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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Jun 25. 2024

허구와 진실

소설은. 작가의 상상력이 만든 가상 인물들이 펼쳐나가는 이야기를 서술한 창작물로 허구를 전제로 한다. 그러나 나관중의 삼국지연의는 7실 3허, 즉 진실 일곱에 허구 셋으로 이루어져 있다는데 그러면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떤 것이 허구인가.



김진명의 소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는 90년대 초 대박을 친 밀리언셀러였다. 내용은 70년대 한반도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열강들 틈에서 남북이 합력하여 핵개발에 성공함으로 미국과 일본에 K.O펀치를 날린다는 통쾌한 얘기. 그에 앞서 공석하 덕성여대 교수가 1980년대 후반, 소설 <핵물리학자 이휘소>를 통해 이박사의 죽음을 재구성한 바 있다. 소설 속 이휘소는 조국을 위해 극비리에 핵무기 제조기술을 남한에 넘기고자 했고 이를 알아챈 미국 정부는 교통사고로 위장해 이휘소를 제거한다.



그러나 실제 이휘소 박사는 핵무기와 직접 관련 없는 소립자 물리학 분야 전문가. 후배 학자들과 가족들 증언에 따르면 핵개발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게 정설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사실여부와 상관없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으려는 경향이 있다. 게다가 한반도 위기설이 돌 때마다 보다 강력한 힘을 갈구하게 된 우리는 민족주의에 기대 걸며 핵이라면 솔깃해진다.



어쨌든 공석하의 <핵물리학자 이휘소>가 다시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로 재탄생되며 공전의 히트를 쳤다. 동시에 보통의 한국인들은 이름도 들어본 적 없던 재미학자 이휘소를 '모국의 핵개발을 돕다가 희생된 영웅'으로 입력됐다. 원작가는 픽션 20%라고 주장하나, 소설이 선풍적 인기를 끌며 유명세를 타자 그 소식을 접한 미국의 이박사 유가족으로부터 두 작가는 명예훼손 및 인격권 침해로 고소를 당했다.



또한 김진명을 일러 ‘극우 민족주의자’니 ‘삼류 대중작가’로 낮추며, 특히 진보 논객은 그의 책들을 만화 수준의 불쏘시개 정도로 폄훼한다. 반면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는 고액의 판권료를 받고 일어로도 번역 출간되었다. 그런가 하면 90년대 말부터 북한에서는 권장도서로 지정되기도 하였다니 일면 아이러니다.

   

다음은 이휘소 박사의 생전 어떤 인터뷰 기사 일부다. 초등학교 4학년 난 딸애가 하루는 울며 집으로 돌아왔어요. 계속 울면서 “아빠 하고는 앞으로 말도 하지 않을 거야”하더군요. 딸이 울음을 멈춘 뒤 왜 그렇게 화가 났는지 말해 보라 했더니 단도직입적으로 “아빠는 원자폭탄 만드는 직장에 다녀?”라고 묻더군요. 제가 근무하는 기초과학연구소인 CERN의 이름에는 핵(nuclear)이라는 단어가 들어갑니다. 그래서 딸애 친구들이 제가 사람들을 많이 죽이는 핵폭탄을 만드는 곳에서

 근무하고 있다며 놀려대 화가 난 것이죠.'



‘이휘소와 핵무기’ 관련해서는 실제로 갖가지 추리와 상상력을 자연스럽게 유도할 법 한 대목도 있다. 거기다 당시 여러 시대정황도 충분히 핵무기 개발을 민족주의와 연계시켜 이끌어 나가게끔 돌아갔다. 70년대 베트남 전쟁의 종식을 핵심적인 대선 공약으로 내세운 리처드 닉슨 대통령. 각자도생, 자국의 안보는 스스로 알아서 책임지라며 신아시아 정책에 시동을 건 닉슨 행정부다. 동시에 주한 미군 감축에도 본격적으로 돌입했다. 미국의 핵우산에 전적으로 의존했던 한국은 살길을 모색해야 했다. 그 와중 닉슨이 중도에 사임하고 제럴드 포드가 대통령직을 이어받았다. 그러나 닉슨과 같은 공화당 출신인 포드는 전임의 전철을 답습했다. 대한민국은 안보공약 후퇴 조짐에 따라 북한의 위협이 커지자 대비책으로 중국과 등거리외교정책을 펴나갔다. 한편으로는 군 현대화와 함께 비밀리에 핵 개발 착수에 들어갔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핵 개발과 관련해 가장 상세한 정보를 담고 있는 문서는 1978년 6월 CIA가 작성한 <한국: 핵 개발과 전략적 의사결정>이라는 보고서이다. 2005년 미국의 정보공개법에 따라 비밀 해제된 이 문서에 따르면, 박대통령은 국방과학연구소(ADD) 산하에 '백곰' 미사일 개발팀, 핵무기 개발팀, 화학무기 개발팀'을 두고 해외에서 한국인 과학자들을 대거 초빙해 그들을 연구에 참여시켰다. 핵무기 개발 프로젝트 이름은 '890'이라고 문서에 명기되어 있다.



