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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Jun 25. 2024

돼지국밥이 임시수도 상징 음식 된 연유

까다로운 식성은 전혀 아니나 비위가 약해 가리는 음식이 더러 있다.

이름에서 연상되는 이미지, 독특한 색깔, 물컹한 식감, 이상스레 고착된 선입견이 일부 음식을 거부하게 만든다.

생선회나 선지는 겨우겨우 극복했지만 닭발 족발 멍게 게장 젓갈은 여전히 입에 넣기 거북하다.

나고 자란 충청도에선 육 탕국이라면 맑게 끓이는 무 쇠고깃국과 고추장 풀어 벌겋게 끓인 육개장이 전부였다.

돼지고기는 수육을 만들거나 김치찌개 할 때만 쓰는 고기인 줄 알았다.

허연 기름 둥둥 뜨는 돼지고기로 국을 다 끓인다고라?

부산에 오래 살았어도 두터운 비게부터 떠올라 느끼할 거 같아 돼지국밥은 한 번도 먹지 않았다.

처음 돼지국밥을 먹어본 것은 미국 엘에이에서다.

방학 때 부산에 다녀온 손자가 돼지국밥이 아주 맛있었다며 고모에게 돼지국밥 잘하는 집이 있느냐고 물었다.

얼떨결에 돼지국밥 전문집에 들어갔고 선택의 여지가 없으니 내 앞에도 자동으로 국밥이 놓였다.

식성을 아는지라 딸내미는 새우젓과 부추무침을 넉넉히 넣으라고 권했다.

수육과 기름기를 가려볼 양으로 풀밭처럼 부추로 완전 덮다시피 했더니 맛이 짰다.

쥔장이 국물을 한 국자 더 부어줬다.

순간 함민복 시인의 '눈물은 왜 짠가' 시가 떠올라 코끝 시큰한 대신 슬몃 웃음이 났다.

부추맛과 땡초로 얼버무려진 국밥은 생각보다 칼큼하고 구수하니 먹을만했다.

그 후부터 일부러 찾아가 먹기도 하는 돼지국밥이다.

헌데 첫 기억 편린이 깊이 박혀서일까, 돼지국밥을 먹을 적마다 가난한 시인과 육이오가 떠올라 음식 앞에 두고 적잖이 심란스럽다.

그래도 먹고 한번도 체하지는 않았으니 여간 신통한 게 아니다.



부산 대표 음식을 들라면 식객들은 보통 꼬치어묵 꼼장어구이와 함께 밀면 돼지국밥을 든다.

바다를 낀 부산이라 상징적으로 생선이 주재료인 음식을 자연스레 꼽게 된다.

하지만 완벽한 한 끼로 고를 수 있는 음식이라면 밥을 만 돼지국밥이 단연 으뜸이다.  

언제부터인가 대중적인 향토 대표 음식으로 서슴없이 꼽히며 선두 자리를 차지하게 된 돼지국밥.

대통령 후보들도 부산을 방문했다 하면 땀 뻘뻘 흘리며 돼지국밥으로 점심을 먹었다는 기사가 나곤 했다.

중앙동에서 카레집을 운영하는 귀화한 일본인은 돼지국밥이 너무 좋아 부산에 정착할 생각을 했다고 하였다.

그만큼 토박이를 비롯해 외지인들도 돼지국밥 맛에 취해 남은 뚝배기 국물 들이켜며 너나없이 엄지 척! 최고로 치는 음식이다.

돼지 뼈로 우려낸 진한 국물에 편육과 밥을 말아서 내놓는 돼지국밥은 원래부터 있었던 이 지역 고유의 향토음식이 아니다.

이북 피난민들이 부산에 몰리면서 허기를 채우려고 만들어 먹기 시작한 음식으로, 한국전쟁이라는 비극적 현대사가 낳은 산물이다.

월남한 피난민들이 임시수도에 주둔한 미군부대에서 나오는 돼지 뼈다귀를 구해 탕국을 만들어 먹은 데서 돼지국밥이 비롯되었다

경상도 지방에도 장터에 국밥집은 있었지만 쇠머리 국밥이나 순대, 선지를 넣은 국밥이었지 돼지고기로 국은 안 끓였다.

허나 난리 통에 비싼 쇠뼈를 구하기 어려운 대신 부대에서 흘러나오는 돼지뼈는 비교적 헐값이었다.

하루하루 먹고살기 힘든 전시라, 부황 들어 누렇게 뜬 아이들에게 그나마 영양가 있는 식재료인 돼지뼈라도 먹인다는 게 흥감스러웠다.  

갈비뼈며 등뼈와 내장 등을 푹 고아서 우려낸 국물에는 칼슘 단백질 등의 영양소가 다량 함유되어 있기에 먹고 나면 속도 든든했다.

이에 착안, 해장국집이나 돼지국밥 식당이 늘어났는데 차츰 돼지 냄새를 없애는 방법으로 소주 된장 생강 등 각자 나름의 비법도 찾아냈다.

경기가 전 같지는 않더라도 국밥 골목에 가보면 언제나 성시를 이룰 만큼 대중적이고 서민적인 음식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돼지국밥이다.

언뜻 무슨 맛일까 상상이 안 된다면 한번 시식해 봄으로써 스스로 돼지국밥 그 구수하고 투박한 맛에 홀려볼 일이다.


국밥을 먹을 적마다 자동으로 머리에 떠오르는 '눈물은 왜 짠가'라는 시도 음미해 볼 일이다.


함민복 시인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기나긴 산문시라 일부만 발췌했으니 전문도 찾아 읽어보시길.


-지난 여름이었습니다 가세가 기울어 갈 곳이 없어진 어머니를 고향 이모님 댁에 모셔다 드릴 때의 일입니다 어머니는 차시간도 있고 하니까 요기를 하고 가자시며 고깃국을 먹으러 가자고 하셨습니다
설렁탕에 다대기를 풀어 한 댓 숟가락 국물을 떠먹었을 때였습니다 어머니가 주인 아저씨를 불렀습니다 주인 아저씨는 뭐 잘못된 게 있나 싶었던지 고개를 앞으로 빼고 의아해하며 다가왔습니다 어머니는 설렁탕에 소금을 너무 많이 풀어서 그런다며 국물을 더 달라고 했습니다 주인아저씨는 흔쾌히 국물을 더 갖다 주었습니다 어머니는 주인 아저씨가 안 보고 있다 싶어지자 내 투가리에 국물을 부어주셨습니다 나는 당황하여 주인 아저씨를 흘금거리며 국물을 더 받았습니다 주인 아저씨는 넌지시 우리 모자의 행동을 보고 애써 시선을 외면해주는 게 역력했습니다 나는 그만 국물을 따르시라고 내 투가리로 어머니 투가리를 툭,부딪혔습니다 순간 투가리가 부딪치며 내는 소리가 왜 그렇게 서럽게 들리던지 나는 울컥 치받치는 감정을 억제하려고 설렁탕에 만 밥과 깍두기를 마구 씹어댔습니다 그러자 주인 아저씨는 우리 모자가 미안한 마음 안느끼게 조심,다가와 성냥갑만한 깍두기 한 접시를 놓고 돌아서는 거였습니다. 일순, 나는 참고 있던 눈물을 찔금 흘리고 말았습니다 나는 얼른 이마에 흐른 땀을 훔쳐내려 눈물을 땀인 양 만들어놓고 나서, 아주 천천히 물수건으로 눈동자에서 난 땀을 씻어냈습니다 그러면서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눈물은 왜 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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