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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방폭포 물길이 시작된 곳
by
무량화
Aug 7. 2024
아래로
서귀포 각 명소를 시작으로 하영 올레길 여기저기를 걷다 보니 대강 시내 지형이 가늠되었다.
정방폭포는 거처에서도 가까워 그 인근을 아래위로 샅샅이 훑다시피 해온 터.
폭포로 내리 꽂히기 직전의 물길을 서복전시관 뒤편 다리에서 바라보다가 무뚝 그 시원(始原)이 궁금해졌다.
인터넷 검색 끝이 답사에 나선 첫날, 지장샘 반경에서 이리저리 헤매다가 더 이상 나아가질 못했다.
중산간동로 남쪽 홍로촌에 있는 가시머리물·산짓물·지장천 모이고 모여 서귀포시 도심 가로질러 정모시로 해서 이윽고 정방폭포로 돌진하게 된다는데.
산지물에서 북동방향으로 약간 떨어진 지장샘에 이르기 전, 미나리밭 둑길을 따라가면 가시머리물이 암반 틈에서 솟는다 했으나 가시머리물은 가늠이 어려웠다.
산지천 상류에 ‘가시머리물’이 있다 했는데 도무지 오리무중.
하천 벼랑 측벽에서 산물(용천수)이 솟아나 하천으로 유입되는 동홍동의 명소가 산지물이다.
동홍지(東烘誌)에 따르면 산지물은 장마 때 천둥 치고 난 후에 불현듯 물구멍이 터져 용천수 솟구치며 소(沼)를 이뤘다고.
동홍지(東烘誌)에 따르면 산지물은 장마 때 천둥 치고 난 후에 불현듯 물구멍이 터져 용천수 솟구치며 소(沼)를 이뤘다고.
허나 안내판도 없고 동네 사람에게 물어도 모른다고 해 실컷 발품 팔며 헤매기만 했다.
그 대신 제주감귤 시원지인 '면형의 집'을 휘돌아 마을길 얼마쯤 올라가서 '지장샘'을 만났다.
천주교 피정의 집인 면형의 집은 애초엔 홍로 본당(성당)이라 이름했듯 이 동네는 ‘홍로촌’이라 불렸다.
홍로촌은 매우 오래전에 촌락이 형성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일제강점기 때 동홍동·서홍동으로 분리됐다.
지장샘은 1987년 한국자연보호협회가 선정한 '한국의 명수 100곳' 중 한 곳으로 선정된 바 있다.
그러하듯 물맛 좋은 용천수로 널리 알려졌으며 오랜 세월 현주민들의 식수였다.
물이 맑고 시원한 데다 아무리 가뭄이 들거나 큰 비가 내려도 그 양이 항상 그대로 유지된다니 명수(明水)는 명수겠다.
지장샘 자리엔 물이 솟는 곳을 보호하고자 전각을 세우고 위에 기와지붕을 덮었다.
용천수 입구에는 ‘지장천(智藏泉)’이라는 표석과 함께 지장샘에 따른 전설을 기록한 판석이 세워져 있다.
지장샘과 달리 찾기 어려운 가시머리물은 일단 다음으로 접어두고 산짓물로 향했다.
중산간동로 남측 대로변에 산지물(산지천)이란 돌 표지석이 눈에 확 띄게 세워져 있었다.
하천 계곡에 있는 산물(용천수)인 산지물은 폭포도 아니면서 벼랑 측벽 곳곳에서 폭포같이 솟구쳐 나와 연못으로 떨어져 퍽 독특했다.
전설대로라면 겨울에는 큰딸이 친정인 제주시에 있는 산지천으로 가있어서 여름에나 물이 나온다더만 사철 폭포 줄기 힘찼다.
이 산물은 상수도가 보급되기 전까지만 해도 물이 솟는 상층은 식수로, 아래쪽은 목욕물로 사용한 동홍마을의 보배였다고.
지금은 근처에 반듯한 수영장이 만들어져 아파트 아이들이 여름철이면 몰려와 시원하게 물놀이를 즐긴다.
결국 아래위 동네를 누비고 다녔지만 첫날은 가시머리물을 찾지 못했다.
두 번째까지도 마을 사람에게 물으니 지장샘 마씸? 되물을 뿐 가시머리물을 아는 이는 전무했다.
새로 잘 지은 집이 아닌 동네 유래를 알만한 납작한 돌담집에 들어가도 이미 옛사람은 떠나고 대부분 육지 사람들이 살았다.
