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맣게 묻어두고 맘 편히 허리에 군살 오르는 소리나 들으며 뒷짐 지고 살리라 작정을 한다.
누가 강요한 일도, 그렇다고 짐 지워진 숙제도 아니다. 까짓것 없어도 그만이라 억지 오기를 부려본다.
나만이 제게 헌신하며 순정 바치길 바라다니. 천만에 나는 사양하겠어.
짐짓 토라져 모른척하면, 아예 기척 없이 아득히 사라질 것만 같은 그.
그러나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한층 더 간절해지는 그. 그는 어찌할 수 없는 애물이었다.
혼자만의 고요한 시각, 나지막이 부르면 어느덧 곁에 다가와 살 부비는 그였다.
절실한 목마름으로 아니면 선혈만큼 한 뜨거움으로 기다렸다는 듯이 안겨드는 그였다.
그는 나의 애타게 그리운 기다림의 대상으로 저만치 서있는 빛이자 그림자였다.
그보다는 안타까운, 가슴 저리도록 안타까운 연인이었다.
생각하면 그만큼 가슴 울렁이게 하는 것이 달리 있으랴. 아픈 듯 기쁜 듯 마구 느껍게 하는 것이 또 있으랴.
그는 꽃이다. 그는 햇살이다. 그는 별이고 구름이고 나아가 그는 외경스러운 신(神) 이러니.
그를 향하여 늘상 순연히 타오르는 불꽃.
부디 혼신의 열정으로 목숨 잦아들어 형체 바숴져도 좋으리니 맘껏 타오르거라.
무섭게 격렬한 불길 속에 한 알 사리 남길 수 있다면 타고 또 탄들 어떠리.
기다릴밖에 없었다. 태무심한 척하면서도 외골수로 줄기차게 그를 기다려왔다.
샘물이 고이길 기다린 것이다.
맑은 물 가득 찰랑이는 샘터에서 잎새 접어 그 물 떠마시며 갈증 다스리리라 기대하면서.
비가 나의 뜰에도 이적(異蹟)을 보이려는가.
풀릴 듯 잡힐 듯한 상. 빗속에 자연이 깨어남처럼 눈뜨는 의식.
넋대 움켜쥔 양 생각 앞질러 춤추듯 한 붓 한번 잡아보고 싶구나.
접신하듯 상이여, 술술 풀어져 거침없이 흘러나오렴.
그를 맞고자, 아니 그와 한 몸 된 순간의 허무를 위하여 한잔 차부터 준비해야겠다.
1989-그를 꿈꾸며 중에서-
安分知足이란 오래전 글도 꺼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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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는 자기 정리다. 자기 정화다. 흐트러진 자세를 가다듬는 작업이고 흐려진 심안을 맑히는 작업이다. 또한 글은 한편의 참회기도이자 성찰일기이다. 때로는 추억을 반추하는 시간도 되고 감정의 분출구 역할도 한다. 그렇듯 글은 내게 있어 언제나 '열린 창'인 셈이다. 전에도 썼지만 나의 글이 감히 난이길 바라지 않았다. 학이 길 원하지도 않는다. 수수한 이웃, 무간한 친구로 족하며 나아가 무엇에도 구애됨 없는 마냥 자유로운 마음의 산책으로 충분하다. 나의 글은 청자도 아니고 백자도 아닌 분청이길 바란다. 태 고운 청자나 백자보다는 쓰윽 휘두른 귀얄 무늬 하나로도 멋스런 풍류 간직한 분청이 되어 매화 저절로 꽃 피어나는 그런 경지를 터득하고 싶을 뿐.
나는 인품이나 생활상이나 두루 지극히 비수필적이다. 몰취미하고 무엇 하나도 잘하는 게 없다. 겸사가 아니라 도무지 내놓고 자랑할 만한 것이라곤 한 가지도 없다. 살림을 규모 있게 운용해 재산 늘려놓은 바 없고 살가운 아내와 엄마 역할을 제대로 한 것도 아닐뿐더러 효행이 남달리 두텁지도 못하다. 주부로서 응당 잘해야 할 음식 솜씨도 보통 이하다. 게다가 히스테리칼한 성격에 자존감만 별나 고집이 세다. 그렇다고 명문가 출신도 못 되며 공부를 특출나게 잘한 것도 아니고 운동은 아예 평균치에조차 못 미친다. 노래든 흥이든 시원찮아 노는데 어울리지도 못할 정도의 수준이고 말 주변이 좋은 것도 아니며 재치나 센스가 뛰어난 건 더더구나 아니다.
그렇다면 자신을 일으켜 세우기 위한 노력이나 했던가. 한 가지라도 제대로 갈고닦아 성취시킨 바가 있던가. 아니다. 붓글씨는 길 영(永) 자 쓰는 도중 진력 내 버렸고 꽃꽂이는 일 년을 채 못 채우고 외면해 버렸다. 수석에 몰두하고 난을 기르고 다도에 심취하고 사군자 치는 고아한 아취는 내 몫이 아니었다. 참 딱한 사람이란 생각이 든다. 대책 없는 한심한 사람도 같다. 그 상태로 어쩌자고 글에 매달렸었는지 어이없기도 하다. 겸사가 아니라 도무지 내놓고 자랑할 만한 것이라곤 한가지도 없다 ...후략