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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 손 드세요, 염제님
by
무량화
Aug 7.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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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자 달력 날짜 옆에 작은 글씨가 쓰여있다.
자세히 딜다보니 입추라 적혀 있다.
이 아니
반가울쏜가.
굿바이! 타오르던 폭염도 머잖아 안녕이다.
정말이지 올여름은 유달스레 푹푹 쪘다.
이처럼 더위를 심하게 느껴보긴 난생 첨이다.
밤낮도 없었으며 새벽시간대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사우나장이 따로 없었다.
살다 살다 이리 무지막지한 무더위는 처음.
오늘도 최고 34도, 최저 29도.
체감온도는 35도를 넘어서기 일쑤다.
그렇듯 날마다 숨이 턱턱 막히는 염제의 횡포 여간 아니었다.
건습 사우나장이 따로 없었다.
에어컨은 물론 선풍기 바람도 내켜하지 않는 편으로 체질상 더위를 별로 타지 않던 사람이다.
그러나 올여름은 도리없이 에어컨을 가동하고도 하루 서너 번씩 찬물 샤워를 해댔다.
한증막더위라는
대구에서도
살아봤고 폭양 내리쬐는 캘리포니아에서도 살았다.
그러나 사정없이
볶아치는 이런 무자비한 압력솥 열감은 일찍이 겪어본 바가 없다.
냉방병 염려를 해야 할 정도로 스물네 시간 에어컨에 의지하지만 숨 턱턱 막히게 하는 열대야까지.
물론 아직 말복도
남아있기에 늦더위가 맹렬히 기승 부리겠지만 그래도 더위를 말끔 처분한다는 처서가 잇따른다.
그때쯤, 밤이 되면 선선한 바람도 일거라니 틀림없이 더위도 한풀 꺾일 터이다.
가늘 들머리라는 입추라서일까.
기분이 그럴싸해서인지
오늘은 바다 물빛도 좀 서늘해진 거 같다.
어릴 적 방학이 끝나갈 즈음이 바로 이맘때다.
늦여름 들어 찬바람 나며 피기 시작하는 무궁화 한창이고 코스모스 한들거리며 쓰르라미 자지러지고 고추잠자리
떼지어 난다.
아무렴, 땅에서는 귀뚜라미 등에 업혀오고 하늘에서는 뭉게구름 타고 온다는 처서도 곧이다.
시난고난
힘겨워하는 우리와 달리 이 무렵이면 이글대는 땡볕 아래 벼가 여물어간다니 폭염경보도 듣기 따라 경사로세.
8월 7일 오늘은 입추.
입추란 단어가 희망봉처럼 보인다
맞다, 어느새 절기는 가을 문턱에 닿아있다
.
암만 기갈 센 염제의 횡포인들 계절의 순환이야
어찌 거역하랴.
추어탕으로 더위에 지친 체력을 보강해 주라는데 방하잎 듬뿍 넣고 한 그릇 먹어둘까.
수밀도 껍질 벗겨 단물 한입 가득 물고서 보고 또 보고...
입추라 쓰여있는 달력 글씨가
그저 반갑고 고맙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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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위
입추
굿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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