그러나 박정희의 핵무기 개발 계획은 미국의 개입으로 결국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미국 정부는 한국원자력연구원에 압력을 가해 캐나다와 벨기에로부터 들여오려던 재처리 및 핵연료 제조시설 수입을 무산시켰다. 일단락된 것으로 보였던 한국 핵문제는 그러나 전술 핵무기 철수와 주한 미군의 대규모 감축을 공약으로 내세운 지미 카터 민주당 후보가 1977년 당선되며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카터는 취임 일주일 만에 한국 내 전술 핵무기 철수 계획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동시에 '인권 외교'를 앞세운 카터 행정부는 박정희 정권에 대한 압박의 수위도 높여갔다. 이에 다시 핵무기 개발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1978년 CIA 자료에 따르면, 한국은 자주국방 차원에서 '핵무기 개발을 필요로 할 것'이라며 경계심을 드러냈다.



그 즈음 무슨 명목인지는 모르나 아무튼 바로 그해 78년은 이모부가 보국훈장 천수장을 받은 해이다. 서울대 문리대 재학 중 6.25를 만나 군에 입대, 1952년 화랑무공훈장을 받은 이모부는 그대로 군에 남아 후에 육군대학을 졸업한다. 그 중간 군에서 미국으로 유학을 보내 미사일 분야 공부를 수년동안 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줄곧 방공포병 사령부에서 근무했고 79년도엔 방공포병학교 교장을 지내기도 하였다.



전역 후인 한참 뒷날 이모부가 로터리클럽 연설 중에 인용한 에피소드가 퍽 인상적이었다. 대천 앞바다 섬을 향해 미사일 발사실험을 했는데, 성공리에 실험을 마친 다음 섬에 들어가 현장 수습 중에 새카맣게 타 죽은 물새를 발견했다는 것. 왜 피하지 않았을까 의아해하며 물새를 들추자 그 품 안에는 알이 소복 있었고, 온몸으로 알을 지키고자 꼭 품은 채 죽은 물새의 모성애에 숙연해졌었다는 얘기였다.  



특급 국가기밀이었던 미사일 발사실험을 성공시키며 보국훈장을 받았을 이모부, 우연히도 이모부가 미사일 발사실험을 한 그즈음, 홍성에서는 유례없는 강력 지진이 났었다는 기사도 보게 되었다. 미사일 연구개발을 주도하고 직접 실험을 진두지휘했던 이모부. 그 무렵에야 약력까지 상세히 알 까닭이 없었던 이모부에 대해 좀 더 자세한 경력을 확인하려고 이모부 함자를 넣고 구글링을 해보았다. 또한 국립대전현충원의 묘비에 새겨진 이력을 통해 김진명 소설 내용 일부가 허구 아닌 사실이었음도 그렇게 파악됐다. 워낙 바른생활을 하며 모범적으로 사셨던 분, 그래서 내가 살아오는 동안 참으로 우러른 분인데 생의 후반기 크나큰 오점으로 존경심 대신 인간적 연민만 남았지만.....   


며칠 전 러시아 푸틴이 북한을 방문, 포괄적 전략 동반자 협정에 서명했다. 친선 국빈 방문이라는 크렘린 궁의 발표와 달리  미국은 북 러 사이의 관계 심화에 대한 우려와 함께 다시금 한국 핵무장에 관해 논의의 불씨를 지펴가는 모양새다. 한국 정가 또한 계산이 복잡해질 터다. 날이면 날마다 보고 듣기도 역겹고 진력나는 이전투구로 지새우는 정부와 구케의원들 정신 좀 들려나. 돌아가는 판국이 하 수상해 구한말 상황도 떠오르고 현재 우크라이나 전쟁판도 겹쳐진다. 도무지  오리무중인 세상사, 기후 변화에 따른 기상 이변까지 지구촌을 강타하고 있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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