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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Jun 22. 2024

숲에 내린 별

참 이상도 하지. 그들은 왜 먼 곳의 나를 그리도 은근히 불러 주었을까. 나는 또 숙세(宿世)의 어떤 인연이었기에 그토록 간절히 만나고자 했을까. 구름이 머문 곳, 천불천탑의 설화 간직한 운주사에 닿으니 푸근하기가 고향만 같았다. 동구의 감나무조차 구면이듯 반가움은 윤회전생의 어느 날, 나 여기와 맺은 연(緣)이 가볍지 않음이리.


백제의 옛 땅 운주사에 千의 불상과 탑 또한 천기(千基)를 일주야에 조성하면 나라를 다시 일으킬 수 있다는 풍설에 따라 민중들의 힘이 모아진 대역사(大役事)의 현장이다. 하긴 절마다 창건에 얽힌 유래는 다분히 신화에 가깝기 마련. 바위가 공중에 떠있었다느니, 훼방 놓는 용을 신통술로 다스렸다는 등의 허황함이 불가사의한 불력(佛力)으로 수용되곤 한다. 마찬가지로 신비 그 자체인 운주사 내력.


산비알 숲과 여기저기 널려있는 불상이며 석탑을 보물찾기 하듯 더듬어 찾는다. 오랜 세월 무심히 방치되어 一千의 숫자 거의가 유실되고 남은 건 불과 백여 기(基)에도 못 미친다. 그나마 더러는 쓰러지고 조각났지만 대부분 탑은 고준(峻)하고 불상은 하나같이 기도하는 자세다. 미래불로서 민간신앙의 대상이던 미륵불은 지극히 단순하고 무딘 모습으로 그렇게 이 땅에 왔던 것.


여기에 도선국사가 등장한다. 왕건의 출현과 고려 건설을 예언한 바 있는 도선. 이른바 풍수지리설에 따른 도참설로 당시 사회와 정치면에 많은 영향을 끼친 그는 신라 말 승려다. 반면 운주사 인근에 산재한 탑이나 불상의 조각 기법은 고려 후기로 추정되고 있어 실제 조성 연대가 엇갈리나 그 점은 내 관심사가 아니다.


운주사에서의 하룻밤. 미망과도 같은 짙은 안개와 초여드레 시린 달빛 때문인지 새벽 도량송마저 비몽사몽 속에 멀어져 갔다. 어떤 단위 높은 환각제에 취했음인가. 정녕 야릇한 건 그들과의 상면이 아무래도 꿈만 같다는 느낌을 지울 길 없다. 도무지 꿈만 같다. 실상을 접한 후 오히려 몽환적 이미지가 더 승昇해 버림도 괴이쩍은 일. 이제도 운주사를 떠올리면 신묘한 기분 먼저 든다.


그중 놀랍게 새겨진 건 미처 일으켜 세우지 못해 암석으로 붙박인 채인 와불이다. 입체감 없이 담담한 표정이야 운주사 여느 불상과 마찬가지이나 두상(頭像)만도 얼추 내 키 가까운 크기에 양손 오롯이 합장하고 누운 부처님 두 분. 자연 암반에 그대로 함께 조각된 채다. 그 마지막 두 불상을 완성시켜 세우려는 찰나, 새벽닭 울며 무위로 끝나고 마는 백제 유민의 꿈.


결국 운주사 석불은 용화정토 이룰 미륵부처님이 아닌 한갓 돌장승일 뿐이었던가. 아니리라, 단연코 그럴 수는 없으리라. 바위란 바위 모두에 사무친 비원을 일념으로 새겨 둔 석공들 불심이 스며 운주사는 언제이고 상상 초월하는 놀라운 영험과 이적을 보이고야 말리라 여겨진다.


또 한 곳, 뚜렷이 인상에 남은 것은 바윗돌을 연자방아처럼 원판으로 다듬어 배치시킨 북두칠성 좌()다. 위치와 간격까지 실제 별자리와 영판 닮았다. 무슨 연유로 하늘의 별떨기가 언덕 위 숲에 깔려있는지는 역시 풀지 못한 수수께끼. 이스터 섬의 거석상이나 페루 나스카 대평원에 고랑 져 있다는 방대한 모형의 거미며 새처럼 그 누구도 명쾌한 정의를 내릴 수 없는 미스터리다. 대자연이 품은 비밀의 일부로 풀리지 않는 불가사의인 채 오만가지 가설만 무성케 하는 운주사.


북두성 자루 돌아 서천(西天)을 가리키니/선선한 조석 기운 추의(秋意)가 완연하다.


<농가월령가>를 읊조리다가 언뜻 다시 생각난 운주사. 운주사 북두칠성이 어제본 듯 그려진다. 일곱 개의 동글납작한 바윗돌. 북두칠성 가에는 밋밋한 칠층탑이 음영 짙게 드리웠고 팔월의 무성한 숲에 도라지꽃이 군데군데, 마치 청량한 종소리 퍼지듯 이슬방울 달고 피어있었다. 되돌아보니 운주사 북두칠성도 머리 쪽으로 막 솟기 시작하는 아침해를 맞아들이지 않던가. 따라서 국자 손잡이 부분은 서편에 두고 있다. 곧 북두성 자루가 서천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렇다면 유추컨대 가을 들머리쯤에 그 불사는 이루어졌으리라. 들깻잎 향이 벌판을 질러왔을 거고 잔광 따가운 산록에 억새가 막 피어나기 시작했음직하다.


그날 밤 일부러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칠석 무렵이라 운주사 숲에서 본 바와는 북두칠성 방향이 달랐다. 항성이 아닌 담에는 계절 따라 위치가 바뀌는 별자리인 까닭이다. 대신 그 밤, 오랜만에 동녘을 흐르는 은하수 하얀 강줄기를 만났고 빗금 그으며 사라지는 유성도 두엇 덤으로 받았다. 이후 가끔씩 생각나는 숲에 내린 별. 왜 하고많은 별자리 중에 하필 북두칠성이었던가. 제우스 신이 아낀 님프 아가씨 몸 바꾼 별이라서인지 유독 반짝이며 눈에 잘 띄는 낯익은 별. 이슥한 밤마다 개울 건너 마실 가는 홀어미를 위해 일곱 형제가 징검다리 되었더라는 가슴 뭉클한 옛 전설 속의 별. 그렇듯 우리와 친근한 별이 바로 북두칠성이다.


어쩌면 영원이듯 아득한 56억 7천만 년 뒤에 온다는 미륵부처님보다 더 가까이 있어 현실적인 구원처로 택함 받은 칠성님은 아닐까. 무속에서만이 아니라 절에 가도 자손 위한 기도는 칠성각에서 올린다. 토속신앙이 종교 속에 자연스레 접목된 경우다. 그뿐인가. 칠성님 전 명을 빌어 태어나서 칠성판에 누우면 끝나는 생. 즉 삶의 시작과 마무리에 공통으로 동반되는 칠원성군七元星君이다.


지금도 그러하다. 거듭거듭 돌이켜봐도 이상스러운 일이다. 운주사가 나를 부른 그 강한 인력은 어디에서 온 것인가. 오래전부터의 내 그리움은 무엇에서 비롯됨인가. 전생록을 뒤적여 본들 흔적 찾을까 싶잖아 끝내 운주사는 안개 깊이 묻어두기로 했다. -9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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