아예 그런 얘기 금시초문이라고도 했으며 어디선가 물이 나온다는 소리를 들어봤다는 이가 드물게 어쩌다 있었다.
지장천과 400미터쯤 떨어져 있다는 기록이 있기에 심지어 가시머리 동산 근처에서 물어봐도 모른다는데야...
폰으로 다시 검색해 봐도 엉뚱하게 대관령에 있다는 가시머리식당이나 나왔다.
하릴없이 되돌아오며 양편으로 밀감 밭 빼곡히 들이찬 길을 전설 따라 삼천리 이바구 풀어가며 걸었다.
예로부터 금수강산이라 회자되던 산자수명한 이 땅은 섬나라 왜국에서만 넘본 게 아니다.
중국 진시황이 보낸 서복 일행은 해동으로 불로초를 찾아 나섰다.
그 서복이 들른 삼신산 중 영주산이 바로 한라산이라는 말은 진작에 들었던 터다.
진나라는 BC 200년대이므로 우리나라는 당시 삼국시대에 해당되는 시기였다.
그 후 중국 송나라 때 호종단(胡宗旦)이라는 지관을 보내 제주의 명당을 없앴다는 이야기도 곳곳에서 만나게 된다.
고려 예종 때, 송나라에서는 고려의 지세가 특이함을 간파해 장차 걸출한 인물이 나타나 자국을 위협할까 겁냈다.
산방산 앞 용머리 전설에 따르면, 용이 승천하는 날 천하를 통일할 장군이 태어난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이를 두려워한 중국에서 호종단을 보내 용머리의 혈 자리를 끊어버리라고 했으니, 일제의 대못 사건 훠얼씬 전의 일이다.
지관이 용머리를 칼로 쳐내자 그 자리에서 피가 흘러내리며 산방산이 며칠간 울었다고 전한다.
무릇 모든 죄는 때가 차매 벌로 응징되는 법.
한라 산신이 매로 변신해 그를 처단하니, 끝내 지관이 탄 배는 귀국길에 차귀도 매바위 앞에서 침몰됐다고.
그때 지관은 용머리 혈자리 외 물혈 한 곳을 차단시키라는 미션도 들고 왔었다.
용머리뿐만이 아니고 명당의 혈자리는 물혈(水穴)에도 해당된다.
'꼬부랑 낭 아래 행기물’가에서 겨드랑이에 날개 달린 아기장수가 태어나리라는 예언에 따라서였다.
구부러진 나무 밑의 놋그릇 물이라니?
밭을 갈고 있던 한 농부에게 하얀 노인이 나타나 쫓기는 몸이니 잠시 숨겨줄 것을 부탁해 쉐질매(소길마) 밑에다 감춰줬다.
길마는 소 등에 얹어 짐을 싣는 안장으로 곡선처럼 구부러져 있다.
잠시 후 당도한 풍수쟁이가 ‘꼬부랑 낭 아래 행기물’을 아느냐고 급하게 물었다.
농부는 모른다고 고개를 흔들었고 호종단은 그 자리를 떠났다.
그가 돌아간 후 쉐질매를 들어내자 백발노인은 간 데 없고 한 그릇의 헹기물이 놓여 있었다.
농부가 헹기물을 그 자리에 붓자 계속해서 맑은 물이 솟아나 지장새미가 되었다니 곧 신선이 선물한 지장샘 아니랴.
지장새미의 수호신은 그렇게 명운이 지켜져 수도가 보급되기 전까지 홍로 마을의 마르지 않는 샘이 되었다.
물론 지금도 퐁퐁 솟는 용천수 넘쳐나 맑은 물꼬 따라 버들치인지 쉬리인지 어름치인지 참한 물고기 노닌다.
답사에 나선
셋째 날,
막다른 골목 앞에 허름한 간판 공장 문이 열려있기에 안으로 들어섰더니 화공약품 냄새가 독하게 확 풍겼다.
동남아 인부는 아니나 청년이 동네 내력을 어찌 알까 하면서도 혹시나 가시머리물이 어딘지 아느냐고 물었다.
선풍기 앞에서 작업 중이던 젊은이가 밖으로 나와, 어릴 적 여름철에 등목 하던 곳이라며 손가락질로 방향을 짚어줬다.
지장샘 못미처 오른쪽으로 나있는 행길을 타고 죽 올라가면 산자락에 가시머리물이 있노라고 상세히
설명해 줬다.
고마워요! 페인트 내가 심하니 실내 환기
자주 시키세요, 노파심으로 덧붙이자 착실하게 생긴 젊은이는 본드 때문이라며 머리를 긁적였다.
