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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Jun 22. 2024

나 쉴 곳은

요즘 연재소설을 읽는 재미에 푹 빠져 신문을 기다린다. 읽을거리가 지천이던 한국에서는 한번도 안 하던 짓으로 연재소설에 맛 들이기는 처음이다. 손에 잡히는 대로 아무 소설책이나 들고 읽으면 읽었지 하루하루 감질나게 기다리는 연재소설이라니. 이곳 생활이 퍽 무미건조하긴 한가 보다. 텔레비전 드라마를 보는 낙으로 사는 듯한 교민들이 꽤 있다. 미국 땅에서 살며 왜 그리 한국 드라마에 탐닉하는지 처음엔 신기하고 이상스러웠다. 그러나 골프나 낚시 등 즐기는 취미가 따로 있으면 모를까, 집안에서 휴일 여가시간을 보내기에 그보다 안성맞춤인 것은 없을 성싶다. 비디오 대여점이 불황을 모르는 것은 각 방송사마다 사활을 걸다시피 하며 줄창 재미있는 드라마를 만들어 내보내주는 덕이다. 연속극의 묘미는 다음 장면이 궁금해 안 보고는 못 견디게 만드는, 그래서 기다리게 만드는 데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연재소설도 마찬가지다.


공지영의 소설 <즐거운 나의 집>은 우선 가볍게 읽히고 흥미롭다. 그의 소설이 독자를 강하게 끌어들이는 흡인력은 역시 재미다. 평단에서는 그의 소설을 순수문학의 범주에 넣지 않지만 대중소설이든 어쨌든 지난해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흔치 않게도 날밤 새워가며 읽고 말았다. 그랬다. 손에 들자 마지막 장에 이를 때까지 아무래도 덮을 수가 없었다. 그처럼 한번 잡히면 놓여나지 못하게 되는 어떤 힘, 소설의 장점이다. <즐거운 나의 집> 소설이 연재되자 처음엔 시큰둥했다. 한데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라는 점이 알려지며 남달리 살아온 그녀의 안뜰을 엿보고 싶은 호기심이 발동했다. 몇 회 째 읽어나가자 이번엔 호기심을 넘어 소설 자체에 그만 사로잡히고만 나. 역시 명성은 괜한 것이 아니었다.


유복한 가정에서 자라 좋은 대학을 나오고 잠시 운동권에 몸담은 적이 있는 그녀는 이후 발표하는 소설마다 베스트셀러가 된다. 게다가 미모이며 똑 소리 나는 커리어 우먼이다. 목소리 당찬 페미니스트로서의 이력과는 달리 파란곡절로 표현되는 사생활. 보푸라기 같은 뭇 가십들이 자주 호사가들의 입방아에 오르던 그녀. 작가 자신의 표현대로라면 불가항력적인 운명이 그녀를 그리 내몰았다고나 할까.


바로 이웃에 태닝숍이 있다. 멋진 금발의 날씬하니 매력적인 여자와 아주아주 뚱뚱한 거구의 젊은 여자가 함께 비즈니스를 한다. 이를테면 동업이다. 가끔 근육질의 남자들이 와서 일을 거들기도 하는데 두 남자는 거의 비슷한 또래다. 넷이 모이면 대체로 친밀한 분위기이긴 하나 어딘가 모르게 이질감이 감도는 느낌을 준다. 그들이 어떻게 엮인 사람들인지 도무지 감이 잡히질 않는다. 친구 사이? 동서지간? 한동안 그들의 관계를 어림짐작만 하며 지내다가 드디어 궁금증을 풀 기회가 닿았다. 세상에나! 그들은 모녀지간, 매혹적인 여자는 대책 없이 뚱뚱한 여자의 친모라는 것이다. 한술 더 떠 그녀 엄마의 몇 번째 인가인 남편은 사위하고 동년배라는 말을 스스럼없이 한다.


