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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Jul 07. 2024

수애기로 행복 잠시, 뿔 났다

어제 오후였다.

유월부터 장마철에 접어든 제주, 날마다이다시피 비가 내렸다.

칠월 역시 하루도 번한 날이 없었다.

어제 아침녘만 해도 뿌옇게 안개 낀 기상도, 오후 들며 푸른 하늘이 보이기 시작했다.

모처럼의 이 호기를 놓칠쏘냐, 무작정 맨 먼저 온 차에 올라탔다.

차에서 행선지를 정해도 충분하니까.

서귀포에서는 동으로든 서로든 한라산을 넘든 아무 데를 가도 후회할 일은 없으므로.

색달해변? 대평포구? 산방산이나 용머리해안? 비양도가 보이는 금능해수욕장? 애월까지 가볼까?

문득 수애기가 보고 싶었다.

지난가을에 만난 뒤로 무심히 몇 달이 지나갔다.

아직도 여전히 그 바다에서 재롱부리며 놀고들 있을까?

어쩌다 소원해진 채 뜸하게 지낸 지 한참이라 기대 걸진 말고 일단 찾아가 보자.

한 시간쯤 달린 뒤 모슬포 지나 바다가 바로 대로변에 붙은 대정읍 일과 1리에서 차를 내렸다.

해안노을길에 포함돼 있는 영락리나 무릉리도 다 스팟으로 귀요미들 놀이터이긴 하지만 왠지 마음이 급했다.

작년까지만 해도 밋밋하던 해안로에 포인트 찍듯 서림연대가 우뚝 솟아있었다.

주변에 무성하게 자란 황근(노란 꽃이 피는 무궁화로 염생식물)이 흐드러지게 피어있었다.

그때 해무가 썰물처럼 밀려드는 바다에 뜬 하얀 돌고래투어 관광선 두 척이 보였다.

쏜살같이 해변으로 내려갔다.

배가 서서히 움직이고 있다는 건 수애기들이 나타났다는 신호였기 때문이다.

시커먼 현무암 울퉁불퉁 솟구친 해안이라 조심스레 반반한 바위 골라 딛으며 한 발짝이라도 더 앞으로 갔다.

파도가 달려와 바윗전에 냅다 부딪히며 하얀 비말 날려댔다.

만조 때인 듯 바닷물 그득했고 눅눅한 해무는 사방에서 습하게 차올랐다.

발치에 향기 해맑은 연보라 순비기꽃 척박한 환경 마다하지 않고 억척스레 피어난 걸 보면 제주 해녀가 자연 오버랩되는데.

두통 심한 잠수병에 특효인 약재이기도 하지만 잎을 비벼 귓속 막고 바다에 들어간다니 해녀와는 연이 깊은 그 나무가 주변에 지천으로 깔렸다.

해무 짙어 점차 흐려지는 시야, 그럴수록 오감을 다 일깨웠다.

안전한 바위에 올라서서 전방만을 주시하며 탐조등 밝히듯 바다 표면을 찬찬히 훑었다.

바로 그 순간 움직이는 몇 개의 물체를 확인했다.

차츰 거리가 가까워지자 수애기 등지느러미며 꼬리며 길쭘한 입 부분이 육안으로도 확실하게 잡혔다.

반갑다고 인사 차리는지 흰 물살 튕기며 점프도 여러 차례 선을 보였다.

남방큰돌고래는 이름처럼 큰 덩치가 아닌 데다 생김새도, 하는 짓도, 귀여워서 친근감이 절로 든다.

모처럼 찾아준 데 대한 감사 표시일까, 방해하지 않고 멀찍이서 지켜봐 줘 고맙다는 뜻일까.

재롱잔치하듯 묘기 선보이는 수애기들 동작에 시선 사로잡힌 채 싱그레 웃으며 넋을 놓고 말았다.

행복감에 취했던 건 아주 잠시, 금세 긴장 모드로 변하면서 이번엔 화통 터져 뿔이 나고 말았다.

서식지인 대정 앞바다 모슬포 방향으로 일사불란하게 전진하던 수애기들 대오가 갑자기 흩어졌던 것이다.

앞장서서 빠르게 혼자 내닫는가 하면 물속으로 아예 잠수해 버리기도 하고 오던 길로 돌아서서 내빼는 수애기까지 있었다.

엔진 소리 줄이고 조용히 다가오는 배의 기척에 놀라서다.

유독 소리파동에 민감한 수애기들이다

말이 좋아 야생돌고래 탐사선이지 수애기 스토킹하는 무뢰한에 다름 아닌 관광선.

자연사랑 환경보호 구호는 청사 액자 안에 박제시켜 두었나.

틀림없이 관계부처 어디선가 그들이 원하는 운항허가 도장을 찍어줬으렷다.

대관절 누구야?

안 그래도 바다 수온 상승으로 먹잇감 줄어들어, 버려진 어구류나 플라스틱 잘못 삼켜 비명횡사당하는 판이다

아래 유튜브 한 시간 십오 분 뒤로 돌려서 고래들의 현황 한번 보시라.

이왕이면 긴 시간 할애해서 처음부터 다 보면 더 좋겠고.

그리고 양심 지키며 바르게 사시길.


https://youtu.be/oM_M2j1Vt5k?si=-RlxKOuFYgVLgyo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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