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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Jun 28. 2024

다시 한국인으로

2020년 들어 미국시민에서 한국국민으로 신분변경 하여 명실상부 한국인이 됐답니다.

그 점 아무런 흥미나 관심도 없고 별로 알고 싶지 않은 분은 그냥 통과하시고요.

혹시 나이 들며 수구초심에 따른 귀소 욕구가 일면서 앞으로의 거취문제 내심 염두에 두고 있었던 교민분만 읽어주세요.

65세 이상자는 복수국적이 허용되면서부터 아마 전보다는 더 많은 분들이 귀 솔깃하니 이 문제 관심 갖게 되지 않았나 싶은데요.

실제로 제 경우만 해도 그랬답니다.

저지난해 시월, 오 년 만에 한국행 비행기를 탔을 때까지만 해도 한국에서 살리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거든요.

말하자면 진작부터 심각하게 고민하며 논의됐던 주제, 역이민 문제를 두고 갈등 겪었던 건 절대 아니란 겁니다.

언젠가 블로그에도 썼다시피 전 여하한 환경 혹은 여건들 개의치 않기에 미국도 좋고 한국도 좋고, 어디가 특별히 나쁘다거나 싫은 건 아니었어요.

한국에 살고 있는 아들, 반면 딸은 미국에서 지내기 때문에 어느 한 곳을 꼭 집어 호, 불호 지역으로 규정해 여긴 또는 저긴 뭐가 안 좋느니 따위 불평이 많은 자체가 보기 좋지 않구요.

아무튼 미국살이 스무 해가 되어감에도 영어 능숙지 못하나 사는데 별 불편 모르고 미국에서 잘 지내왔네요.

더구나 완벽하다는 미국 사회보장제도 '요람에서 무덤까지'그늘 덕으로 맘 편히 노후생활을 쾌적하게 즐길 수 있을 터라 아무것도 아쉬운 건 없겠지요.

몇 년 전 시민권 선서 후 올린 포스팅에서도 그런즉 미국과 한국 어디나 다 지내기 좋은 곳이며 살만하다 했답니다.


모처럼 한국에 나오니 은퇴생활 즐기는 언니 내외가 여러 곳을 안내해 주는 덕택에 여행을 무척 많이 다녔습니다.

한 달에 걸쳐 강원도와 충청도 일대를 거의 섭렵하다시피 했는데 그때 접한 울울창창한 숲에 무척 매료됐었지요.

왜 아니겠어요, 한참 산림녹화사업이 열기를 더하던 때인 우리 학창 시절엔 할당된 풀씨를 채집해다 학교에 내야 했고 방과 후엔 소나무를 병들게 하는 송충이 잡는 일에 동원되기도 했으니까요.

그 생각이 겹치며 짙푸른 숲이 한없이 경이로웠는 데다가, 그간 캘리포니아 사막지대의 눗누런 산야만 보던 눈에 여간 신선한 충격이었어야지요.

숲이 참 보기 좋네, 너무 좋네,를 연발하는 내게 언니가 그러더군요.

그리 좋으면 한국 와서 살면 되잖니?라고요.

이제 네 나이도 있고 앞으로 해봐야 오 년 정도나 하고 싶은 일도 해보고 놀러 다닐 수도 있으니 지금이 마지막 찬스인 셈이야,라는 말이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약간 마음의 동요가 이는 중에 아들이 어느 날 차분한 어투로 한마디를 남겼습니다.

부모님이 먼 외국에서 사시다가 무슨 일을 당하게 된다면 두고두고 회한으로 남을 겁니다.

무슨 일이란, 에둘러하는 말이지만 나이 들수록 가까워지는 이 세상 소풍 끝나는 날 아니겠어요.

아들의 그 말이 심장 한가운데 와 박히면서 이러다간 자칫 자식에게 풀길 없는 깊은 한을 남겨주겠구나 싶더군요.

순간 단박에 결정을 내렸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오자구요.

몇 년 전부터 자주 아들이 그랬습니다, 이제 연세 그만하니 굳이 거기서 지내지 마시고 한국으로 들어오시지요.

귓등으로만 들었던 그 말이 보다 구체적인 형태를 갖추면서 비로소 무슨 소린지 속뜻 제대로 읽혀지더라구요.