한창때 저마다 하는 일 달라도 어느 업종인들 쉬운 일이 어디 있으랴.
생존을 위해 자신의
영과
혼 시간을
갈아 넣으며
살아가는 인생사, 생각사록 너나없이 연민
깊어질 밖에
.
이제 가시머리물 찾는 지도가 확실히 입력돼 있으므로 이미 찾은 거나 진배없어졌다.
몇 번 헛수고 끝에 어렵사리 그물 안에 든 고기를 눈앞에 뒀으니 여유작작 골목길을
걸어 올라갔다.
지장
샘물 맑게
흘러내리는 물꼬에 송사리는 아니고 어름치처럼 몸피 투명한 물고기가 떼 지어 몰려다녔다.
그
유적(幽寂)한 경지에 한참을 빠져있다가 신기해서
동영상에도
담아두었다.
이윽고 다시 몇 걸음 내려와
가시머리물과 이어지는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층계 양편으로 밀감 밭이 빼곡히 들이차
있었고 돌돌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가시머리 동산 언덕길로 몇 걸음 들어서자 맑은 물길이 나타났다.
전에는 미나리밭이었다지만 지금은 온통 귤 밭인 조붓한 길을 따라 가시머리물터 가까이 이를수록 발밑으로 콸콸 흘러가는 물소리 기운차게 들렸다.
겨우겨우 가시머리물에 닿았을 때, 시작은 미약하나 그 끝은 창대하리라고 한 말이 순간 떠올랐다.
동산 아랫녘 작은 바위 틈새에서 흘러나오는 용천수는 얼핏 보면 수량
보잘것없었으나
기세만은 예사롭지 않았
다.
하지만 사실은
수자원 보호구역이라는 가시머리물 안내판이 없었다면
그냥 흘려버릴 정도로 출발점은 그렇듯 미미했다.
가시머리물이 작은 또랑 타고 웅덩이에 고였다가 시멘트 물길을 따라 아래로 흘러내릴 때는 물소리 청량하고도 힘찼다.
포장도로 아래로 물길 흘러 흘러 가시머리물은
인근 지장천과 한라산 백록담 및 당해오름샘이 발원지인 산짓물 합류해 동홍천을 이룬다.
더러는 건천으로 숨기도 하면서 지하와 지상으로 맥을 이어오다가 용천수 샘솟는 정모시에서 큰 물 되어 흐르게 된다.
정방폭포로 수직낙하하기 직전의 평화로움 잠깐 즐기고 곧이어 미련 없이
투신해 바다와 하나 되는 물.
그 물의 원 줄기를 찾으려 세 번 걸음을 한끝에 이루어진 만남이다.
하루 일삼아서 동홍천 시작점인 가시머리물부터 산지물과 정모시에서 정방폭포까지 물길 따라
걸어보았다.
그 이전, 한라산 기운찬 맥을 이어받은 남측 백록샘(해발 1.700미터)과 방애오름샘(해발 1600미터)에서 발원했다는
산지물 물길인 돈내코 코스 답사는 훗날을 기약하기로 하고.
서귀포 원도심에서 우러르면
규모
웅장한 한라산 품섶
서산벌른내와 산벌른내를 거쳐
솔오름인
미악산을 끼고 물길
연면히 이어지면서, 혹간 땅에 잦아들기도 하며 숨바꼭질했으리라.
산지물 물길 따라 굴왓교- 고망돌교- 열린병원으로 이어진 1.5킬로 거리의 동홍천 힐링길을 시나브로 걸었다.
장마 때 무섭게 흐르던 동홍천, 천변에는 먼나무 줄지어 제철을 기다리고 서있었으며 수국 포기 소담스러웠다.
귤밭과 야자수며 상록수림이 장벽처럼 둘러선 길가 빈터에 가자니아 꽃 환하게 피어 있었다.
새로 조성된 황토흙길 잠시 걸어보고 여기저기 주변 경관 구경도 하다 보니 어느새 힐링천은 끝이 났다.
동시에 물길은 잠시 번다한 주택 단지 아래로 파묻혔다.
잠시 후 다시 동홍천이 나타났으나 여태껏 과는 달리 물길이 우묵하게 파여 깊은 계곡을 이뤘다.
주공아파트와 무량정사가 동홍천 건너 저만치 보이고 완만한 경사로 따라 돌담길이 호젓하니 이어졌다.
높직한 돌담이 끝나는 곳에 규모 큰 정방사가 들앉아 있었다.
