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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Jun 22. 2024

운주사의 투명한 적요

남도 여정

운주사 와불님을 삼십여 년 만에 다시 뵈었다.

신세계 열어주신다 한 약속대로 이제야말로 깊고 긴 바위 잠 털고 일어나실 때.

수선스런 나라 정의 바로 세워지고 이 땅에 평화 정착되길 기원 올렸다.

자그마한 돌멩이 모아 가족의 평안 비는 돌탑, 석탑 전 아래 쌓았다.



그 밤, 새벽 두 시 반경에 잠에서 깨어났다.

말갛게 고인 밤의 적요가 너무 소중했다.

소리란 소리 온전 차단된 새하얀 사위.

바람소리조차 가라앉아 풍경도 아무 기척이 없었다.

한밤중, 태초의 고요를 음미하며 새벽 도량송을 기다렸다.

정확하게 네시 청량한 목탁소리가 삼라만상을 깨웠다.

성심 어린 새벽예불 시간, 백팔배를 넘어 어림짐작으로 이삼백 배는 너끈히 올렸지 싶다.

저절로 아주 사뿐사뿐 가비얍게 마치 신들려 작두라도 탄 듯이...

여섯 시 반 아침 공양을 마치자마자 다시 산비알 두루 훑었다.


30년 전, 광주는 초행길이었다.

낙안읍성에서 하루를 지내고 우리는 대흥사 부도탑을 보러 갔다.

다음 날 광주에서 운주사를 가기 위해 화순행 버스를 탔다.

초가을 바람결에 들깻잎 내음이 실려오던 한적한 시골길에 우리 둘만 부려졌다.

방향 분간도 안 되는 낯선 동네, 운주사 물어물어 겨우 산문에 들었을 때는 어둑신했다.

천불천탑의 설화 간직한 운주사답게 여기저기 탑과 불상 윤곽이 장승처럼 서있었다.

기와 법당 하나에 요사채는 초가였고 담장은 곧 허물어질 듯 퇴락한 절이었다.

안개가 마당에 굼실굼실 기어 다녔다.

초여드레 시린 달이 구름 사이 언뜻 모습을 드러내곤 했다.

친절한 공양주 보살은 저녁을 차려주고 풀기 빳빳한 새 이부자리까지 내어줬다.

뭉텅이로 떠다니는 안개 기세에 눌려서인지 사위는 고요하다 못해 괴괴했다.

겁도 없이 현송은 바깥 샘터에서 세수를 하고 수건 목에 건채 탑 구경을 하고 들어왔다.

방문 고리를 걸었어도 창호문을 밀고 두꺼비라도 튀어들 거 같이 으스스한 밤이었다.





새벽에 눈을 떠보니 그녀는 자리에 없었다.

잠도 없는 그녀는 어둠 가시기도 전 벌써 출사를 나간 모양이었다.

여전히 안개는 점령군처럼 마당 가득 진을 치고 있었다.

이윽고 현송이 들어와 안개 걷히기 전 빨리 나가보자고 재촉했다.

드물게 만난 기막힌 안개라며 그녀는 상기된 표정이었다.

당시 그녀는 오십 대 초반이었고 나는 사십 대 초,

열 살 가까이 차이 나는 우리였지만 여러모로 공통분모가 많아 친구가 된 우리.

박물관 학회에서 처음 만난 우리는 이후 의기투합, 문화 탐방 여행에 자주 동행했다.

그날도 부지런한 그녀가 앞장서 산비탈 석탑을 보여주고 와불이며 칠성바위로 안내를 해줬다.

우리는 이슬에 바짓단 흥건히 젖도록 숲 속을 사슴처럼 쏘댕겼다.

사진작가인 그녀는 삼각대를 설치하고 사진을 계속 찍었다.

햇살이 퍼질 즈음에야 우리는 절로 돌아왔다.

그때만 해도 한참 젊었던 우리, 그새 삼십 년 세월이 흘러갔다.




며칠 전 통화 중에 그녀는 척추관협착증으로 걷기도 힘들고 하루하루가 너무 고통스럽다 했다.

전신만신 안 아픈 곳이 없다며 정녕 사는 게 고역이라 하소연한다.

갈수록 나이테가 보태지니 병원 다녀온 얘기가 주종을 이루며 화제는 늘 건강 문제다.

운주사를 함께 찾았던 그때야 이런 날이  오리란 예상 같은 건 전혀 하지 못했다.

 운주사 와불 앞에서 현송의 건강을 간곡히 청하고 왔는데 모쪼록 덜 아팠으면...


구름층 사이로 언뜻 비친 일출 마주하며 삼라만상 모두의 평강을 빌며 합장배례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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