 

일단 왕복 비행기표가 정해준 날짜 맞춰 미국에 돌아가 남편과 진지하게 역이민에 대해 의논을 했지요. 요셉은 정치 꼬라지 보면 혈압 오른다며 귀국을 극구 마다하더군요. 일단 저부터 나가서 살아보라는 의견에 따라 시민권 증서 원본을 가지고 국적회복신청을 하려 11월 18일 다시 한국으로 왔지요.

제일 먼저 할 일은, 임시 거주지(체류지)가 있는 관할 출입국관리사무소(출장소도 무관)에 가서 국적상실 신고부터 해야했는데요.

미국 시민권 취득에 따라 한국 국적이 자동적으로 완전 말소되는 게 아니기에 국적상실 신고를 별도로 했어야 하나, 굳이 해야 할 필요성을 못 느끼는 데다 의무사항이나 강제성도 없어 대개가 그 신고를 하지 않더라구요.  

막상 국적회복절차를 밟으려니 모든 서류가 정상적 단계대로 건너뜀 없이 정리, 일단 기본서류부터 잘 바뤄놓은 다음에 하게 돼있어서 다음과 같은 구비서류를 갖춰 국적상실 신고 먼저 했습니다.

- 가족관계 기록사항에 관한 증명서(구청에서 발급)

- 국적상실의 원인 및 연월일을 증명하는 서류(외국국적을 취득하였을 때에는 그 국적을 취득한 원인 및 연월일을증명하는 서류: 출입국사무소에 서식 비치돼 있음)

- 외국여권 및 사본

또한 그 자리에서 외국인으로 한국에서 지내는 동안 필요한 거소증 신청을 했는데 필요한 서류는 아래와 같았습니다.  

-여권

 -천연색 사진(3.5㎝ X 4.5㎝) 2매

 -거소신고(신청) 서(별지 제1호 서식)

 -시민권 증서(외국 국적 취득일을 확인할 수 있는 서류)

 -가족관계증명서 또는 국적상실로 제적된 제적등본 (3개월 내 발급된 것)

 -(호적 미정 리자 : 국적상실 신고증명, 호적상 이름과 외국 여권의 이름이 바뀐 경우 : 본국 관공서나 주한 자국 대사관의 확인 공증서나 혼인으로 바뀐 경우 결혼 증명서)

- 수수료 3만 원: 인지를 샀습니다.

그로부터 약 2주 정도를 기다린 12월 12일 거소증이 나왔다는 문자가 폰에 찍혀졌더라구요.

거소증을 받아 들고 12월 13일 소정서류를 준비해서 제 경우 본청인 양주 출입국사무소에 가 국적회복신청서를 접수시켰어요. (이 일만은 대행 불가, 본인 직접 신청 접수)

*국적회복허가 신청 시 구비물

-컬러사진(4㎝×5㎝) 1매

-국적회복진술서

-신원진술서 1부 작성, 1부 복사(사진부착)

-여권 사본 1부

-기본증명서 또는 제적등본(신청인이 국민이었거나 국적취득 사실이 등재된 서류를 구청에서 발급받아)  

- 주민등록등본(본인의 말소자 등본) 자신의 주소지를 SSA에 정확히 알리기, 기타 본인이 대한민국의 국민이었던 사실을 증빙하는 서류

-외국국적 취득(한국적 상실) 원인 및 연월일을 증명하는 서류(귀화허가서, 시민증서 사본, 여권 등)

-만일 미국식으로 이름을 바꿨다면 성명변경증명서 원본 및 사본 1부

-가족관계통보서(대법원에 통보할 자필 통보서)

-수수료 : 인지대 20만 원

신청자에 대한 국적 회복 요건을 심사할 때는 관계 기관의 장에게 국적회복허가 신청자에 대한 신원조회, 범죄경력조회, 병적조회 또는 체류동향조사를 의뢰하여 정확히 문제점을 걸러내야 하므로 판정하는데 시일이 꽤 걸리나 보더군요.

이상과 같이 복잡하고 까다로운 국적회복 절차(대략 6개월 소요)가 종료되면 가족관계등록부상에 국적회복 처리가 되면서 한국국적을 회복하게 됩니다.

65세 이상자에 한해 복수국적이 허용되므로 미국국적을 포기하지 않고도요. 사실 별 의미는 없지만요.


저는 작년 12월 13일 서류 접수 후 올 5월 13일 국적회복허가 승인 결과를 알았으나 외국여행 중이라 2주 늦은 6월 초에야 국적증서 수여식 통보를 문자로 받았구요.

