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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Jun 28. 2024

낡은 배, 도크에 들다


도크(Dock)는 선박 건조 시나 수리를 위해 조선소와 항만에 설치되어 있는 시설이다. 따라서 바다와 접한 곳에 자리해 있다. 미국살이 이십여 년에 낡아진 배를 수리하러 도크에 든 요셉호. 현재 한국에서 두 달 정도 머물 계획으로 부산 아들 집에 가있다. 진수 당시만 해도 푸른 대양 누빌 꿈에 부풀어 한껏 위풍당당했던 선박이다. 지금은 볼품없이 찌든 초라한 몰골의 낡은 배로 도크에 접안 돼 있는 형국인 셈. 우리는 또래들에게 흔한 성인병이 있는 것도 아니다. 달아놓고 먹는 복용약 하나 없으니 대체로 건강한 편에 속한다. 그러나 노후선박 되어 보수받으러 도크에 들어가게 됐으니 은근 심사가 추연해진다. 인생무상, 돌아보니 세월 정말로 잠깐이다.


  


뉴저지 생활을 마감하고 나보다  뒤늦게 캘리포니아로 돌아온 요셉은 퍽 지쳐있었다. 몇 년 새 측은할 정도로 부쩍 늙은 데다 이도 많이 부실해지고 몸 여기저기가 삐거덕대는 상태였다. 눈부신 캘리포니아 날씨에 흥분하면서도 이를 충분히 즐길 여건이 되지 않았다. 전에도 봄이면 알레르기로 고전했지만 이번엔 정도가 더 심했다. 면역 시스템이 전반적으로 약화된 때문인가. 꽃가루에 거부반응을 일으키며 알레르기가 극성을 부려 호흡곤란이 왔다. 저항력을 강화시키는 운동이나 생활습관 바꾸는 일도 시급하나, 일단 주치의부터 정해 서둘러 병원을 찾았다. 혈압 재고 말 몇 마디 나눈 후 처방받은 게 전부인데 진료비 청구액은 189불이었다. 초진이어서인지 원래는 300불이나 두어 가지 마이너스된 항목이 있음에도 밸런스 총액이 그만큼이나 나왔다.




안 그래도 건강에 대한 총체적 점검이 필요했던 시기다. 메디케어 가지고는 커버되는 범위고 어차피 한국 다녀올 일도 있으므로 한국 가서 한꺼번에 해결키로 했다. 건강검진도 받아보고 이 치료도 할 겸 바삐 출국을 했다. 인터넷을 검색하자 한국 의료보험 살리는 길도 있다 해서 옳다고나 했다. 그러나 막상 현지에 가서 알아본 결과 3개월 이상 체류 시만 가능한 일이었다. 아들 친구의 치과를 찾아 진찰을 받아보니 상한 이가 워낙 많아 달포나 걸리는 보수에 총 수리비(?)는 백오십만 원, 만일 의료보험이 적용된다면 삼십만 원이라 했다. 우리 둘 다 잇몸에 나사를 박아야 하는 임플란트는 마다하는 터라 순수하게 치료하고 보수받는 비용이다. 미국에선 어금니 하나 뽑는데도 이백불인데 이 정도는 감지덕지다. 역시나 한국 의료비는 저렴한 편, 그럼에도 의술은 무척 우수하다고 알려져 있다.




큰 부담도 아니니 떳떳하게 치료받기로 하고 우선 칠십만 원의 예약금부터 지불, 요셉은 현재 치과 치료에 들어간 상태다. 치과 다니는 중간에 안과를 찾아 다초점 렌즈로도 바꿨다. 곧 내과에 들러 종합검진받을 예정으로, 여러 면에서 미국 메디케어로 받는 혜택 이상의 장점이 많다고 그는 흡족해한다. 가뜩이나 위축되기 십상인 병원 방문인데 우선 안정감이 들고 무엇보다 의사소통이 원활해서도 좋다고. 그간 일부 교민들이 모국 방문길에 편법을 이용, 저가의 의료 서비스를 그마저 무료로 받는 얌체 불법행위가 빈번해 한국에서 원성 자자하다고 들었다. 그 때문인지 요즘은 의료보험증과 주민등록증을 대조하는 등 본인확인 절차가 한층 강화되었다 한다. 여기서 근원 된 걸까? 모국으로 리턴하는 교민에 대한 부정적 견해도 많은 모양이다. 마치 덕이라도 보려고 오는가 싶어 경계를 하나 그들은 오히려 소비의 주체들이다. 한국에 피해를 끼치기는커녕 국에서 여생을 보내며 미국에서 벌어둔 돈을 쓰러 오는 사람들이다.  




단순히 건강검진만을 받는 교민의 경우, 요즘은 종합병원과 의료협약을 맺고 할인된 가격으로 종합검진을 받을 수 있는 다양한 시스템도 가동 중이다. 검진 절차나 비용과 서비스 면에서 편리한 혜택을 누릴 수 있는 한국 의료관광 상품도 출시됐다. 만약 위중한 병으로 수술을 받아야 한다거나 큰 병원을 찾을 일이 있다면 교민들을 위해 적법한 길도 열어놨다. 석 달 이상 체류할 작정을 하고 먼저 가까운 동네 행정센터(예전 동사무소)에서 주민등록(영주권자)을 살리거나, 관할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거소증(시민권자)을 발급받으면 된다. 그다음 재산 정도에 따라 부과되는 석 달 치 의료보험을 정산하면 재외 국민 누구라도 의료보험 혜택을 내국인과 똑같이 받을 수 있다. 이 점, 동질의 소속감을 갖게 하는 등 해외에서 고생한 재외 동포를 위한 모국의 배려겠다.




각자의 연륜만큼이나 오랜 기간 바다를 항해한 배는 여기저기 암초에 긁혀 상처 나고 파도에 녹슬어 당연히 선체가 약해져 있게 마련이다. 마침내 힘이 부쳐 더 이상 떠있지 못하고 시나브로 가라앉는 폐선이 되기 전, 낡은 배는 도크에 들어 전면 보수를 해야 한다. 바꾸거나 갈아야 할 부속은 교체하고 탈 난 곳은 고치고 외장 페인트칠도 새로 받아야 된다.  "심장은 뛰고 기력이 쇠하였으며, 내 눈의 빛도 흐려졌나이다.” (시편 38장 10절). 다윗의 탄식처럼 미국 오던 오십 대까지만 해도 자신했던 건강체인데 나이 들어갈수록 표 나게 체력 떨어지는 걸 느끼겠다. 팔구십도 아니면서 나이 이길 장사 없다는 나이 타령하기엔 아직 이르나 그 속담이 차츰 실감 나며 건강채널을 찾게 되는 작금이다.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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