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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Mar 12. 2024

길냥이로 엮는 스토리텔링

냥이 결막염

더위가 기승부리던 8월 어느 날.

앞뜰에 처음 등장한 건 귀태스럽게 생긴 누런 고양이였다.

황금고양이라 불리는 예쁘장한 녀석인데 어쩌다 길냥이 신세가 되었을까.

먹이를 챙겨줬더니 얼마 후 까만 턱시도 고양이가 또 나타났다.

날렵하게 생긴 턱시도는 목걸이 줄이 있는 걸로 봐서 집 잃은 냥이 같았다.

둘은 끼니때가 되면 앞서거니 뒤서거니 와서 먹이를 나눠먹었다.

서로 친한 기미도 보이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하악질을 하지도 않았다.

먹이를 다 먹고 나면 나무그늘에 앉아 각각 그루밍을 하면서도 소닭 보듯 뜨악해하는 사이였다.

본래 쌀쌀맞은 성정이지만 어차피 길냥이된 처지에 도도해봤자이니 경계 풀고 허물없이 지내자 합의하였는지도.  

암튼 두 녀석은 불방에서 공모를 통해 얻은 이름이 노란 괭이는 '잔디', 까만 괭이는 '바람', 그렇게 불렸다.

며칠 지나서였다. 또 한 마리가 새롭게 나타나 밥그릇 주변에서 어슬렁거렸다.

녀석을 어둠 속에서 처음 봤을 땐 얼핏 너구리인 줄 알았다.

이튿날 밝은 데서 보니 몸집도 퉁퉁한 데다 동작이 느려 만삭인가 싶었다.

하루는 '잔디'에게 알아듣게 타일렀다.

사료 감당은 둘째치고 고양이 새끼치레까지는 노땡큐니, 처음 온 '잔디' 니가 알아서 교통정리 좀 해줘야겠다고.

고양이는 영물이라더니 진짜 이튿날 곧바로 희한스러운 일이 생겼다.

조석으로 드나들던 '잔디'가 감쪽같이 사라져 버린 것.

얼핏이라도 한번쯤 보이련만 이후 완전 자취를 감춰버렸다.  

원체 조심성 많은 냥이인 데다 교통량 많은 동네도 아니므로 윤사  당할 리도 없을 텐데 기이한 노릇이었다.

가뭇없이 사라진 '잔디'가 다시는 나타나지 않자 별의별 추측을 다 하게 됐다.

오래전 뉴저지에서 어미괭이가 그랬듯 '잔디'는 어미였을지도.


못난이 자식을 위해 미인계를 써서 신실한 밥주인 정해놓은 다음 눈치껏 알아서 제 입 하나 덜어버린 건가.

'바람'은 목줄이 있으니 '잔디' 새끼는 아니겠고 아마도 식탐이 심한 퉁실이 엄마가 아니었을지?

왜냐하면 먼저 온 '바람'이 텃세는커녕 주객전도도 유분수, 뒤에 온 퉁실이 눈치를 슬슬 살피며 밥을 먹다가도 걔가 오면 슬며시 자리를 비켜줬다.

그 얘길 들은 딸내미가 밥그릇을 각자 따로 만들어 주래서 그리해 놔도 소용없는 게, 항상 먹을 만큼 먹으면 물러나는 '바람'에 비해 퉁실이는 게걸스럽게 둘 다 먹어치웠다.

뱃살이 축 쳐져 임신으로 오인했던 퉁실이는 다행히 머스마, 녀석은 오래 배곯은 데다 태생적으로 먹성이 좋았다.

 
안 그래도 빼빼 인 '바람'은 제 밥도 못 챙겨 먹고 비실거리니 불쌍한 판에, 먹을 거 너무 밝히는 먹보 퉁실이가 얄미워지려 할 즈음이었다.

퉁실이는 그날도 '바람'이 남긴 밥까지 다 핥고 있었는데, 사람 경계를 덜하는 녀석이라 가까이 다가가 사진을 찍다 보니 눈 아래로 물기가 보였다.

사진을 확대해 보자 눈물 흐른 자국이 선연했고 가느스럼하게 뜬 눈가는 도도록 부기마저 있었다.

눈이 아팠구나, 그래~ 아플 땐 많이라도 먹고 우짜든동 스스로 병을 이겨내렴.

며칠 후에 봐도 역시 총기 없는 눈을 가늘게 뜬 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세로로 길게 광채가 나는 캣츠아이라는 보석이 있다시피 고양이 눈을 들여다보면 참 아름답고 신비스런 느낌마저 든다.

그런데 퉁실이 눈은 반쯤 감긴 채 지저분한 물기에 젖어 흐릿했다.

걱정이 되어 딸내미에게 문자를 보냈다.    

곧장 답이 왔는데 그리 깔끔 떠는 고양이이지만 결막염이 온 거라고....

검색을 해보니 자신의 혀와 앞발을 이용해 그루밍하다가 눈을 비비면서 세균에 노출되어 결막염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흔하 단다.

동물 처방약도, 사람 증상이나 병인 자체는 거의 마찬가지라서 용량을 줄여 조정해 주면 된다면서 약을 보내왔다.

딸내미가 달여보낸 약을 캔사료에 개어서 줬더니 무척 쓰다는데도 잘 먹어냈다.

먼저 먹이를 먹으러 왔던 '바람'은 냄새를 맡아보더니 거들떠도 안 보고 돌아서던데
퉁실인 저 나을 약인 줄 아는 듯이 야금야금 먹어줬다.

약밥?을 먹고는 늠름하게 앞문으로 사라지는 뒤태가 하도 의젓해 괭이도 호랭이도 아닌 고랭이라 이름 지었다.   

몇 끼 연달아 약을 먹더니 눈병은 씻은 듯이  나았다,


여기까지라면 괭이가 영물이란 말을 거푸 동원할 일이 없으렷다.    

과연 고양이는 척하면 삼천리요 사람의 마음을 읽어내는 영물은 영물이었다.

왜냐하면 고랭이는 제 병 낫게 해 줄 집을 찾아왔던 거였고 눈이 완쾌되자 파란  알이 물린 귀걸이 한 짝를 답례로 물어다 놓았다.

그리곤 더 이상 폐 안 끼치겠다는 듯 앞뜰에 다시는 얼씬거리지 않았다.    


요즘 우리집에는 '바람'이만 유유자적 혼자 노닌다.


물론 지금도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먼 그대일 뿐이지만.

학교에서 돌아와 보면 마당에 길게 퍼질러 누워 큰 대자로 자고 있다, 아니 현관 앞을 지키고 있다.

밥을 먹고 화분가에 앉아 노는 모습도 무방비상태로 꼬리를 척 내놓고 무심의 경지에 들어 느긋하기 그지없다.

그로부터 오대산 상원사에서 오래전에 본 고양이 석상이 생각났다.  

조카를 내친 세조는 하늘벌을 받아 심한 피부병으로 오래 고생을 하다 문수보살 덕분에 병에서 해방되었다.

이후 신실한 불자가 된 세조가 상원사에 예불을 드리러 갔다.

기도드리러 법당에 들어서려는 순간 고양이가 나타나 세조의 옷소매를 물어 당기며 놓아주질 않았다.

순간 불길한 예감이 든 세조가 호위병들을 풀어 법당 안을 뒤지게 했더니 수미단 밑에 자객이 숨어 있었다.

고양이 덕에 목숨을 건진 세조는 은혜 입은 고양이를 잘 기르라며 전답을 사찰에 내려 치하하였고, 고양이 석상을 만들어 그 일을 기렸다던가.

아래 사진하고 포스가 엇비슷한 석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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