길가 좌측 으슥한 자리에 정방 펌프장은 돌아서 자리하였다.
왼편짝 깊게 팬 동홍천이 갑작스레 수량 풍부해져 남실남실 물빛 아주 투명하게 드러나 웬일인가 싶었다.
여기부터는 명칭이 바뀌어 정모시, 정방폭포 위의 수원지다.
정갈한 모습의 '정모시 쉼터' 전모가 길게 드러났다.
신 동국여지승람에 정방폭포는 정모연(正毛淵)이라 기록됐다더니 과연 정모시는 정방폭포 상류에 자리한 산물터였다.
사시사철 맑은 용천수가 곳곳에서 솟아 넉넉한 물길 이룬 정모시 쉼터공원.
징검다리와 나무다리로 연결된 정모시 양켠으로 벤치와 운동기구 편의시설이 잘 갖춰졌으며 조경도 짜임새 있게 잘 가꿔져 있었다.
특히 제주 자생종인 녹나무, 멀구슬나무, 담팔수 등 수형 단아한 나무들이 짙푸르게 숲 이뤄 경관 멋졌다.
올 들어 산림청이 '아름다운 도시숲 50선'으로 선정할 만큼 정모시 숲은 훌륭한 풍치를 이뤘다
한여름 나무그늘 짙은 이 쉼터에 와서 차가운 물에 발 담그고 책 펼쳐 들면 최고의 피서법 될 듯.
그만큼 육안으로 보기에 수질 깨끗하고 주변 관리가 잘 돼있는 쾌적한 쉼터였다.
정모시 하류로 내려와 높다란 다리 아래로 난 징검다리 건너 배롱나무꽃 피어있는 언덕 오르니
,
어라~ 불로초 공원이잖아.
거창하게 지은 서복전시관 부속 후원 격인 약초원이라나 뭐라나 암튼 이름이 불로초공원이다.
도대체 어떤 작자가 정방폭포 이 절경지에 하필이면 왜 서복이란 중국할배 기리는 이딴 걸 만들었지?
이 근처에 처음 들어와 보고는 그때도 빈정 확 상하고 심히 의아스러웠다.
두드러진 중국풍에 안 그래도 거부감이 들며 불쾌했던 서복 전시관이다.
아까운 세금 들여 서귀포
랜드마크인
명소에다 몰상식하게 이런 시설물을 들인 탁상공론 책임자는 대체 누구?
공사비 물경 백억이나 들었다는데 중국에서 사업비 전액을 댄 거 아니냐고, 오죽 기가 차면 해설사에게 물어봤을까.
중국몽에 흠씬 빠져
중국 자본에 아부하려는 치사함인지, 굴종적인 문화사대주의인지 암튼 정말 꼴불견인 서복전시관이며 불로초 공원이다.
이 공원 담장을 벗어나면 곧장 단단한 돌다리가 기다리는데 거기서 몇 발짝만 내려가면 바로 정방폭포 낙하지점이 된다.
기릴 게 따로 있지, 여기다가 서복전시관을 짓다니 정신머리가 있어? 없어? 엉!
괜히 다리 앞에 선 거만스러운 석상에 눈 흘겨가며 정방폭포 쪽으로 내려갔다.
서복이 정방폭포 이마에 '왔다 가노라' 새겨놓았다는 석벽의 글씨체 뭉개려는 듯 폭포수는 오늘도 세차게 물줄기 냅다 내리꽂았다.
한라산 남녘에서 발원해 힘껏 치달려 왔다.
단숨에 바다로 직진해 내리꽂는 정방폭포.
장쾌하다.
한 점 주저함도 없는
한 치 망설임도 없는
일 획 흐트러짐 없는
확신에 찬 담대한 투신이다.
거침없이 낙화하는 물방울의 집단 춤사위.
일사불란하면서도 자유롭다.
볼수록 황홀하게 매료되는가 하면
연타로 내뻗는 KO 펀치이듯 통쾌무비 그 자체다.
일상에서 쌓였던 크고 작은 스트레스,
해묵은 체증 툭 무너져 후련히 내려간다.
가슴속 앙금 있어 슬몃 쓸어내린 적 있다면
모름지기 누구라도 한번은 정방폭포 앞에 서 볼 일이다.
폭포 하얗게 가루져 휘날리는 물보라에 젖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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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희 지나니 만사 여유작작, 편안해서 좋다. 걷고 또 걸어다니며 바람 스치고 풀꽃 만나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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