지난해 12월부터는 전과 달리 국적증서 수여식에 본인이 직접 참석해 국민선서 후 국적증서를 받게 하더라구요.

그간은 우편으로 국적허가 통지서를 받았는데, 그보다는 국적 취득자가 한국민으로서의 소속감과 자긍심을 갖게 하기 위해 법이 바뀐 거래요.

아무튼 행사 자리는 마치 미국 시민권 수여식장과 비슷해, 애국가를 부르고 묵념을 하는 등 식순이나 절차가 매우 흡사했지요.

이때 잠깐 미시민권 수여식하면서 전 국적을 포기한다는 선서를 한 생각이 나서 속이 뜨끔, 영 민망하더군요.

물론 이중이라는 단어 자체가 부정적 이미지를 풍기듯 양손에 떡을 쥐지 말고 하나를 택했으면 하나는 버리는 게 합당한 일이지만 필히 그럴 까닭도 없구요.

그러나 권리만 취하고 의무는 등한시하겠다는 파렴치행위는 추호도 할 생각 없으며, 그럴 수준으로 추락하지도 않았으니까요.  

강당에서 식이 끝나자 곧바로 출입국사무실로 건너가 외국국적 불행사 서약서를 작성 제출했습니다.

귀가 후 그러고도 더 기다려 2주 지나 관계기관에서 확인절차가 통과된 서약서를 등기우편으로 보내왔더라구요.

다음 단계로 외국국적 불행사서약 확인서와 기본 증명서, 주민등록용 사진 (3X4) 2매 지참하고 행정센터(구 읍 면 동사무소)를 방문해 주민등록 신고를 하고 나서 거소증은 반납했구요.

주민등록 신고를 한 지 2주 지나자 새로 발급된 주민등록증을 드디어 발급받았네요.

주민등록증이 나오며 고유의 주민등록번호를 부여받음에 따라 동시에 의료보험도 아들 통해 가입하게 되었구요.

새 주민등록증을 받았으니 이번엔 시군 여권과에 가서 한국여권 신청을 하자 일주일 만에 새 여권을 소지할 수 있게 되었답니다.

한국여권 파워가 세계 5위 권일 정도로 막강해서는 아니지만 이제 중국여행 가더라도 고액의 비자 비용을 치르지 않아 좋네요.

제 이름으로 전화가입, 통장개설도 가능하고 전철이나 고궁 무료입장 등의 여러 수혜를 받게 되지만 이 사회에 전혀 기여한 것이 없는 바 아니니 그리 눈총 살 일은 아니라고 감히 자신합니다.

무엇보다 말이 자재로운 한국에서 이제는 명실상부한 한국인으로 아무 불편 없이 생활할 수 있게 되어 기쁩니다.

혼미한 정국에다 북핵이라는 변수가 도사려 미래가 불확실한 한국이지만 여기는 내 나라, 더구나 아들이 살고 있는 나라이기에 지나친 걱정은 안 하렵니다.

위험하기로 말하자면 미국을 비롯 세상 어디인들 확실한 안전지대가 있겠는지요.

남편과 딸이 사는 미국에 가더라도 미국시민권은 여전히 살아있으니 상황 또는 필요에 따라 무리 없이 양국을 왔다 갔다 하며 지낼 수도 있는거구요.

회색인이니 양다리 걸치기라 핀잔 들을 까닭이 없는 게, 국가 간에 그만한 신뢰와 확신감이 있기에 그런 제도를 수용한 거겠지요.(국적 수여식 자리에서 보니 일본, 중국 등의 경우 원천적으로 이중국적이 인정 안돼 자신의 본국 국적을 포기하더라구요.)

교민마다 처한 입장이나 여건이 다르고 무엇보다 자제들 다 미국에서 자리를 잡았기에 구태여 역이민까지 할 이유야 없겠지만요.

다만 망향의 정이 깊거나 수구초심으로 잠 못 이룰 정도라면 서울사람들 퇴직 후 전원생활 꿈꾸며 낙향을 하듯이 한국으로의 리턴도 고려해 볼 만한 여지는 충분하다고 봅니다.  

단, 한국사회는 미국보다 더 빠르게 변모해 60~80년대 사고방식은 이미 골동품으로 격하되어 있으니 아직도 의식이 그 자리에서 맴도는 분들은 가급적 역이민 지양하는 게 정신건강에 훨씬 도움이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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