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량화 Jun 27. 2024

장마에 찾은 혼인지 수국 명소

초여름에 접어들자 장마가 시작된다는 예보만 계속 떴다.


수국꽃 피면 장마가 온다는 신호라고도 했다.


지금 제주는 어디 가나 탐스러운 수국꽃 지천으로 피었다.

그래서인지 한라산은 비구름 속으로 잠적했고 안개 부옇게 몰려다니는 도시는 유적처럼 낯설다.


곧 빗줄기 쏟아내려고 잔뜩 폼 잡은 하늘을 쳐다보다가 혼인지나 다녀오자 싶었다.

삼성혈 다녀왔으니 다시 한번 혼인지에 들러서 신방굴을 봐야겠다 하던 차였다.

혼인지 수국이 진작에 한창이라는 소식을 들은 바 있으니 도랑치고 가재나 잡아 볼까.

수국은 이미 물리도록 봤으니 꽃에 대한 기대는 별로 하지 않았다.




혼인지에 있다는 굴, 그것도 신방굴이라니?


탐라국을 개국한 세 신인이 수렵생활을 하며 지내던 어느 날, ㅂ한라산에 올라가 멀리 동쪽 바다를 바라보았다.

지금의 성산읍 온평리 바닷가에 자주색 흙으로 봉한 목함(木函)이 파도를 따라 올라오고 있었다.

세 신인들이 한라산을 단숨에 내달려 동으로 가 목함을 열자 그 안에 알 모양으로 된 둥근 옥함(玉函)이 있었다.

옥함을 연즉 청의(靑衣)를 입은 자색 출중한 공주 세 사람이 단정히 앉아 있는 게 아닌가.

“이는 틀림없이 하늘에서 우리에게 내려주신 선물이다” 하며 세 신인은 무척 기뻐하였다.

동해 벽랑국(碧浪國)에서 온 세 공주는 그 아버지인 왕이 서쪽 바다를 바라보다가 상서로운 빛 영롱한 명산에 三神人이 강림하는 걸 봤다고.

장차 나라를 세우고자 하나 그들에게는 배필이 없음으로 세 공주를 보내 예식 갖추고 대업 이루도록 하라는 명을 세 쌍의 남녀는 그대로 따랐다.

목욕재계하여 하늘에 고하고 각기 혼인하여 연못 옆 동굴에서 신방을 차리고 부부가 되니 비로소 인간으로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삼신인이 목욕한 연못을 혼인지(婚姻池)라 하며 신방 꾸몄던 굴을 신방굴이라 부르는데 하나의 동굴 같으나 곁가지친 세 개의 굴도 남아 있다.

세 쌍의 부부가 각각 정주할 생활터를 마련해 도읍을 정하기로 하고 한라산 중턱에 올라가서 거주지를 선택하는 활을 쏘아 제주를 삼분하였다.

그렇게 제1도와 제2도와 제3도로 정하여 오곡을 심고 우마를 길러 촌락 이뤄 자손이 번성하여 탐라국의 기초를 닦았다고.

이후 수천 년간 탐라국으로의 왕국을 유지하다가 고려 시대에 합병이 되었다는데.

올해는 기후 변화 때문인지 꽃철이 빨라 물의 꽃 수국은 이미 한물간 요즘인데 장마란다.

혼인지 입구에서부터 물빛 수국이 풍성하게 피어있었다.

온데 여기저기 수국 천지인 혼인지.

연못가에도 주변 탐방로에도 신방굴 앞에도 삼공주 추원사 인근에도 수국꽃 탐스러이  흐드러졌다.

어느 위치에서 봐도 멋진 포토존, 근사한 정경이나 곧 지루하게 이어질 장맛비에 고개 숙인 채 시들고 말 수국꽃.

수국 한철은 장마의 시작과 함께 접혀지겠다.

지는 꽃 아까워 사진에 거푸거푸 담았다.

날씨 흐려서인지 탐방객 거의 없는 혼인지라 전세 낸 듯 완전 독무대 차지하고 연신 사진을 찍었다.

이제 돌아갈 시간이 될 즈음, 빗방울 선득하게 얼굴에서 느껴졌다.

구름장 무겁던 하늘에서는 하나둘 비꽃 휘날리기 시작했다.


서귀포시 성산읍 온평리 1693

작가의 이전글 애달파라, 동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