껄렁해 뵈는 계부와 달리 그녀 남편은 과묵하고 성실한 인상이다. 사실 미국인이라 해서 이혼을 쉽게 차 마시듯 다반사로 하진 않는다. 가정사가 복잡하긴커녕 전통적일 정도로 오히려 더 가족의 의미와 가치를 중히 여긴다. 하물며 청교도 정신을 바탕으로 한 미국이 아니던가. 평균치로 따지자면 한국보다 이혼율이 적은 사회다. 요즘 미국 젊은이들이 최고의 행복으로 여기는 것은 돈도 성공도 아닌 가족 관계이며, 닮고 싶은 영웅으로 부모를 꼽는 사람들이 많다는 통계자료가 나왔다.


엄마가 자리를 뜬 다음 거구의 딸이 한 장의 사진을 내밀었다. 천사처럼 귀엽고 어여쁜 소녀가 하얀 드레스를 입고 풀밭에 앉아있는데 바로 자신의 어릴 적 사진이란다. 그리도 이쁘던 소녀가 기가 차게도 어찌 저리 망가져버렸는지. 남의 얘기하듯 아무렇지 않게 그녀는 가정사의 이면을 털어놓았다. 그녀의 폭식증은 부모가 이혼을 하며 그 스트레스에서 시발됐다는 것. 그녀 기억으로 하루도 빠끔할 새 없이 부모들은 싸움박질을 했다고 한다. 극심한 가정불화가 이어지다 마침내 파경을 맞자 소녀는 엄마와 함께 살게 되었으나 두 번 세 번 재혼을 하는 엄마를 보며 마구 분노가 치솟았다고. 폭식을 유발한 것은 부정적인 감정에서 헤어나지 못하며 사춘기 내내 시달려오던 우울증 때문. 거식증에 반대되는 폭식증은 비정상적인 식욕과항진증, 섭식장애 중 하나다. 


얼마 전에 들은 강론 내용이 떠오른다. 독신으로 지내는 사제의 입장에서는 대단해도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결혼생활이라고. 자라온 환경이 다르고 성격이 다른 두 사람이 만나 한집에서 함께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용한 일이냐고. 해서 첫 인연 그대로 가정을 유지하며 끝까지 해로하는 분들을 보면 존경스럽다고. 그러기까지에는 한쪽의 자기희생과 자기 포기 곧 자아를 죽이지 않으면 결코 유지될 수 없는 것이 결혼생활일 것이라 하였다. 절대 공감, 거의 무릎을 칠 뻔하였다.


좋은 반려를 만나는 일이 인생의 가장 큰 행복이라는 말이 있다. 하긴 내 편에서도 좋은 짝이 되어야 할 테고. 누군들 원만하고 화목한 가정을 꿈꾸지 않으랴. 그러나 저마다 소설 몇 권 엮는 우여곡절을 겪으며 살아내는 일이 결혼생활이다. 물론 부부화락하여 봄 바다 지나듯 평탄한 항해를 하는 사람도 있으나 때론 풍랑 거친 바닷길에서 좌초의 위기에 빠지는 경우도 흔하다. 절망의 끝자락에 다다라 그냥 폭풍 한가운데로 뛰어내리고 싶은 유혹을 받을 적도 있다. 모든 것, 최종엔 자신마저도 다 내동댕이치고 싶은 순간마저 적잖았다. 이혼을 심각하게 고려하며 갈등에 빠진 적이 어디 한두 번인가.



부부 문제에 있어 무조건 참고 견뎌내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 지독한 악연은 차라리 갈라서므로 서로에게 득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가정이 붕괴되며 상처를 입는 가장 큰 피해자는 자녀들. 해서 공지영처럼 잘 나가는 여류 명사라도 그 결단이 쉽지만은 않았을 터. 물론 결손가정에 대한 선입관이 어느 경우나 해당되는 건 아니다. 다만 온갖 환난 속에서 그래도 제자리를 지키며 버텨낸 모든 부부들은 위대하다는 생각이 연재소설 <즐거운 나의 집>을 보면서 왜 자꾸 드는지.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 구상 시인의 시 <꽃자리>다. 2007 -미주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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