켓에 가 우유를 사나르고 냥이 장난감, 깡통먹이를 사 날랐다.

야생으로 살며 옮았을지도 모를 틱이나 벼룩이 염려돼 보일러실에 보금자리를 만들어줬다.

딸내미가 이름을 민종이 현종이라 지어줬다. 뾰쪽한 얼굴이 당시 그 연예인 얼굴을 닮아서였다.

새로운 생활에 적응해 나가느라 날카로워진 채 서로 힘겹던 시기, 그들은 작은 위로와 소소한 기쁨을 주었다.

쫑쫑이는 우리에게 선물이나 하듯, 베란다에 매미를 산채로 잡아다 놓거나 생쥐도 물어다 놓았다.

딸내미가 학교를 LA로 가게 되 뉴저지에서 떠날 때, 걔네들 먹거리 일 년 치를 사다 쟁여두고 갔다.

아파트 거처를 옮기면서도 굳이 1층에만 살아야 했던 우리는 그들과 삼 년여를 함께 지냈는데

어느 날 가뭇없이 두 마리 다 동시에 사라져 버렸다.

그즈음 animal shelter에서 밖에 돌아다니는 동물을 집중적으로 포획해 갔다는 소문을 들은 게 전부였다.  

  
지난 주말 딸내미로부터 아마존에 고양이 밥을 주문해 뒀다는 연락이 왔다.

도중에 만일 누렁이가 안 나타나도 다른 냥이들 먹이면 되니까 상관없다면서.

월요일 건사료 한 포대에다 깡통 사료와 간식봉투가 든 박스 두 개가 도착했다.

타생지연(他生之緣), 세상사 옷깃만 스쳐도 억겁의 인연이라 하였다.

작은 인연도 소홀히 여기지 말라는 뜻이렸다.

분명 모든 것과의 만남에는 깊은 뜻이 있기 마련이라는데 이 무슨 인연인지는 잘 모르겠다.

잠시 머무는 인연일지 기나긴 특별한 인연이 될지는 그 또한 하늘이 정할 일.

쉴 새 없이 꼬리 흔들며 애교 떠는 멍이와 달리 냥이는 냉랭하니 붙임성이 적은 편이라 스스럼없는 한 식구가 되어가는 과정이 까다로워 친해지는데 시간이 걸리긴 할 것이다.

워낙 천성이 까칠하고 쌀쌀맞은 냥이라 쉽게 마음을 열진 않겠지만 점점 나한테 신뢰감을 보이는 누렁이.

아직도 가까이하기엔 먼 그대이나 이쯤에서 이름 하나 지어 살갑게 불러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서 불방 이웃지기님들에게 냥이 이름 공개모집 즉석 이벤트를 펼쳤고 최종 채택된 이름이 잔디였다.

심한 가뭄으로 물부족사태에 직면했던 때여서 우리 집뿐 아니라 집집마다 잔디 누렇게 변해있던 시절이었다,

작가의 이전글 기적의 항해 그리고 아름다운 보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