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생은 요즘 들어 망고를 보면 눈물부터 글썽인다. 성격이 소탈하고 시원스런 그녀는 십수 년째 딸내미와 함께 한방클리닉을 운영한다. 대범해 보이는 그녀인데 점심 식사 후 과일을 먹기 좋게 깎아놔도 목이 메어 망고를 못 먹는다. 부모님 생각이 나서다. 보기와는 달리 마음결이 어찌나 연하고 약해빠진지 거의 유리 멘털 같다.
지난달 초, 정선생 부모님이 한국에서 딸을 보러 오셨다. 보름 머무는 동안 늘 바쁘게 지내는 딸이 그저 짠해 '쉬거라' 소리만 연발하시던 분들. 생전 설거지조차 안 시킨 딸인데 미국 와서 아침 일찍부터 밥 해 먹고 출근하는 딸이 안쓰럽기만 한 부모님 심곡이다. 이때껏 한 번도 딸 손으로 밥을 해본 적이 없는데 여기선 딸한테 밥상을 다 받아본다고 하셨다. 막내로 귀엽게만 키워서인지 부모 눈엔 아직도 철부지 얼라같은 모양이었다. 오십인데도 말이다. 비혼주의를 견지하며 싱글로 지내는 딸이 짠해 보이는 걸까.
두 분 다 연만 하신 까닭에 먼 데는 버거워 LA 인근 여행을 다니시다 하루는 우리집에도 들리셨다. 날씨가 더워 물냉면을 준비하고 그릴에 갈비를 구웠다. 식사를 마친 후 마침 제철인 체리와 복숭아 망고를 대접했더니 두 분은 아주 달게 드셨다. 그러면서 미국은 과일 값 채소 값이 무척 싸다며 이것저것 물가 비교를 하면서 풍요 넘치는 사회임을 체감하겠다 하셨다. 과연 한국 물가가 쎄긴 쎄 기본 식생활비 지출이 여기보다 더 나갈 거 같기는 했다.
이곳에 비해 확실히 한국은 식품 가격이 턱없이 높다. 특히 멀리서 수입해 오는 열대산 과일은 현저히 비싸다. 한국 농가에서 재배되는 일반 과일도 값이 장난 아니다. 수박 한 통에 2만 원, 멜론도 만 원은 예사로 넘는다고 한다. 작은 골드 망고가 개 당 몇 천 원씩 한다면서 여나믄 개들이 한 박스에 십 불도 안 되는 미국 망고라, 여기 있을 때 실컷 자시고 가겠다는 농을 하셨다. 체리도 무척 싱싱하니 맛있다며 돌아갈 때 마켓에 들리자고 하시길래 남은 체리를 씻어서 지퍼백에 담아드렸다.
언니와 친구가 왔을 때 마켓에 같이 들렀더니 식재료 가격이 전체적으로 착한 편이라 부럽기도 하고 놀랍다 하였다. 쇠고기의 경우 한우보다 더 부드럽고 육질 좋은 블랙 앵거스 현지 가격에 감탄, 이 정도면 고기 싫어서 안 먹으면 모를까 못 먹고살 사람 없겠다며 웃었다. 한국에서 카트에 필요한 거 좀 집어넣고 나면 십만 원 훌쩍 넘는데 거의 카트 가득 채우고도 오십 불 정도 나오니 거저 같다며 신기해했다. 언니네들도 여기 머무는 동안 싱싱한 오렌지와 망고 꽤나 사 날랐었다.
마음에 걸린다는 우리말 표현이 있다. 명치끝에 턱~ 무언가 걸린 듯 묵지그레하면서 아린 느낌. 잘해주지 못하고 떠나보낸 사람에게, 모처럼 만났다 헤어진 이에게, 미진함과 아쉬움이 남을 때 쓰곤 하는 말이다. 아무 데도 걸림이 없는 상태는 텅 비어있는 공(空)이므로 대자유의 높은 경지다. 그러나 뭔가가 걸린다면 편치 않다는 반증. 걸림돌이나 매듭, 장애물이 흉중에 남아있다는 얘기다. 평화로운 무애(無碍)의 경계에 다다르기 어려운 정선생의 그 저릿거림은 곧 천륜지정의 발로임에야. 그녀의 걸려 넘어짐조차 이쁘게 여겨진다.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